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케일 파워
사진=뉴스케일 파워

[아이티데일리] 원자력 에너지가 수십 년 동안의 침체를 지나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석탄이나 천연가스 중심의 화석연료 발전이 기후 변화 대응의 압박 속에 퇴조를 보이고,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각광을 받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청정에너지로 분류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자력은 두 번째로 큰 저탄소 전력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청정에너지와 재생에너지는 다른 개념이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논란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원자력은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자연적으로 계속 보충되는 연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의 원자력 에너지는 이런 논쟁 가운데 최적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SMR(소형 모듈형 원자로) 모델이다.

현재 원자력 에너지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은 과거의 기가와트(GW)급 대형 원자로가 아니다. 지금까지 틈새 또는 투기적 기술로 여겨졌던 SMR이 세계 에너지 전략과 지정학적 전환의 중심으로 뛰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SMR의 매력은 확장성, 부지 선택의 유연성, 그리고 저탄소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데이터센터 등 AI에 의해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분야와 함께, 산업계 전반적으로 불어닥치고 있는 탈탄소화 물결의 필수 요소다.

이에 따라 SMR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상업 프로젝트 단계로의 전환이 공식적으로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일로에 있다.

SMR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은 2007년 설립된 뉴스케일 파워(NuScale Power)다.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뉴스케일 파워의 기원은 지난 2002년 미국 에너지부가 오리건 주립대학과 아이다호 내셔널 랩의 SMR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한 프로그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연구 지속을 위해 회사가 설립됐던 것이다.

회사 운영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고 ‘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았지만, 뉴스케일 파워는 이제 명실공히 SMR 트렌드를 이끈 선구자이며 업계의 리더다.

지난 9월 초, 뉴스케일은 테네시밸리공사(TVA) 및 엔트라1 에너지(ENTRA1 Energy)와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TVA 관할 지역에 최대 6GW 규모의 SMR 모듈 발전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홈페이지에서는 이를 미국 역사상 최대 SMR 건설 프로젝트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거래 내용은 뉴스케일에 큰 희망을 안겨주는 구조다. TVA가 초기 투자 및 규제 부담을 떠안는 대신, 엔트라1이 시설의 자금조달은 물론 소유와 운영을 수행하고, TVA에는 장기 전력 구매 계약(PPA)을 통해 전력을 공급한다. 이는 기관투자가 자본을 유입시키고, SMR을 실증 단계 기술에서 은행 융자가 가능한 공공 인프라 자산 등급으로 전환시킬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SMR 경쟁은 단순 전력 생산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세계 에너지 수요의 약 20%를 차지하면서도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산업용 에너지’ 공급 시장이 주요 목표다.

테레스트리얼 에너지(Terrestrial Energy)의 경우 냉각재와 연료 모두에 용융염을 사용하는 4세대 통합 용융염 원자로(IMSR)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기술 분야에서는 손에 꼽히는 기업이다. 높은 운전 온도는 청정 녹색수소, 합성연료 및 산업용 소재 생산에 적합하다.

지난 10월, 테레스트리얼 에너지는 HCM II 어퀴지션과 SPAC(기업인수특수목적회사) 합병을 끝내고 총 약 2억 9,300만 달러를 조달했다. 증시에서 거래되는 회사 티커는 IMSR이다. 이 소식은 CNBC를 비롯한 다수의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테레스트리얼 에너지는 일단 사업 영역을 미국 시장으로 좁혀 집중하고 있으며, 첫 상업 프로젝트는 텍사스A&M 대학교에 계획되어 있다. 성공한다면 이 용융염 설계는 기존 경수형 SMR을 보완하며, 공장·정유소·화학 플랜트가 요구하는 24시간 가동 가능한 탄소제로 고온 원ᄌᆞ력열 공급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다.

수 많은 외신과 국내 보도(본지 포함)에서 알려졌듯이 AI로 인해 전력 부족이 심화되면서, 빅테크들은 스스로 에너지 개발 사업자로 변모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협력해 워싱턴주 리치랜드 인근에 캐스케이드 첨단 에너지 시설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이 시설은 X에너지의 Xe-100 SMR을 도입하며, 초기 320MW에서 최대 960MW로 확장된다. 실질적으로 독자 에너지 발전을 모색함으로써 아마존은 스스로가 발전 사업자가 됐다.

모듈형 디자인 덕분에 SMR은 데이터센터 인근 설치가 가능하며, 80MW 단위로 확장할 수 있어 초대형 AI 연산 인프라 특성에 적합하다. 이 때문에 빅테크들은 외부로부터의 전력 공급을 기다리지 않고 자급 형태의 전력망을 구축하고 있다. 안정성 면에서도 우월하다는 판단이다. 데이터센터에 관한 한 구글이나 메타 등 나머지 경쟁자들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감당하기 위해 자체 SMR를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여러 정부들이 SMR을 에너지 안보 및 산업 경쟁력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기술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SMR을 대량 생산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성숙도 부족 ▲규제 환경 ▲프로젝트 자금조달 불확실성 등이 선행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초기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SMR 성장 동력은 급속히 약화될 수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SMR이 청정에너지 목표를 달성하고 산업에
뿌리내리는 솔루션으로 자리잡을 지 결정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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