1996년-신규 통신사업자 선정 후 경쟁 본격화 / 2016년-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표류

 
[컴퓨터월드] 800MHz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 2세대 셀룰러 이동통신은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 두 사업자가 96년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서서히 가입자를 늘려나가고 있었다. 또한 정부는 같은 해 6월 1.8GHz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3곳을 선정, 이동통신 사업에서의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요금 인하 경쟁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또한 휴대전화의 본격적 보급에 앞서 기존 무선호출기 사용자들을 겨냥한 일명 ‘시티폰’ 사업자도 함께 선정하며 다양한 계층의 이동통신 사업을 추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5개에 달했던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현재의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개사로 압축됐다. 이들 3사가 나눠 가진 5:3:2의 고착된 시장 구도를 타파하고, 경쟁 없이 모두 비슷해져가는 요금 체계를 뒤흔들기 위해 이미 몇 년 전부터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해답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7번에 걸친 선정 시도가 무산되면서 업계는 사실상 큰 기대를 접은 분위기다.
 

1996년, 통신시장 경쟁 2라운드 돌입

지난 1996년 6월, 당시 정보통신부는 이석채 장관 주재로 기자회견을 갖고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 결과에 따라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s, 개인휴대통신), CT-2(Cordless Telephone-2, 발신전용무선전화), TRS(Trunked Radio Services, 주파수공용통신) 등 7개 분야에서 총 28개 기업이 차세대 정보통신 분야 사업권을 획득하게 됐다. 하지만 선정만 되면 ‘황금’을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다는 외부 시선과는 달리, 각 업체들은 곧 다가올 통신시장 개방을 앞두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 최대 유망 사업으로 꼽히며 재계 판도변화까지 불러올 것으로 전망됐던 PCS, 즉 1.8GHz 대역 주파수를 사용한 이동통신 사업권은 각 컨소시엄에 참여한 대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불러왔다. 사업권은 결국 LG텔레콤과 한솔PCS에게 돌아갔으며, 여기에 한국통신(KT, 97년 한국통신프리텔로 출범)까지 더하면 총 3개사가 이동통신 사업에서의 본격적 경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PCS 시장이 성숙되기 전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던 CT-2, 일명 ‘시티폰’의 경우 총 11개 사업자가 각 지역별로 선정됐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전국사업자인 KT를 비롯해 나래이동통신, 서울이동통신까지 총 3개사가 2000년까지 200만 명 이상의 수도권 내 가입자를 유치할 것으로 전망하며 하반기 서비스를 목표로 준비 중이었다. 이 밖에 TRS는 아남텔레콤이 사업 허가를 얻었다.
 

PCS, 가입자 700만 명 예상

▲ 1.8GHz 주파수 대역을 이용한 PCS는 셀룰러를 잇는 차세대 이동통신으로 주목받았다.

PCS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최대의 격전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상 시장 규모 때문이었다. 당시 업계는 PCS 서비스의 예상 가입자 수가 2002년 7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를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96년 기준으로 최소 3조 원에서 최대 5조 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또한 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까지의 장비 수요 규모도 약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이동통신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덕에 빗나가게 된다. 1997년 10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PCS는 1998년 말 이미 588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으며, 1999년 말에는 1,009만 명, 2000년에는 1,236만 명으로 가입자가 증가했다. 한국통신프리텔, LG텔레콤, 한솔PCS 등 3사는 다양한 소형·경량·저가 단말기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며 크게 성장해 1999년 3조 3,819억 원, 2000년 5조 31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94년부터 진행된 WTO 기본통신협상에 따라 98년 통신시장 개방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외국 업체들의 대대적 국내 통신시장 진출도 예상됐다. 이에 기업들은 그 이전에 서둘러 경쟁력을 갖춰 선발주자로서의 입지를 갖추려 하고 있었고, 이 역시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PCS를 무작정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새롭게 선정된 3개 업체 외에도 96년 1월 이미 800MHz 주파수 대역의 셀룰러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 두 기존 사업자들이 추가로 PCS 시장에 뛰어들 수 있고 여기에 이동통신 단말기 가격 인하를 통한 경쟁력 확보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따라서 경쟁 사업자 수는 사실상 5개가 되는 셈으로, 시장 분할 때문에 그만큼 이익은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 역시 예상을 조금 벗어나, 셀룰러 이동전화 서비스는 이후 PCS와 함께 급속 성장하게 된다. IMF 이후 경기 회복이 가속화되고, PCS와의 경쟁으로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면서 셀룰러 이동통신 방식 역시 큰 성장을 이룬 것이다.

셀룰러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는 800MHz 대역 전파 특성상 전파 거리가 길고 굴절성이 뛰어나, 소위 말하는 011 프리미엄도 이 때문에 생겨났다. 1998년 말 셀룰러 방식은 이미 810만 명의 가입자를 모집했으며, 1999년 말에는 1,335만 명으로 가입자가 늘어났다. 특히 1999년에는 경기 회복과 의무 가입제 폐지, PCS와의 경쟁 확대에 따른 단말기 보조금 지급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전년대비 525만 명이 늘어난 가입자를 유치하게 된다.
 

PCS 사업, 인력수급 ‘최대 난제’

PCS 사업자 선정 이후 각 업체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인력 수급 문제였다. 각 업체들 간에는 치열한 스카우트전이 벌어졌으며, 때문에 ‘인력 빼가기’에 의한 잡음이 일고 있었다.

당시 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신규 허가 통신사업자가 97년 말까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던 기술 인력은 2,670명 정도였다. 그 중 1,520명은 신규 사업자의 주주사가 이미 확보하고 있었고, 운용 인력 858명과 연구 개발 인력 292명 정도는 외부 충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력 사정을 고려해도 최소한 절반인 500명 이상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97년 말까지 이만한 인원을 충당할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각 사업자들은 주주사로부터의 충원과 신규 채용으로 인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었지만, 실상 그간 통신 산업 관련 인력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핵심 인력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업계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경쟁업체로부터 스카우트하거나 해외로부터 연구 인력을 ‘모셔 오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과열경쟁이 예상됐던 것이다.

특히 당시 공기업이던 KT와 데이콤이 이미 이러한 문제로 술렁대고 있었으며, 한솔PCS 등 신규사업자들이 높은 임금을 제안하며 직원들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통신사업자협회를 설립하면서 사업자 간 부당 인력 스카우트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할 계획을 세웠으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정부 주도하에 체계적인 인력 양성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PCS 사업자 선정 3사의 부푼 꿈

업체들을 살펴보면 먼저 LG텔레콤은 사업자 선정을 계기로 정보통신 장비 및 서비스 전 분야에 걸쳐 1위 그룹으로 올라선다는 목표 하에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발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7월 11일에 법인을 설립할 것을 계획하는 등 서비스 시장에서 35% 이상, 장비쪽에서도 최소 33%의 시장 점유율을 자신했다.

한솔PCS는 당시 장비와 서비스 양 분야에서 모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이를 극복할 자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특히 KT를 겨냥해 “공기업은 우리 상대가 아니다”라고 자신감을 보이며 PCS 사업자 중 2위로 35.2%의 점유율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KT의 경우 기나긴 독점 시대를 끝내며 경쟁체제로 돌입, 마케팅이나 영업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또한 곧 출범할 자회사(한국통신프리텔)에 대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의 지분 참여 문제도 안고 있었다. 정부와 KT가 중기협에 33%의 지분 참여를 허락할 방침으로 알려졌지만, 현실적으로 중기협이 추천하는 중소기업이 가진 지분은 1/6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가급적 연내 설립’을 목표했던 한국통신프리텔은 해를 넘겨 설립되게 된다.
 

▲ PCS분야 3개 사업자 향후 사업 계획 비교 (컴퓨터월드, 1996.07)

시티폰 성장 기대

한편, CT-2 사업자에 선정된 업체들은 본격적 사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무선전화기를 발전시킨 형태의 CT-2는 도심 인구밀집 지역에서 소형 저출력 단말기를 이용, 발신 전용으로 통화를 할 수 있는 서비스로 기지국 당 최대 6명이 접속해 사용할 수 있었다. 기지국 범위는 도심 30~50m, 외곽 지역 150~200m로 달리는 차안에서나 이동 중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흔히 KT에서 97년 3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던 ‘시티폰’으로 기억된다.

본지 보도에 따르면 CT-2는 당장 96년 하반기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PCS가 성숙되기 전까지 가장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됐었다. 단말기 가격이 초기 무선호출기(삐삐) 수준인 10만 원대인데다, 요금도 10초당 10원 미만으로 셀룰러 이동전화보다 절반 이하로 저렴하게 도입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기존 무선호출기 가입자들을 위주로 수요가 클 것으로 전망됐다.
 

시티폰, 2000년 수도권 200만 명 시장 규모 예측

당시 KT, 나래이동통신, 서울이동통신 등이 3파전 양상을 펼칠 것으로 기대됐던 수도권 CT-2 시장은 97년 56만 6천여 명, 98년 103만 2천여 명, 99년 157만 7천여 명, 2000년 204만 5천여 명을 넘어 2001년에는 242만 1천여 명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상당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던 CT-2의 수도권 시장 규모는 국내 전체 시장에서는 약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 국내 수도권 CT-2 시장규모 전망(컴퓨터월드, 1996.07. 나래이동통신 제공)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대체적으로 수도권의 3개 사업자가 각각 1/3씩 시장을 나눠가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으나, KT는 50% 점유율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KT는 이미 실시 중이던 여의도와 대전지역에서의 시범서비스를 96년 4/4분기에 상용화하고, 97년에는 수도권과 광역시로 상용 서비스를 확대한 후 늦어도 99년까지 전국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었다. 이를 위해 KT는 2001년까지 설비투자에 3천억 원을 투입, 97년 1만 2천개를 포함해 99년까지 3만 6천개의 기지국을 세울 계획이었다.

나래이동통신의 경우 96년 말 서울 지역 시범서비스를 시작해 97년 상반기 내로 수도권 전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총 4천억 원의 시설비를 투자해 97년 1만여 개, 2001년까지 총 2만 3천개의 기지국을 세울 예정이었다.

서울이동통신도 97년 1월부터 서비스 개시에 나서 2000년까지 인구대비 97%, 면적대비 100%까지 통화 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또한 KT와 015사업자들, 즉 나래이동통신과 서울이동통신을 비롯한 기존 삐삐 사업자들이 기지국 공동 이용에 합의하면서 신규 시설 투자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 시티폰은 주로 공중전화에 부착된 기지국 주변에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시티폰, 안일한 시장 예측 대표 사례로 남아

CT-2 사업자들은 부가서비스의 제공이 승부의 관건이라는 판단 하에 투자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 2000년까지 200억 원을 투자해 착신 기능을 개발하고 무선데이터서비스나 광역착신과금 서비스, 신용통화 서비스 등의 지능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 나래이동통신과 서울이동통신 등은 착발신 겸용의 개인휴대통신 서비스 ‘CT-2 플러스’에 이어 ‘호출자 접속(MEET ME)’ 서비스도 제공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음성사서함과 프로야구 서비스, 신문기사 등의 문자서비스, 무선호출망을 활용한 정보조회서비스 등을 제공해 CT-2를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당초 목표와는 다르게 1997년 1분기에야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CT-2, 즉 ‘시티폰’은 기존 셀룰러 휴대폰 대비 1/3 수준의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출시 100일 만에 가입자 3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얻는 듯했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은 “통화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는데, 이는 2명에서 최대 6명으로 제한된 기지국 수용 인원 탓에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연결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결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아 이동하면서 사용할 경우 기지국 범위를 벗어나면 연결이 끊기는 것도 사용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기존 이동통신 대비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편함은 가입자 확대에 한계를 가져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 출시된 PCS에 밀려 시티폰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97년 말 가입자 수가 급감하면서 결국 CT-2 지역사업자들은 사업포기를 선언했으며, 전국사업자였던 KT는 98년 나래이동통신 등의 장비를 인수하고 기지국 출력 향상 등을 통해 사업 재정비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앞선 기술을 채택한 소비자들이 다시 구형 기술로 눈을 돌린다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로, 역시 이마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결국 2000년 1월 시티폰 서비스는 종료된다.

시티폰의 실패는 PCS라는 새로운 서비스가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던 상황 속에서 “기존 삐삐 사용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틈새시장이 있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경우다. 특히 셀룰러폰과 PCS라는 신형 기술이 있음에도 CT-2라는 불편한 구형 기술을 국내 소비자들이 선택할 거라는 기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예측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 줬다.
 

20년 후…제4이동통신 선정 표류

올해 1월 29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심사 결과 퀀텀모바일, 세종모바일, 케이모바일 3개 사업자 모두 사업계획서 심사에서 허가 적격 기준인 70점에 미달, 적격 업체는 선정되지 않았다.

3사 모두 비현실적이거나 서비스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망 구축 계획을 제시해 미래부로부터 안정적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구체적인 준비사항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재정적 능력 면에서도 자금조달 계획이 불확실했으며, 이에 업계에서는 강력한 1대 주주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술적 측면은 그나마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역시 적격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 기간통신사업 허가신청법인별 심사결과 (2016년 1월)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지금까지 7차례 무산됐다. 2010년 6월 한국모바일인터넷(KMI) 컨소시엄이 와이브로 사업 허가를 신청하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국민의 통신 추진사업단(Global Wibro Community Consortium, GWCC) 등이 도전했으나 무산되거나 탈락으로 끝났다. 2014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퇴출돼가는 와이브로 방식을 버리고 주파수 시분할 롱텀 에볼루션(LTE-TDD) 방식으로 사업자 신청을 받았지만 또다시 사업자들은 선정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고, 특히 재정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이번 사업자 선정 심사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컨소시엄들이 경쟁에 참여했지만 역시 기술 및 재정 등의 측면에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업계에서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의 적극적 참여가 있지 않은 이상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결과를 내긴 힘들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기존 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사업, 일명 ‘알뜰폰’ 사업에 더 집중하고 제4이동통신 사업자 출범은 심사에 드는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재정의 낭비니 접어두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년 전 PCS 사업자가 선정되면서 기존 한국이동통신(97년 3월 SK텔레콤으로 사명 변경)과 신세기통신에 더해 총 5개 사업자가 경쟁을 시작하게 됐던 것과는 달리,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경쟁 끝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사가 남아 5:3:2의 점유율을 각각 차지하며 그 구도가 고착된 상태다.

SK텔레콤은 99년 말 신세기통신 인수를 발표한 뒤 합병 후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던 점유율을 끌어내리는 조건으로 이를 승인받았으며, 2002년 1월 1일 마무리된 최종 합병 이후에도 1위 사업자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통신프리텔(KTF)은 2000년 한솔엠닷컴, 즉 한솔PCS를 인수한 후 2009년 6월 KT에 흡수 합병됐고, LG텔레콤은 PCS사업권을 획득한 후 지금까지 꾸준히 가입자 수를 늘리며 살아남았다.

3사는 이후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면서 서로 가입자 빼오기에 공을 들였지만, 그에 비해 시장 변화는 매우 더디다. 소비자들은 기업 간 마케팅 전쟁에서 혜택을 체감하기보다는 그동안 치솟은 통신요금과 단말기 유통구조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오히려 통신사마다 별반 차이 없는 요금제 수준으로 미뤄봤을 때 암묵적 담합과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대한 기대가 높은 이유다.

결국 이처럼 고착된 구도에 새로운 사업자를 투입시켜 요금 경쟁을 촉발시키고, 소비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게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의 배경이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이 이번에도 표류함으로써, 앞으로 몇 년간은 기존 시장 구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차세대 이동통신사업은 사라져간 기업들을 돌아보면 반드시 ‘황금알’을 낳았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지금 살아남은 세 기업들은 통신사업에서의 이익을 바탕으로 투자를 다각화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미래부는 올해 상반기 안으로 다시 제4이동통신 사업자 추진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이를 위해 2.5GHz 주파수 대역도 남겨 놨다. 하지만 그동안 번번이 선정이 무산되면서, 실상 업계는 기대를 접은 듯하다. 정부와 업계는 새 사업자를 선정하든 아니면 알뜰폰에 집중하든, 결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경쟁에서 오는 가계통신비 절감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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