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35개 기업, ‘비 지속적’ 탄소 제거 방식에 의존해 ‘그린 워싱’
‘지속적’ 탄소 제거는 현재 전 세계 연간 탄소 제거의 0.1% 불과
[아이티데일리]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넷제로)를 달성하려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로 효과적인 탄소 제거(CDR) 방식은 일부에 불과하며, 대기업들이 주로 투자하는 분야는 이와 거리가 멀다고 기후변화와 환경 정의를 다루는 비영리 온라인 미디어 그리스트가 유럽 싱크탱크인 뉴클라이밋 연구소(NewClimate Institute)의 보고서를 인용해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주요 35개 기업은 단기적인 나무 심기 등 ‘비 지속적’ 탄소 제거 방식에 의존하며 기후 오염을 상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안정적인 탄소 제거에 투자하는 소수의 기업들은 대부분 심층 탈탄소화, 즉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있다.
보고서는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 주장과 실제 글로벌 순배출 제로 목표 사이에 ‘위험한 불일치(dangerous mismatch)’가 있다고 지적한다. 인류가 배출하는 불가피한 오염을 탄소 제거로 상쇄하는 2050년 순배출 제로 달성은 지구 온난화를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탄소 제거는 대기 중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암석, 토지, 해양 저장소, 인공 제품 등에 저장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이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식은 지질학적인 구조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거나 암석으로 변환해 최소 1,000년간 고정하는 것이다. 이는 화석연료 연소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머무는 시간과 맞먹는다.
그러나 이같은 ‘지속적’ 탄소 제거는 현재 전 세계 연간 탄소 제거의 0.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나무 심기, 습지 복원, 토양 내 탄소 매립 등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수십 년에서 몇 세기 동안만 탄소를 가둘 수 있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을 ‘핵심 시기’로 보고 있으며, 지속적 CDR의 확대를 위해 정부 차원의 투자와 규제가 필수라고 지적한다. 민간 부문 역시 프로젝트와 연구 자금 지원을 통해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건설 산업처럼 완전한 탈탄소화가 어려운 산업에서는 지속적 CDR이 불가피하게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농식품, 항공, 자동차, 패션, 화석연료, 기술, 전력 등 7개 산업의 세계 대기업 35곳을 분석하고 있다. 그중 기술 기업들이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까지 계약된 지속적 CDR의 70%를 차지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기술 기업들이 여전히 비지속적 방식까지 포함해 넷제로 달성에 활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기술 기업은 비지속적인 방식을 채용하지 않아도 완전한 탈탄소화가 가능하므로 넷제로 달성을 탄소 제거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항공 산업은 두 번째로 적극적이었지만, 2050년까지 잔여 배출을 상쇄할 합리적 계획을 세운 항공사는 일본 ANA뿐이었다.
농식품·자동차·패션 분야 15개 기업 중에서는 H&M과 스텔란티스만 지속적 CDR에 투자하고 있었다. 전력 기업 중 이온과 외르스테드가 일부 프로젝트를 지원했지만, 외르스테드의 성과가 덴마크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 모두에 이중 계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석연료 기업 5곳(에퀴노르, 엑슨모빌, 쉘, 시노펙, 토탈에너지)은 주로 배출 지점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탄소포집저장(CCS)에 집중했지만, 이는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줄이지 못한다.
미국 미시간대학 기후과학자 조너선 오버펙 교수는 이 보고서를 두고 “현재 CDR 분야는 서부 개척시대처럼 무질서하다”며, 기업들이 탄소 저감 대신 CDR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선순위는 배출 감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실제로 지속적 CDR은 현재 거의 효과가 없다고 강조한다. 2023년 기준, 이 방식으로 연간 제거된 이산화탄소는 230만 톤에 불과해, 화석연료와 시멘트 산업 배출량의 1만5000분의 1 수준이다.
뉴클라이밋 연구소는 자발적 민간 이니셔티브가 정부 규제를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최소한 ▲‘지속적’ 제거 정의 명확화 ▲기업의 배출 이력 및 재정 능력에 따른 투자 책임 규정 ▲감축 목표와 제거 목표 분리 등을 제안했다.
궁극적으로 기업 기후 공약, 특히 지속적 CDR은 정부 차원의 규제가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MIT 존 라일리 교수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소액의 자금을 투입하겠지만, 자발적 지침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