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하고 듣지 않는 ‘높으신 분들’, 국내 SW산업 앞길 잡초로 채워

▲ 팽동현 기자

[아이티데일리] 17세기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인 제임스 하월(James Howell)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잡초로 가득 찬 정원과 같다(A man of words and not of deeds, is like a garden full of weeds)’라는 격언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래 소프트웨어(SW)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천명했지만, 이 ‘창조경제’라는 정원에는 어느덧 정책 실행력 부족으로 인한 잡초들이 무성해지고 있다.

SW산업 진흥책을 기껏 추진해놓고도 명확하지 못한 규정으로 인해 뒷심 부족이 성토되고, 실컷 논의를 거쳤더니 정작 제도화될 때는 변경되거나 일부만 반영돼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줬으니 됐다는 식으로 ‘나 몰라라’하기 일쑤다.

왜 이렇게 잡초가 무성해졌을까. ‘주먹구구식’ 정책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힐 수 있겠지만, ‘높으신 분들’부터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국내 SW산업 발전을 주제로 개최되는 정부 공개행사에 가보면 으레 ‘높으신 분들’이 개회사, 환영사, 축사 등으로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해준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높으신 분들’이 이렇게 덕담 한 번 건네고서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기조연설까지 들으면 다행이고, 대개 마지막에 열리는 토론까지 남아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무래도 ‘높으신 분들’이니 공사다망(公私多忙)한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고, 자리를 빛내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이 문제점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자리에서 이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나가는 모습을 접하면, 왜 ‘높으신 분들’은 이런 자리에 오게 된 것인지, 또 열심히 참여하는 업계 관계자들은 왜 이렇게 남겨졌는지 궁금해진다. 특히 ‘창조경제’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SW산업의 문제해결을 위해 마련된 자리 아닌가.

9일 개최된 ‘공공SW사업 분할발주 토론회’에도 마찬가지 풍경이 펼쳐졌다. 김진형 SPRi 소장이 “분할발주 추진한다 말만 할뿐, 4년간 허송세월됐다”고 한탄하는데도, 조미리애 VTW 대표가 “SW업계의 SOS를 전하기 위해 나왔다”고 호소하는데도, 심기보 카이스트 교수가 본지(컴퓨터월드) 기사를 예로 들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분노하는데도, 그 자리에 이를 들어야 할 ‘높으신 분들’은 중간에 나가거나 아예 나오지 않아 없었다.

다행히도 단 한 사람, 김상규 조달청장만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SW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박수를 받았다. 김상규 청장은 행사 말미에 고사성어 줄탁동기(啐啄同機)를 언급하면서 “국내 SW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사회답게 SW업계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정부도 이에 맞춰 노력해야 한다”며,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이야기부터 충분히 들어보고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듣지도 않은 채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면 공감대가 형성될 리 없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도 없다. ‘높으신 분들’부터 이럴 진데, ‘주먹구구식’이 안 될 수가 없지 않을까.

SW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는 명확한 정책과 이에 대한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SW업계의 목소리부터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 개회사, 축사, 환영사 등은 장식일 뿐인데,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