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A·DPP 통합 프로젝트로 한국형 지속가능 제조 모델 선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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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데일리] 지속가능성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지표가 됐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보고서 중심 ESG’에서 ‘데이터 중심 지속가능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전과정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와 디지털 제품 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이 자리하고 있다.

LCA는 제품의 원료 채취부터 제조·운송·사용·폐기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 전체의 환경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국제 표준 기법이다. DPP는 해당 데이터를 디지털 여권(QR코드 등) 형태로 수출 시 제출해야 하는 제도로, 제품의 탄소발자국(PCF, Product Carbon Footprint)을 LCA 기반으로 산출해 증명하는 체계다. 즉 LCA는 DPP의 핵심 입력값이며, 두 제도는 ‘산업의 탄소 데이터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증명해야 하며, 나아가 제품의 전 생애를 관리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유럽, 규제가 아닌 산업 정책으로 전략 전환

유럽연합(EU)은 환경 규제를 산업 전략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배터리법, 지속가능 제품 규제(ESPR) 등 주요 제도는 모두 LCA·DPP를 근간으로 한 데이터 기반 규제다. DPP 제도는 2024년 7월 발효됐으며, 2027년 2월부터 배터리 산업에 의무 적용이 확정됐다. 이로써 관리 단위는 기업 레벨(Corporate-level)에서 제품 레벨(Product-level)로 전환됐다.

부품·공정·소재별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수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고서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참여의 입장권이 데이터로 대체되는 현상이다.

유럽은 이 같은 규제 체계를 데이터 스페이스(Data Space) 전략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데이터 스페이스는 기업이 데이터를 스스로 보유한 채, 필요한 순간에만 계약 기반으로 특정 데이터를 교환함으로써 데이터 주권과 보안을 지키면서도 협업이 가능한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독일의 IDS 표준에서 출발해 가이아-X(Gaia-X), 카테나-X(Catena-X)로 이어진 데이터 스페이스 생태계는 데이터 주권과 산업 협업을 동시에 보장하는 플랫폼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AI·자동화 기술과 결합해 실시간 ESG 관리 체계를 가능케 했다.

AI와 데이터 기반 인프라가 LCA·DPP 체계의 실질적 실행력으로 작용하며, 이는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 대응 서둘러야…DPP 미도입 시 EU 수출 제한

한국 기업이 대응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DPP 미도입 시 EU 수출이 사실상 제한되므로 수출 경쟁력 확보의 측면에서 필수적이다. 아울러 공급망 전체의 ESG 이행 여부가 평가 항목으로 반영되므로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며 브랜드 가치와 직결되므로 소비자 인식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글로벌 규제 대응의 무게 중심 역시 디지털화된 LCA로 옮겨가고 있다. DPP에 필요한 탄소발자국(PCF) 데이터는 스마트팩토리 환경에서 이미 수집되는 생산량, 전력 사용량, 원자재 투입량 등 제조 데이터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면, ESG 공시와 공급망 보고가 실시간으로 처리되는 AI 기반 디지털 규제 대응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IBCT, SK AX, 다쏘시스템코리아, 코피니티 X 관계자
(왼쪽부터) IBCT, SK AX, 다쏘시스템코리아, 코피니티 X 관계자

이 같은 상황에서 다쏘시스템은 지난 10월 부산에서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LCA·DPP 전략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한국 제조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구체적 대응 전략과 실행 로드맵을 제시했다. 행사에는 다쏘시스템코리아를 비롯해 SK AX, IBCT, 트레스웍스 등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유럽의 LCA·DPP 제도 대응 방안, 데이터 스페이스 연계 전략, BOM(자재명세서) 기반 탄소 관리 모델 등을 공유했다.

다쏘시스템 곽준범 파트너는 “평균값 기반 탄소 산정에서 벗어나, 설계·조달·생산 데이터를 통합한 BOM 기반 LCA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OM 구조를 통해 각 부품의 탄소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상위 구조로 집계함으로써, 설계 단계에서부터 탄소 감축을 설계하는 디지털 체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쏘시스템, SK AX, IBCT, 코피니티-X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로 구체화됐다. 이 협의체는 한국 기업이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공급망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출범했다.

다쏘시스템은 3D익스피리언스(3DEXPERIENCE) 플랫폼을 통해 LCA·DPP 데이터를 실제 설계·생산 공정에 통합해 탄소 감축 실행 체계를 지원한다. SK AX는 유럽 표준 기반의 카테나-X 온보딩(Onboarding) 및 데이터 컨설팅을 추진한다. IBCT는 카테나-X 공인 인증 플랫폼인 인피리움(Infirium)을 제공해 DPP·추적가능성·PCF 등 데이터 기반 통합 솔루션을 지원한다. 코피니티-X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위한 카테나-X 플랫폼 운영사로서 국제 연계와 교환 체계를 담당하는 식이다.


‘마이셀 프로젝트’, 국내 첫 LCA·DPP 연계 성공

다쏘시스템은 바이오소재 스타트업 마이셀(Mycel)과 함께 국내 최초로 LCA와 DPP를 코피니티-X 네트워크에 직접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로써 한국 기업이 유럽 공식 DPP 네트워크에 연결된 첫 사례를 만들게 됐다.

이번 계약을 통해 마이셀은 월 단위로 LCA·DPP 데이터를 발행하고 코피니티 X 데이터 스페이스와 직접 연계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한국 기업이 유럽 공식 LCA·DPP 네트워크에 연결된 첫 사례다. 다쏘시스템은 데이터 수집·분석·국제표준 인증을 담당하는 트레스웍스, 시스템 통합 및 글로벌 네트워크 연계를 맡은 IBCT와 함께 엔드투엔드 데이터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다쏘시스템코리아 정운성 대표는 “LCA와 DPP는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닌, 전략적 경쟁력 확보의 도구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다쏘시스템은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국내 제조업이 지속가능한 데이터 산업 생태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데이터 주권, 한국 제조업의 새 기준

이제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생태계의 주도권을 누가 갖는가다.한국은 높은 제조 역량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는 아직 부족하다. LCA와 DPP를 단순한 보고 체계가 아닌 실행 가능한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

LCA·DPP에 관련해서 발표하는 다쏘시스템코리아 김현 파트너
LCA·DPP에 관련해서 발표하는 다쏘시스템코리아 김현 파트너

지난 10월 부산에서 열린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LCA·DPP 전략 컨퍼런스’에 참가한 다쏘시스템코리아 김현 파트너는 “한국 기업이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고, 관리하고, 교환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탄소 감축의 실행력과 데이터 주권 확보가 곧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LCA와 DPP는 규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언어가 되고 있다. 제품의 생애주기를 디지털로 관리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업만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AI와 데이터 인프라, 그리고 국제 표준의 결합은 한국 제조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쟁 구도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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