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전략 포기한 IBM, 레노버에 x86 매각…레노버 행보 주목

 

[아이티데일리] 지난 1월 말, IBM이 레노버에 x86 서버 사업부를 매각했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큰 손’인 IBM의 x86 서버 사업부 매각은 단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매각 대상인 x86 서버가 미래 비즈니스가 요구하는 IT 자원의 신속성, 유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인프라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IT 자원 관리의 유연성과 신속성이 요구되고 있는 오늘날 x86 서버의 활용 저변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특히 IT 자원 공급의 즉시성을 실현하고자 태동한 클라우드 시장은 x86 서버의 독무대다. x86 서버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로써 클라우드라는 차세대 플랫폼과 함께 성장하게 됐다. ‘IT는 비즈니스의 변화를 더욱 빠르게 수용해야 한다’는 산업 전체의 대전제가 x86 서버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핵심은 가상화다. 가상화란 그간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던 IT 자원들을 하나의 풀로 통합, 시스템 요구에 따라 필요한 만큼을 논리적인 가상 구조로 할당해 활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가상화 기술을 활용하면 IT 자원의 가용성과 민첩성을 확보할 수 있다.

x86 서버는 서버 가상화를 실현하는 주체다. x86 서버는 클라우드가 필요로 하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서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x86 서버와 유닉스 서버 간 성능 격차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기존 유닉스 서버를 들어내고 x86 서버로 교체하는 ‘다운사이징’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안정성을 중시하는 의료·금융 분야에서도 x86 서버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IDC에 따르면 2012년 1분기 국내 서버 시장 전체에서 x86 서버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54.3%에 달한다. x86 서버는 당시를 기점으로 이제까지 메인프레임, 유닉스를 제치고 전체 서버 시장에서 과반의 점유율을 이어가고 있다.

IBM, “‘프리미엄 전략’과 안 맞아”

그렇다면 이처럼 ‘잘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 나가게 될’ x86 서버를 IBM이 정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사실 그간 IBM의 전략을 보면 이번 x86 서버 사업부 매각이 완전히 예상 밖의 행보는 아니다. IBM은 메인프레임, 유닉스 등을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공급하는 ‘프리미엄 서버’ 강자로 알려져 있다. 초고사양 HW와 전문적인 유지보수 서비스를 내용으로 하는 ‘프리미엄 제품’의 공급, 이것이 IBM HW 전략의 핵심이다.

여기서 x86 서버가 ‘프리미엄화’ 해 수익을 낼 수가 없는 제품군으로 고착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x86 서버 시장의 흐름과 연관이 있다.

기존 서버 시장은 IBM을 비롯해 HP, 델, 후지쯔 등 대형 공급업체들의 텃밭이었다. 서버 시장에서 이들의 점유율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x86 서버 시장에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품) 업체 등 신흥 공급업체들이 늘어났다. 신흥 업체들은 저렴한 단가를 앞세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예로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IBM, HP, 델이 아닌 대만, 미국의 OEM 업체들로부터 x86 서버를 구매한다. 신흥 업체들이 기존 강자들의 수익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흥 업체들이 기존 서버 시장의 ‘공룡’들과 수익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x86 서버의 생산, 즉 조립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x86 서버의 생산 방식은 기술 수준 및 주요 공급업체가 평준화된 HW 부품을 조립해 공급하는 ‘화이트박스’ 형태로 정형화됐다. x86 서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술력, x86 서버가 제공할 수 있는 성능이 평준화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이제 x86 서버 사용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높은 안정성, 확실한 유지보수가 아니게 됐다. 단지 저렴한 가격만이 중요해졌다. 사용자들은 싼 값에 많은 서버를 들이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교체하는 방식으로 x86 서버를 활용하게 됐다.

즉 IBM 입장에서 x86 서버 사업이란 자사의 ‘프리미엄 전략’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었던 셈이다. 결국 IBM은 자사의 x86 서버가 브랜드 가치를 상실하기 전에 x86 서버 사업부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레노버, “단가 경쟁? 자신 있어”

IBM에게는 ‘돈 안 되는 사업’이었던 x86 서버. 하지만 레노버의 시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레노버가 IBM의 사업부를 인수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5년 레노버는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했다. 당시 레노버의 행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 속에는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해 IT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현재 레노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PC를 공급하는 업체가 됐다. 스마트폰, 태블릿 수요 증가에 따라 전 세계 PC 출하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레노버에게는 이런 추세가 통용되지 않고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 PC 출하량은 3억 1,596만 7,516대로 전년 대비 10% 줄어들었는데,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도 레노버는 여전히 2.1%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레노버는 2013년 세계에서 제일 PC를 많이 판 업체다. 총 5,327만대를 팔았다. 시장 점유율은 16.9%를 기록했다.

이처럼 PC 사업부에서 레노버가 선전하게 된 배경에는 물론 PC 보급률이 낮았던 중국 내수 시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싸게 많이 만드는’ 데 능한 레노버는 IBM PC 사업부를 인수, IBM의 브랜드 가치를 승계함으로써 자사의 강점에 시너지 효과를 더했다. ‘싸면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제공하는’ 제품으로써 시장에 인지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올해 레노버는 다시금 IBM의 사업부를 인수했다. 이번 종목은 x86 서버다. x86 서버 시장이 단가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레노버가 PC 시장에 이어 x86 서버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그간 PC 사업을 진행하며 인텔의 ‘주요 고객’이었던 레노버는 x86 서버에 장착되는 프로세서를 인텔로부터 싼 값에,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 논리에 따라, 레노버가 확실한 가격 경쟁력을 갖춘 x86 서버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아울러 중국 내수 시장에서 x86 서버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 역시 레노버에게 호기로 다가올 것이란 예측이다. 일각에서는 레노버가 x86 서버 시장에서 HP, 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하리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IBM은 x86 서버 사업부를 매각함으로써 인텔 기반 HW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됐다. 이제 IBM의 주력 사업 분야는 ‘서비스’다. IBM은 x86 서버 사업부 매각 계약 체결을 발표하면서 향후 인지컴퓨팅과 클라우드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HW 공급업체’가 아닌 ‘서비스 제공업체’로 이미지 변신을 꾀할 방침이다.

한편 레노버는 올해 IBM의 x86 서버 사업부뿐 아니라 구글의 모토로라모빌리티도 인수했다. 서버뿐 아니라 스마트폰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 레노버는 올해 진행한 ‘굵직한’ 인수 건이 자사가 몇 해 전부터 추진해 온 ‘PC 플러스 전략’의 일환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레노버는 PC 시장에서의 입지와 경험을 발판 삼아 모빌리티, 클라우드라는 차세대 IT 트렌드까지도 자사의 사업 영역으로 아우르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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