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수화 산업용 멤브레인과 동일한 방식 제작, 상용화 가능성 높여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등 대학가 연구진 개발
[아이티데일리] 탈탄소의 목소리가 높지만, 석유는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에너지원이었다. 정유회사는 연료와 화학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점성이 높은 원유를 가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벼운 탄화수소는 위로 올라가며 휘발유, 제트 연료, 난방유 등 다양한 성분으로 분리된다.
그러나 에너지 소모가 큰 정유 공정은 화석연료를 태워 작동하며,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약 1%, 전 세계 총 탄소 배출량의 6%를 차지한다. 이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탄소 저감을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얇으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플라스틱 필름을 사용해 가솔린에 사용되는 가벼운 탄화수소를 더 무거운 탄화수소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고 사이언스지가 전했다. 이 필름은 특히 적당한 온도에서 작동하면서 공정에 필요한 에너지 요구량을 크게 줄여 준다고 한다.
이 연구는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화학공학자 베니 프리먼(Benny Freeman) 연구진과 MIT 등 연합 팀이 수행했다. 프리먼은 “이번 연구는 상당한 진전”이라며, 새로운 멤브레인(막)은 해수를 식수로 정수하는 해수 담수화 플랜트에서 사용되는 필터와 유사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상용화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담수화 멤브레인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간 석유 분리를 위한 멤브레인 개발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예를 들어 2020년, 조지아 공대의 화학공학자 라이언 라이블리(Ryan Lively) 팀은 원유에서 가장 가벼운 탄화수소를 분리해 낼 수 있는 멤브레인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런 멤브레인 중 다수는 스파게티처럼 얽힌 고분자 사슬로 구성되어 있어 원유에 노출되면 팽창한다. 이러한 팽창은 망처럼 짜인 구조 전체를 확장시켜 더 큰 구멍이 생기고, 결국 무거운 원유 성분도 통과하게 된다. 더구나 원유에 포함된 용매의 화학 성분은 이 고분자를 용해시킬 수도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했던 MIT의 화학공학자 재커리 스미스(Zachary Smith) 교수는 “다수의 엠브레인은 팽창으로 인해 효과가 없어지고 결국 모든 성분이 통과하게 되고 무게에 따라 분리해 걸러내는 선택성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런 열화와 팽창을 줄이기 위해 취해진 방법은 고분자 사슬 사이에 ‘교차결합(crosslink)’이라 불리는 분자 구조 지지대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석유가 멤브레인을 통과하는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더 큰 면적의 멤브레인이 필요해져 상용화 비용이 상승한다.
새로운 연구 결과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청신호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연구진은 용매에 노출되더라도 강성을 유지하는 고분자를 기반으로 멤브레인을 설계했다. 일정한 크기의 기공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진은 모노머(단량체, 고분자를 이루는 기본 단위)라고 불리는 두 세트의 폴리머를 사용했는데, 그중 하나는 석유에 잘 견디는 뾰족한(spiky)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팽창을 방지하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교차결합 구조도 도입했다.
이 뾰족한 모노머는 서로 빽빽하게 뭉치지 않기 때문에 기공 크기가 안정적으로 유지됐으며, 유량도 일정했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화학결합인 아미드(amid) 결합 대신 석유 친화성이 더 높은 이미드 결합으로 전환해 원하는 탄화수소가 멤브레인 기공을 더 쉽게 통과하도록 했다.
이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연구진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멤브레인은 휘발유에 사용되는 소형 탄화수소를 선택적으로 걸러내는 성능 면에서 지난 2020년 조지아 공대 연구팀이 개발한 멤브레인보다 약 4배 더 뛰어났으며, 유량 역시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멤브레인 제조 방식도 매우 톡창적이라는 평가다. 현재 상용 담수화 멤브레인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두 종류의 모노머를 결합해 단일 고분자 필름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한 모노머는 물에, 다른 하나는 기름에 녹으며, 이 둘이 만나는 물-기름 경계면에서 반응이 일어나 얇고 연속적인 멤브레인이 형성된다.
하지만 담수화에 사용되는 수용성 단량체는 석유 분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에 연구진은 양쪽 모노머 모두를 기름에 녹인 뒤, 물과 기름-물 경계면에 끌리는 촉매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공정을 수정했다. 이 경계면에서 촉매가 두 모노머와 반응해 석유 분리용 멤브레인을 형성한다. 이 방식은 기존 담수화 멤브레인 제조업체들이 쉽게 도입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용화도 비교적 수월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담수화 산업이 이미 열 기반 공정에서 멤브레인 방식으로 전환하며 비용 효과를 입증하고 있는 만큼, 정유산업도 멀지 않은 미래에 담수화 산업의 선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