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그룹 SI 업체들의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은 최저가 낙찰제와 더불어 국내 SI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는 대표적인 항목이다. 캡티브 마켓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재벌 그룹의 SI 업체들이 계열사의 수요를 기반으로 몸집을 키우고, 시장 장악력을 강화하며, 중견 기업이나 전문 업체들의 시장-자기 영역-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기자가 만난 어느 중견 SI 업체의 김 모 사장은 “빅 3가 소속된 재벌 그룹이 해체되지 않고서는 풀릴 수 없는 문제”라며 과연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가?라며 반문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SM(아웃소싱) 사업 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SI 사업 부문과 연계를 끊으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겠느냐”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룹 계열사 대상의 SM 사업으로 거둬들인 이익을 무기로 정부?공공 등 외부 SI 시장을 무차별적으로 공략하는 고리를 끊는데 적합한 방안이라는 얘기이다.
이는 여러 중견 전문 업체들이 “SI 업체의 고질적인 관행인 저가 수주를 막을 수 있는 뚜렷한 대안”이라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 한 번 고려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시장경제 체제에서 이러한 대안이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재벌 그룹사의 SI 업체들이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겠는가? 회사 전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SM 사업을 빼면 사업의 알맹이가 없는 SI 회사를 운영하려고 하겠느냐?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SI 업체들의 전체 영업 이익률은 1~2%인 반면 캡티브 마켓에서는 10~1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4년 삼성SDS는 1조8,7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수익은 1,350억 원에 그쳤으며, LG CNS는 1조6천억 원의 매출에 524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외부 SI 사업은 오히려 ‘밑지는 장사’라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들어 SI 업체들이 전통적인 SI 사업 대신 순익을 올릴 만한 여러 신규 사업을 속속 벌이고 있는 것은 기존의 외부 SI 사업만으로는 순익을 거둬들이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김 모 사장은 또 “어느 중견 SI 업체 사장에게 사석에서 합병을 제안한 적이 있다”며 재벌 SI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 구조를 돌파하는 방안으로 중견 업체들의 대 통합을 제시했다. 삼성SDS와 LG CNS 등 양대 회사가 독주하는 SI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워 대항할 수밖에 없다는 애절함이다.
실제로 ‘인수합병’은 국내 SI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뇌관이다. EDS, HP 등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 SI 시장의 공략 방안으로 M&A를 적극 시도하고 있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다 최근 SI 사업의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KT가 앞으로 다국적 기업이나 국내 업체 등을 대상으로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으로 전해져 국내 SI 시장의 판도가 크게 변화할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특정 재벌사가 아닌 제 3의 대형 SI 업체의 등장은 캡티브 마켓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국내 SI 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오직 한국 시장만이 안고 있는 캡티브 마켓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해결은 시기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또 다른 국내 SI 업체 임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박시현 기자 pcsw@rfidjourn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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