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영구동토층 붕괴→온실가스 방출→온난화 가속 피드백 루프 형성
잠들어 있던 탄저균까지 퍼져 어린이 사망하기도

점점 확대되고 깊어지는 시베리아 ‘지옥의 입구’. 사진=서터스톡
점점 확대되고 깊어지는 시베리아 ‘지옥의 입구’. 사진=서터스톡

[아이티데일리] 러시아 시베리아 북동부의 바타가이 마을 근처에는 땅이 쩍 갈라진 듯한 구멍이 있다. 위성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그 모양은 마치 올챙이를 닮았다. 이 구멍의 정체는 ‘사이모카르스트’다.

사이모카르스트는 영구동토가 녹았다가 얼었다가를 반복하며 생긴 울퉁불퉁한 구멍으로, ‘바타가이카 크레이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학술적으로는 ‘융해침식지형(메가슬럼프)’으로 불리며, 흔히 ‘지옥의 입구’라고도 한다. 러시아 스푸트니크에 따르면 현재 이 구멍의 지름은 1km, 깊이는 최대 100m에 이르며, 이 종류 중 세계에서 가장 크다. 게다가 매년 점점 커지고 있다.

수십 년 전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단순한 지반 침하 정도였으나, 얼음에 덮인 고대의 지층이 계속 무너지면서 구멍이 확대되고 있다.

구멍이 커지면서, 지금까지 얼어붙어 있던 과거의 역사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앞으로의 미래도 살짝 보여준다. 지옥의 입구는 지구의 먼 과거로 이어지는 입구이자, 영구동토로 이루어진 타임머신이며, 이미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기후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지표라는 학술적 평가다.

스푸트니크는 이 크레이터가 온난화로 인해 빠르게 확장 중이며, 8,000년 전의 들소 등 고대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는 연간 4000~5000톤의 탄소를 방출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이 지역에서 약 5만 년 전의 새끼 매머드 사체가 발견됐으며, 이는 영구동토층의 융해로 인한 고대 생물 발견의 본격적인 장이 열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영구동토층에는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저장돼 있다. 메탄은 대기에 머무르는 시간은 이산화탄소보다 짧지만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수십 배 크다. 이산화탄소는 장기간 대기에 머무르며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준다. 지옥의 입구가 커질수록 탄소 발생은 심각하게 늘아나게 된다.

지옥의 입구가 생기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포브스지에 보도된 ‘네이처 클라이미트 체인지’ 학술지에서의 연구 결과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1960년대 당시 소련은 시베리아 북동부의 첼스키 산맥 주변에서 산림을 벌채했다. 그 결과, 오랜 시간 동안 영구동토를 덮고 보호하던 나무들이 제거됐다.

그늘을 만들고 지면을 덮던 나무들이 사라지자, 영구동토층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태양 복사를 흡수하게 되었다. 얼음에 덮여 있던 토양이 따뜻해지며 녹고, 붕괴되면서 시작된 이 연쇄 반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사이모카르스트 형성'이라 불리며, 하나의 침하가 또 다른 침하를 유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동토가 녹으며 침식이 일어나고, 더 많은 동토가 노출되어 녹아내리며 붕괴는 가속화됐다. 처음에는 단순한 작은 함몰일 뿐이었던 것이, 악순환으로 인해 거대한 균열로 확대된 것이다.

스푸트니크에 따르면 1980년대에 바타가이카 크레이터는 이미 놀라운 규모에 도달해 있었다. 확장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이에 따라 나무로 덮인 비탈이 침식되고, 얼어 있던 토양이 노출되며, 유기물이 방출되고 있다.

녹아내린 토양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6월 지오모르폴로지(Geomorphology)가 발표한 ‘바타가이카 크레이터의 확장 속도와 토양 붕괴 분석’에 따르면, 사이모카르스트 형성이 시작된 이후 융해 침식된 토지의 총 부피는 약 3500만 입방미터에 달한다. 이렇게 지면이 갈라지면 다시 닫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앞서 스푸트니크, AP 등의 보도에서도 밝혔듯이 영구동토층 붕괴와 함께 수만 년 전의 귀중한 화석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BBC 등도 보도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발견된 매머드 사체 화석은 5만 년 묻혀 있었는데도 피부나 귀, 속눈썹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만 년 이상 묻혀 있던 숲도 노출되었다. AP에 따르면 꽃가루가 고토양에 보존되어 있었다. 지질학자들은 이들을 이용해 약 13만 년~11.5만 년 전의 최종간빙기의 지형 변화를 재현하려 하고 있다.

지옥의 입구는 현재 연간 30m씩 넓어지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규모는 3배로 커졌으며, 더 깊은 영구동토층이 노출되어 고대에 갇혀 있던 각종 가스가 방출되고 있다. 2016년에는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갑작스럽게 탄저균이 확산됐다. 지옥의 입구에서 70년 전 탄저균 감염으로 죽은 순록의 사체가 발견돼 녹은 것이 그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어린이 한 명이 사망했다. 2014년에는 영구동토 속에 3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가 되살아나 감염 능력이 확인되었다.

붕괴가 계속되면 온실 가스가 대량 방출되고 온난화를 가속하며, 결국 붕괴는 더욱 빨라지게 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악순환의 루프가 지구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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