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생태계의 고질적인 병폐 공론화 해 해결책 찾아야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흔치 않는 광경이 목격 됐다. 강은희 의원 주최로 열린 '공공정보화사업 선진화' 정책토론회는 청중들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로 가득찼다.

이런 분위기는 그동안 IT업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차마 공론화하지 못했던 국내 IT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한 대학교수가 여과 없이 직설화법을 동원해 까발렸고 이에 청중들이 박수로 공감을 표했다.

주인공은 김상욱 충북대 교수. 그는 "전자정부사업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연간 약 13조원씩 투자했다. 우리나라 전자정부서비스가 UN 평가에서 2회 연속 1위를 했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반대로 그 정도 투자했으면 대표할만한 소프트웨어 기업 1~2개는 생겨야 하지 않나?"라며 엄청난 규모의 정보화 투자에도 대표 SW기업이 없는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가 정부의 SW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정책 부재 및 실패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지적하고 내빈석에 앉은 정부 관계자 및 의원들에게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한다"고 훈수했다.

김 교수의 지적은 광범위하면서 구체적이었다. "현재 SW생태계를 보면 시장은 레드 오션으로 이전투구하고 있고, 기업은 전문성 없고, 인력은 희망 없이 철새처럼 떠돌며, 정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생발전형SW생태계 구축이 가능하겠는가?", "정부가 말하는 전문·중소기업 참여확대, 선진수발주체계 구축, 시장 자율의 SW대가 구축 등 3가지 제안은 이미 수년간 산업계 및 학계에서 거론된 내용이며 그동안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 단선적 사고에 따른 정책 집행 때문이다."

김 교수는 "SW산업진흥법도 SW 생태계의 이면을 보지 못한 근시안적 사고에서 출발한 법안"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공공정보화시장에서 '호랑이가 없으면 토끼가 날뛴다'는 말처럼 중견·중소기업들의 이전투구 양상이 더 심화된 것을 들었다.

김 교수의 주장은 한마디로 '대기업의 공공시장 독식이 이뤄지도록 정부의 사업 발주 및 선정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 정부 발주는 성격 상 IT서비스(SI)가 근간을 이룰 수밖에 없는데 사업자 선정 시 신용도와 자본을 중시하고 브랜드를 따지기 때문에 대기업이 정부 사업을 독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은 로비 자금이 많아 때가 되면 교수에게 골프를 치자고 한다"며 다들 알고 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 IT 업계의 자화상을 거침 없이 끄집어냈다.

사업자 선정 심사위원 선정도 문제라는 것. 공정성이라는 명분으로 하루 전에 무작위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게 문자로 참여의사를 묻고 선착순 마감 식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당일 20분 발표로 당락을 결정짓는데 이는 '러시안 룰렛 게임'을 연상케 한다고 비유했다.

김 교수는 "평가수당을 따먹거나 업체의 로비를 받으려고 하는 교수들이 심사위원으로 들어온다", "교수 중에 대기업에게 로비 안 받은 교수 있으면 나와 보라"고 반문해 씁쓸한 교수 사회의 자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 교수의 옳은 소리는 계속됐다. "공공기관의 발주 및 선정방식이 기업가 정신을 잃게 했다", "대기업들은 수익창출이 목적이지 SW 패키지 및 솔루션 개발 투자에는 관심이 없다", "대기업이 단순 인력 공급으로 정부 사업을 이끌어왔는데 이를 중소기업이 자처해 스스로 대기업의 하청사로 변질됐다", "RFP 상세화는 업계의 지원 없이 불가능한 제도이며, 담당 공무원들은 업체들의 지원에 특정 업체에게 유리하게 작성되더라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다", "지적재산권의 개발자 귀속도 슈퍼갑인 정부가 소스코드를 다 가져와라 하면 줘야하고 개발된 솔루션도 공공재라는 명목으로 지자체에 무료로 배포돼 관련 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 등 하나같이 옳고 박수받았다.

김 교수는 이런 상황을 "생존형 개발자들이 철새처럼 떠돌며 협소한 시장을 교란하고, 기업은 이익에 눈이 멀어 대기업은 정부 발주에,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목을 매는 악순환은 그칠 줄 모르네"라며, 한 편의 시로 표현해 청중들로 하여금 폭소와 함께 큰 박수를 받았기도 했다.

그동안 IT 업계는 "SW생태계가 왜곡되다 못해 사장된다며 생존의 위협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투쟁'보다는 '투정'으로 일관해온게 사실이다.

김교수의 얘기처럼 IT 업계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많다. 그러나 '모난 돌'이 곧 '업계에서 사장'이라는 공식을 알고 있기에 그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던 것. 때문에 왜곡된 SW 생태계는 늘 악순환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부가 이런 SW생태계 악순환의 원인을 끊임없이 찾고 있지만 실제 정책 반영은 그리 많지않다. 더 큰 문제는 SW생태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알고서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고 정부에 투정만 하는 IT 업계에 있다.

아프다고만 할 뿐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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