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전문 조사기관들이 내놓고 있는 국내 IT 시장조사의 결과에 대한 ‘신빙성’ 논란은 새로운 얘깃거리가 아니다. 세계적인 조사기관이 내놓은 시장 데이터조차 그 정확성을 의심받아 온 지 오래다. 어느 IT 전문 조사기관의 한 애널리스트는 “우리도 사실 데이터를 믿지 못한다”며 그 신뢰성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할 만큼 시장조사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IT 산업 전문지로는 거의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IT 시장조사를 해온 「컴퓨터월드」도 이러한 의구심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함을 인정한다. 그런 점에서 「컴퓨터월드」가 다른 시장 조사 기관들의 문제점을 들추고 나서는 것은 ‘하늘 보고 침 뱉기 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까닭은 매년 이맘때쯤이면 「컴퓨터월드」는 IT 공급업체의 마케팅 담당자로부터 문의를 자주 받는다. “작년도 IT 시장조사 데이터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전체 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새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런 요청을 받으면 선뜻 자료를 제공했지만 부끄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다. 과연 마케팅 담당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장조사 방식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컴퓨터월드」는 그 방안으로 첫째, 벤더 중심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시장조사 방식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동안 벤더 사를 일일이 방문해 인터뷰 식으로 진행해온 시장조사 방법을 앞으로는 전면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특정 제품의 전체 시장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특정 제품의 수요를 특정 업종별로 조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사방법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순순히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 응해줄 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의 조사는 비록 전체 시장 조사는 아니지만 특정 산업 분야의 특정 제품의 레퍼런스 사이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떠한 제품이 어떠한 산업 분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 고려해 볼만한 조사 방식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공급업체를 중심으로 조사하는 것보다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시장규모를 파악하는 게 더 분명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고려하는 시장조사 방법론은 채널사의 판매 실적을 조사해 벤더의 실적을 유추해 보는 식이다. 이는 다국적 기업들이 전체 IT 시장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직접 판매 보다는 간접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의미 있는 조사 방법임에 틀림없다. 또한 다국적 기업들이 본사의 ‘실적 공개 불가’ 방침을 들어 데이터의 공개를 꺼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컴퓨터월드」는 이러한 방식을 적용해 스토리지 공급업체 가운데 대표적인 E사의 디스크 어레이 실적을 한 번 분석해 봤다. 이 회사의 디스크 어레이 국내 채널은 크게 10개사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엔빅스는 E사의 디스크 어레이로 자사 전체 매출의 85%를 올리고 있으며, 국내 전체 E사 디스크 어레이 실적의 거의 40%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분석해 보니 2004년 E사의 디스크 어레이 공급 실적은 1,850억 원 정도로 추정됐다. 이는 2004년 한 해 동안 국내 기업들이 E사 디스크 어레이 구입에 1,850억 원을 들였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2004년 E사의 전체 매출실적은 1,592억7,4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는 조사의 기준 때문이다. 벤더 매출인지, 아니면 최종 사용자의 도입 금액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시장규모는 크게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최종 사용자 도입 금액의 40% 또는 50% 정도가 벤더의 공식적인 매출 실적으로 전해진다.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어느 농작물을 경작해야 득이 되고, 거기에 맞춰 어느 정도 규모의 씨앗을 뿌릴 지를 고민한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전략 마련에 고심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장조사는 공급업체들에게는 올바른 전략 수립의 열쇠를 제공하며, 일반 기업의 전산 기획 담당자에게는 제품을 도입할 때 합리적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정확한 시장 조사를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 출범한 「컴퓨터월드」는 올해 주요 편집방향의 하나로 사용자 중심의 시장조사를 펼칠 것을 선언했다. 새로운 도전과제에 적극 매진할 것임을 다짐해 본다.
<박시현 기자 pcsw@rfidjourn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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