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횡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 대통령이 새로 등극할 때마다 목청을 높이는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다. 그 때마다 하부 책임자나 관계자들은 금방이라도 대기업들의 횡포를 모두 해결할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인다. 대기업들의 횡포를 방지하고, 중소기업들을 보호할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나 새로운 정책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처럼 쏟아낸다.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대기업들 역시 대통령과 정부의 지시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 중소기업들과의 상생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내 놓는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나 방안은 잠시 그 때뿐이다. 그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쏟아낸 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정책이나 방안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만 실행됐거나 지켜졌어도 '대기업 횡포'라는 단골 메뉴가 등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시적으로나마 호들갑스런 정책이나 방안 덕분에 일부 수정이나 개선된 것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을 옭아 맬 새로운 교활한 방법을 찾아나갈 뿐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나만 살겠다'는, 우리들 가슴 속에 깊숙이 내재된 잘못된 의식 때문일 것이다. 대기업이 있으면 중소기업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곧 같이 맞물려 발전하는 공생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식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삼성SDS, SK C&C, LG CNS 등은 우리나라 IT산업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모기업 계열사들의 정보화를 지원하고 관리 유지해 주는, 다시 말해 SI(시스템 통합)사업을 주목적으로 설립됐다. 때문에 이들 기업들의 지분 역시 주로 모기업 계열사들로 구성돼 있다.

때문에 모기업 계열사 위주의 비즈니스에만 집중하면 중소기업들이나 여론으로부터의 원성은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은 SI사업을 빌미로 타 분야시장으로까지 시장을 확대해 왔다. 타 분야로의 시장 확대가 그 기업의 미래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이들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계열사 시장도 문을 열어 주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계열사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채 다른 시장을 개척하려다 보니 남아있는 시장은 주로 정부공공, 금융, 교육 등의 일부 시장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른 경쟁은 처절할 만큼 가격덤핑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곧바로 컨소시엄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삼성그룹, SK그룹, LG그룹의 계열사 시장은 이들 SI사들이 모두 독점하고 있다. 삼성SDS, SK C&C, LG CNS 등이 설립되지 않았다면 이들 계열사 시장은 중소기업들에게 돌아갔을 게 분명하다.
삼성, SK, LG 그룹 계열사의 IT 관련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이들 대기업 SI사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 예를 들어 IBM이나 오라클 등의 기업들은 대기업 계열사에 관계없이 대기업 시장에서의 비즈니스가 자유롭게 이뤄진다.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기업은 못 들어오게 막고,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우리나라 기업들의 아주 잘못된 의식이자 현주소다.

'내 계열사 시장은 당연히 내 것이고, 다른 시장도 내 것'이라는 이런 모순을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상생을 위한 그 어떤 방안을 내 놔도 겉치레에 불과할 뿐 진정성은 없다.

올해 국내 SI 프로젝트를 덤핑으로 거의 독차지한 SK C&C의 김신배 대표이사 부회장이 상생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SK C&C의 덤핑공세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허 허"하며 한 숨만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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