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만에 타협점 찾은 구글, 위성 이미지 가림 처리 및 좌표 정보 삭제 약속
[아이티데일리] 구글이 한국 정부의 안보 관련 요구 사항을 전면 수용하며 국내 지도 서비스 확대에 본격 나선다. 구글의 대외협력 정책 지식 및 정보 부문 크리스 터너(Chris Turner) 부사장은 9일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위성 이미지 속 보안 시설을 가림 처리하는 것에 더해 한국 영역의 좌표 정보를 구글 지도의 국내외 이용자들 모두에게 보이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에 따라 구글은 2007년 첫 지도 반출 요청 이후 18년간 지속된 한국 정부와의 갈등에서 일단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앞서 구글은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군사기지 등 보안 시설 정보가 담긴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두면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즉 그간 구글 지도 서비스 제한의 핵심 쟁점은 정밀도와 보안성의 상충이었다. 올해 2월 구글이 국토지리정보원에 세 번째로 신청한 지도는 1대 5,000 축척의 국가기본도로, 지도상 1cm가 실제 50m에 해당하는 고정밀 수준이다. 이 지도에는 건물과 도로, 골목길까지 세세하게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돼 있어 안보 우려가 컸다.
이런 가운데 발표된 구글의 이번 양보안은 미국 정부의 디지털 무역장벽 압박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은 위치기반 데이터 수출을 제한하는 유일한 주요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미국 기술 기업을 공격하는 국가들에 맞서 싸울 것”이라며 “디지털 세금, 서비스 법안, 시장 규제로 차별적 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해당 국가 수출품에 상당한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얼마 전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한국의 지도 반출 제한으로 미국 기업이 연간 1억 3,050만 달러의 매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그간 거부해왔던 보안 시설 가림 처리와 좌표 정보 삭제 요구를 수용한 것은 전향적 변화”라며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거세진 통상 압박과 함께, 구글이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구글의 이번 양보안에는 국내 파트너십 강화도 포함됐다. 터너 부사장은 “오랜 파트너인 티맵모빌리티, 에스피에이치(SPH)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국내 파트너사들과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국내 산업 발전에 다각도로 기여하겠다”며 “필요한 경우 이미 가림 처리된 상태로 정부 승인된 이미지들을 국내 파트너사로부터 구입해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구글의 양보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 이호석 연구원과 호서대학교 곽정호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할 경우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약 18조 4,600억원의 누적 매출이 추가 발생하고, 공간정보 산업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12.49%, 고용 성장률도 6.25% 증가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반출을 불허할 경우 해당 성장률은 각각 4.31%, 3.37%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크리스 터너 부사장은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구글 지도 역시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며, 한국 이용자와 해외 관광객 모두에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이번 발표에 따라 구글이 빠르게 지도 서비스를 개선하고 관련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구글 지도의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능과 도보 길찾기 기능이 제한되고 있다. 구글은 지도 데이터 반출이 허용되면 전 세계 20억 명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한국에서도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구글 지도 국내 파트너사 에스피에이치(SPH)의 소광진 대표는 “구글 지도 파트너로서, 당사는 한국 공간정보 산업의 글로벌 확대를 위해 구글과 협업할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며 파트너십 확대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우리 정부는 이번 구글의 양보안을 토대로 오는 11월 11일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 주요 부처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이 참여하는 고위급 협의체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18년간 지속된 지도 반출 갈등이 구글의 전격적인 양보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