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률 최대 75%…온난화로 과일 박쥐 활동 반경 북쪽과 고지대로 확대
니파 바이러스, 팬데믹 위협으로 부상…백신·치료제 개발 속도전
[아이티데일리] 기후 변화가 날씨 패턴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건강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기관 ICN(인사이드클라이미트뉴스)는 과학자들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과일박쥐(과일을 주식으로 하는 박쥐)가 점차 확산하면서, 이들이 옮기는 치명적인 니파(Nipah) 바이러스의 위험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니파 바이러스는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고 치명률이 40~7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니파를 ‘가장 주목해야 할 전염병 중 하나’로 분류했다. 그러나 발생 빈도가 적어 대중적 관심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이미 경험했듯, 발병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과거 사례가 보여준 치명성
실제로 지난 2018년 인도 남부 케랄라주에서는 니파 바이러스가 단 한 달 만에 1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감염자는 고열과 호흡곤란을 보이다가 급격히 악화돼 뇌염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해마다 수십 건의 발병이 보고되는데, 현지에서는 박쥐의 침과 소변에 오염된 대추야자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문화적 관습으로 인해 박쥐와의 접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이후 기록된 니파 감염 사례는 350건 미만이었다. 하지만 발병 시 치명률은 최대 75%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박쥐가 숙주 역할을 하는 점은 또 다른 위험을 낳는다. 박쥐는 먹이와 서식지를 찾아 인간의 거주지 근처까지 이동하기 때문에, 가축을 매개로 한 간접 전파도 쉽게 일어난다. 1990년대 말 말레이시아에서는 돼지 농장에서 니파가 확산되며 수백 명이 감염되고 1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수십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기도 했다.
◆ 기후 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위험
과학자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가 니파 바이러스 확산을 촉진한다는 사실이다. 기온 상승으로 과일박쥐의 활동 반경은 점차 북쪽과 고지대로 확대되고 있으며, 폭염과 가뭄은 박쥐의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바이러스 배출 빈도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산림 파괴, 도시 확장, 농지 개간은 박쥐의 서식지를 축소시키고 인간과 가축의 생활권과 겹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니파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이 출현할 가능성을 키운다.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와 감염병 위기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며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질수록 전염병의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 국제 사회의 대응
국제 전염병 대비 기구인 CEPI(전염병대비혁신연합)는 니파를 잠재적 팬데믹 위협으로 지정하고 이미 1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 연구진은 코로나19 백신 플랫폼을 활용해 니파 백신을 개발 중이며, 올해 방글라데시에서 첫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그러나 발병 규모가 작아 임상시험 진행이 쉽지 않고, 상업적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점이 걸림돌이다.
이와 함께 치료제 개발도 병행되고 있다. 항바이러스제인 리바비린과 모나클론 항체 등이 실험 단계에서 가능성을 보였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법은 없는 상태다. WHO와 CEPI는 “니파 백신은 코로나19 사태에서와 같은 긴급 상황 발생 전에 미리 준비돼야 한다”며 선제적 투자와 협력을 강조했다.
◆ 사회적·문화적 과제
과학적 해결책과 함께 현지 사회의 인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방글라데시와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대추야자를 생즙으로 마시는 문화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감염 위험을 높인다. 또한 의료 인프라가 취약해 발병 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다 해도 지역 사회의 문화적 습관과 생활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 팬데믹 교훈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는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터지면 치명적인 질병’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니파 바이러스 역시 바로 그런 유형에 속한다. 아직 전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기후 변화와 인간 활동이 맞물리면서 그 가능성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니파 바이러스는 단순히 의학적 과제가 아니라, 기후 위기·환경 파괴·글로벌 보건 체계의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적 사례”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환경 보호와 기후 변화 대응을 통해 박쥐와 인간의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