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진화에도 의료계 “원격의료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반발
[아이티데일리]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15일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하며 목을 흉기로 긋는 자해까지 벌이는 논란 속에서 16일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지만, 의사협회는 다시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일방적 원격의료 정책을 포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는 등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월 29일 의사가 멀리 떨어진 환자의 상태를 진단, 관리할 수 있도록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내놓자 그간 의료계는 총파업 불사를 선언하면서 강하게 반발해왔다.
개정안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 수술 후 추적관찰이 필요한 재택환자,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장애인, 도서·벽지 주민 등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아도 전자통신기기들을 이용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에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증명되지 않은 안정성, 대면 의료체계 붕괴 혼란, 대형병원 쏠림 현상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며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원격의료는 동네 병·의원들을 문 닫게 하고 의료의 질과 의료인의 고용여건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이미 대형병원 선호 현상이 극심한 국내 상황에서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격의료는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한 1차 의료의 붕괴를 가속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원격의료가 시작되면 사실상 관련 장비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은 대형병원 밖에 없다”며 “원격의료가 활성화될수록 동네병원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원격의료가 시작되면 지방 환자들도 수도권 대학병원 전문의에게 진료받기를 원할 것”이라며 “원격의료가 전격 도입될 경우 적어도 5만명 이상의 보건의료 분야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원격의료 허용 시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에 집중되지 않도록 동네의원 중심으로 이를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만성질환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도서·벽지 주민 등은 동네의원에서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고, 수술 퇴원 후 추적 관리가 필요한 재택환자나 군·교도소 등 특수지 환자들에 한해 병원에서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면 병의원을 직접 찾기 어려운 환자들의 접근성이 개선될 뿐 아니라 수술이나 퇴원 후 환자의 상시적 관찰관리 등도 가능해져 의학적 치료 효과도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은 의료 장벽을 허물어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높일 것”이라며 “1차 의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고려하여, 정부는 지난 10일 의료계의 반발이 계속되자 원격의료를 하더라도 반드시 주기적으로 의사와 대면 진료를 해야 하고, 원격의료만을 하는 의료기관은 허가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수정안을 지난 10일 내놨다. 정부가 의료계의 원격의료 반대 입장을 고려해 개정안을 수정한 것이다.
수정안에는 원격의료를 받을 수 있는 질환을 가벼운 질환으로 제한하고, 개정안 시행 전에 6개월 시범사업을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정안 수정으로 동네의원 중심의 국민편의 제공 및 의료 접근성 제고라는 입법취지가 더욱 명확해졌다”며 “이같은 입법 취지가 의료계와 국민으로부터 오해를 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설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번 수정안도 실효성이 없다며, 원격의료 관련 수정은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려 하는 원격의료는 대면진료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의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하고 시진, 촉진, 청진 등의 진찰행위를 통해 이뤄지는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방식”이라며 “IT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기술은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원격의료는 의료민영화를 앞당기는 일이라고 반대하며 지난 15일에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등을 반대하는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어 의료법 개·제정 작업을 중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의협 비대위는 이날 “원격의료는 날림 진료를 남발하고 국민 건강권을 훼손하는 의료 악법”이라며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동네의원을 고사하고 의료 전달 체계가 붕괴되는 의료 대재앙이 온다”고 주장했다.
의료계가 원격의료 도입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며 자해 소동까지 벌이는 등 실력행사에 돌입하자 이번에는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다.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16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원격의료는 도서지역, 오벽지 등 취약지 주민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 등 의료 소외계층의 의료접근성을 높여 누구에게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라며 “의료민영화와는 무관하고, 앞으로도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또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병행해 문제점이나 보완점이 나타나면 본격적인 제도 시행 전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격의료 추진이 의료민영화로 가는 길이라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나선 것이다.
최 수석은 “향후 의료계 등 현장과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그동안 제기된 우려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구체적을 실행 계획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진화에도 의료계는 원격의료 반대에 대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정부가 일방적 원격의료 정책을 포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는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원영 수석의 원격의료가 의료민영화와 전혀 무관하다는 발언은 의료전문가인 대한의사협회의 견해를 무시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노환규 의협회장은 이날 “원격의료는 국민행복을 위협하는 불통 정부의 위험한 정책”이라며 “원격의료 허용은 진단의 정확성을 떨어뜨리고 동네의원의 몰락을 가져와 의료 공공성을 떨어뜨릴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또 최 수석이 의료계의 염려를 반영해 보완책을 마련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당정협의를 통한 수정보완책은 초보적인 의료지식도 없는 관료에 의해 만들어진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노 회장은 “대화를 통해 실행계획을 만들어가겠다는 말도 동의할 수 없다”며 “전문가의 참여 없이 비전문가 관료들이 먼저 법을 만들어 놓고 추후에 논의를 하겠다는 것은 요식행위일 뿐이고 시범사업을 하면서 보완하겠다는 것은 원격의료를 강행하겠다는 의지표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가 입장 온도차를 줄이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와대까지 진화에 나섰지만 앞으로도 이 진흙탕싸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어느 제도든 누구든지 하고 싶어 하고 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과제이니 만큼, 원격의료 허용 여부 자체가 쟁점화되기보다는 정부와 의료계가 윈-윈 할 수 있는 정책방향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