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인해 연구 현장 변화…‘바이브 리서치’ 실현 가능성 주목

[아이티데일리] 많은 AI 솔루션이 연구활동에 활용되고 있는 가운데 네이처 관계자들이 AI를 활용한 논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학계는 물론 IT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AI를 활용한 논문은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같은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지=제미나이 생성)
(이미지=제미나이 생성)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AI는 기존의 경험, 이론, 계산, 데이터에 이어 5번째 과학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것부터 데이터 분석에 이르기까지 연구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는 가설 형성, 실험 설계, 데이터 수집·분석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다. 먼저 가설 형성의 경우 AI가 방대한 양의 논문을 분석해 논문 간의 숨겨진 관계를 찾아내고, 연구자가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AI 기반 문헌 탐색 도구들은 수억 건의 논문 데이터를 분석해 연구 트렌드를 파악하고 논문 간의 연결성을 시각화하는 기능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험 설계 분야는 AI와 로봇이 결합된 ‘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oratory)’이 등장하며 확대되고 있다. 전통적 실험에선 과학자들은 수작업으로 과업을 진행해 분석 속도가 느리고 숙련도에 따라 연구 결과가 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AI가 연구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자율실험실이 도입되며 이같은 문제가 해결됐다. 실제 위스콘신-메디슨 대학교 연구팀, 미국의 아르곤 국립연구소 연구팀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AI가 연구 현장에 도입되면서 데이터 수집 방법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사람이 직접 수행했던 설문, 측정, 기록 작업은 이제 AI가 수행한다. 이로써 실시간으로 대규모의 데이터를 반영하고 오류를 줄여 정확도와 재현성을 향상하고 있다. 기록이 자동으로 표준화돼 데이터의 신뢰성도 대폭 높아졌다. 또한 AI를 통해 데이터 품질을 관리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AI가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와 이상치를 탐지하고 교정해준다.

마지막은 데이터 분석이다. 기존에는 데이터 분석을 수행하기 위해선 통계 지식, 수학적 기반, 프로그래밍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 데이터 전처리부터 AI 모델의 학습, 모델 튜닝, 배포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다양한 솔루션들이 출시되며 비전문가도 모델을 손쉽게 만들어 데이터 분석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AI는 대규모 데이터에서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은 점차 발전에 멀티모달 데이터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듯 AI는 연구의 새로운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학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AI를 통한 연구의 생산성 극대화를 주장하는 찬성론과 AI를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신중론이 있다. 한편 AI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점에서 연구자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반대론도 제기된다.
 

AI 연구 활용 신중해야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계열 편집자들은 AI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업계에 따르면, 편집자들은 지난 25일 열린 ‘한국뇌신경과학회 28회 국제학술대회(KSBNS 2025)’에서 논문 AI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밝혔다. AI를 문법 교정이나 문체 다듬기 같은 언어 보조 도구로는 인정하나 데이터 해석이나 연구 결과 해석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AI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므로 저자가 될 수 없으며 논문의 적힌 내용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연구자가 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동료 검토 과정에서 AI 활용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논문 원고는 외부에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 기밀 문서지만, AI에 입력할 경우 외부 학습에 활용될 우려가 있고 동료 검토자는 기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AI가 활용될 경우 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연구자가 언어 보조 도구로 AI를 활용하는 경우 반드시 논문에 투명하게 공개할 것도 강조했다.

이 외에도 학계에서는 AI를 활용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 AI의 기술적 한계와 신뢰성 문제를 들고 있다. 많이 활용되고 있는 생성형 AI가 환각 현상으로 인해 그럴듯한 허위 정보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논문 인용 과정에서 거짓 참고문헌을 생성하거나 통계 수치를 왜곡하는 사례가 발견된 바 있다.

AI가 논문을 인용하는 과정과 AI 기반 연구 평가 시스템도 문제다. AI가 접근할 수 있는 논문은 대부분 학술지 위주라 상용 구독 저널의 논문을 충분히 학습하지 못하고 편향된 결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기반 연구 평가 시스템에 대한 악용 사례도 드러났다. 니혼케이자이 아시아에 따르면, 일부 연구자들이 ‘보이지 않는 프롬포트’를 통해 AI 심사자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로 인해 AI 기반 연구 평가 시스템의 조작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연구자의 본질적인 역량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신진 연구자들이 AI 도구에 의존할 경우, 연구자로서 갖춰야 할 비판적인 사고 능력과 지식 축적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할 수 있다.
 

AI, 연구자의 새로운 동반자로 자리매김

하지만 AI가 연구의 본질을 훼손하고 연구자의 역량을 저해한다는 우려와 달리,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찬성론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 연구자의 능력을 확장하고 연구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향상하는 ‘동반자’로 본다. AI가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해 연구자가 가치 있는 탐구와 창의적 사고에 몰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AI 업계 일부에서는 이 같은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바이브 리서치(Vibe Research)’로 제시하고 있다. 과거 손으로 빨래하던 시절에 세탁기와 건조기의 등장으로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연구도 이제 AI가 반복적인 업무를 맡고 사람은 본질적인 탐구에 몰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즉 연구자들은 사전에 엄밀한 논리를 설계하지 않고도 AI의 도움을 받아 가설 정교화, 문헌 탐색, 인용 작성, 동료 평가 등 논문 작성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

AI는 단순히 연구자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을 넘어 과학적 난제 해결에 기여하기도 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2018년 단백질 구조 예측 AI 모델 ‘알파폴드’를 출시해 수백만 개의 복잡한 3D 단백질 구조를 밝혀냈으며 과학적 연구를 가속화하기 위해 2억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 예측을 제공하는 ‘알파폴드 DB’를 공개해 관련 연구를 촉진 시켰다.

글로벌 학계에서는 AI 활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움직임도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탠퍼드대학교는 AI가 제1 저자이자 동료 평가자로 참여하는 컨퍼런스 ‘에이전트포사이언스 2025’를 개최했다. 이는 AI가 생성한 연구에 대한 평가와 과학 분야에서 AI의 책임 있는 참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형성하는 데 기반이 될 전망이다.

국내 AI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궁극적으로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연구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AI 활용 여부를 두고 논쟁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똑똑하게 쓸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으로 본다”며 “AI는 연구자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더 많은 지식, 더 빠른 성과, 더 높은 완성도로 학계를 이끌어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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