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칼리지, 첫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프로그램 ‘스파크 1.0’ 본궤도
한국 명문대, 미국 스탠포드 대학 등 산-학-연 연계 모델 적용
[아이티데일리] 영국 최고 명문인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지식의 요람’을 넘어 ‘창업의 산실’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에 집중했던 케임브리지 대학이 이제는 학생과 졸업생에게 창업 기회를 직접 제공하고, 산업 생태계와의 연결을 적극 주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상징이 바로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칼리지가 최근 출범시킨 첫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프로그램 ‘스파크 1.0(SPARK 1.0)’이라고 BBC, 포브스 등이 전했다.
◆ “지식만으론 부족하다”…대학, 창업 플랫폼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영국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기업가 경험과 경력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단순히 취업 경쟁에서 승부를 보는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회사를 세우고 성장시켜 산업에 변화를 이끄는 ‘창업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카미알 모하데스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기업가정신 랩(E-랩, Entrepreneurship Lab) 공동창립자 겸 이사는 “케임브리지는 세계를 바꾼 학문의 요람이었지만, 이곳 학생들에게 창업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선택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자신의 아이디어가 산업과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더 대담하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스파크 1.0 출범의 이유를 설명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이 보유한 막대한 지적 자산(IP)을 스타트업 스핀아웃(spin-out) 형태로 수익화하려는 전략도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있다. 단순히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산업과 연결해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것이 이제 대학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유수 대학이나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 스탠포드 대학 등이 오랫동안 진행해 왔던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것임을 시사한다.
◆ ‘스파크 1.0’…스타트업 첫걸음을 위한 맞춤형 지원
이번 프로그램은 창업 경험이 없는 학생과 졸업생이 사업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파크 1.0은 멘토링, 자금조달 전략, 초기 고객 확보, 제품개발 등 스타트업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교육하며, 업계 전문가와의 네트워킹 기회도 제공한다.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트레버 클로슨은 스파크 1.0 프로그램 1기 코호트(참가자 그룹) 두 멤버의 스타트업 설립 과정을 들어 포브스지에 기고했다.
알리 드레이콧은 여성들이 난자 냉동 과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 ‘에그 어드바이저(Egg Advisor)’를 창업했다. 난자 냉동 경험에서 출발한 그의 사업은 여성 헬스테크 분야인 펨테크(Femtech) 의 빠른 성장성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펨테크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첨단 기술과 상품, 그리고 서비스를 의미한다.
버나드 초우는 의사들이 환자 기록에서 필요한 정보를 AI로 빠르게 추출하도록 돕는 플랫폼 ‘메드 아케이드(Med Arcade)’를 공동 창업했다. 의료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질적 문제의식이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한 사례다.
두 창업자의 공통점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문제 해결형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대학의 인큐베이터는 이들에게 단순한 교육 공간을 넘어, 실험실 밖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업 훈련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클로슨은 진단했다.
◆ 커지는 대학의 역할…창업 생태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흥미로운 점은 영국에서 스타트업 지원 기관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에는 벤처캐피털(VC) 이나 액셀러레이터가 초기 창업 지원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대학이 그 역할을 나누고 있다.
드레이콧은 “케임브리지는 단순히 수익성뿐 아니라 글로벌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며 “이런 환경은 펨테크처럼 전통 VC가 투자에 소극적인 분야에서 특히 큰 장점이 된다”고 말했다. 초우 역시 “케임브리지와의 연결을 통해 협업 기회를 만들고 전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인큐베이터의 강점”이라며, 대학 생태계가 제공하는 풍부한 자원의 가치를 강조했다.
◆ ‘창업 친화적 대학’ 경쟁 본격화
케임브리지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프로그램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킹스칼리지는 이미 기업가정신 랩을 통해 워크숍, 강연, 에세이 공모전 등을 개최하며 창업 문화 확산에 힘써왔다. 이번 인큐베이터 출범은 이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는 대학이 단순한 ‘지식 생산 기관’에서 ‘산업 생태계의 촉매’로 역할을 넓히는 흐름의 일환이다. 특히 케임브리지처럼 세계적으로 막강한 연구력과 인재 풀을 가진 명문대가 창업 지원을 체계화할 경우, 지역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꿀 잠재력이 크다.
전문가들은 대학 중심 스타트업의 확대가 향후 영국 및 유럽의 기술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학생과 연구자가 가진 아이디어와 기술이 창업을 통해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되면, 실리콘밸리와 같은 ‘지식-산업-자본’ 선순환 구조가 대학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케임브리지 유니버시티 파운더스(Cambridge University Founders) 와 같은 이니셔티브가 이런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 스파크 1.0은 그 시작에 불과하지만, 성공한다면 영국 대학들이 ‘지식의 전당’을 넘어 ‘혁신 기업의 인큐베이터’로 진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케임브리지가 보여준 변화는 명문대의 전통적 역할이 더 이상 지식 전수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대학은 산업과 연결되고, 학생은 창업가로 성장한다. 결국 이 움직임은 영국이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다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로 해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