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솔루션 엔지니어링 부문 케보크 케치찬(Kevork Kechichian) 총괄 부사장
[아이티데일리] 지난 40년 동안 실리콘 기술은 깊이 있는 진화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수십억 개의 소비자 기술 제품을 정의했으며, AI 시대에 필수적인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솔루션을 구동하는 기반이 됐다.
AI의 지속적인 발전에 따라 실리콘 역시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컴퓨팅 수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맞춤형 실리콘(custom silicon), 컴퓨팅 서브시스템(CSS), 칩렛(chiplet)과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과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10년간 기술 혁신을 이끌어갈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무어의 법칙의 등장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지난 30~40년간의 반도체 설계 방향을 결정짓는 기반이 됐다. 초대규모 집적회로(VLSI) 및 극초대규모 집적회로(ULSI) 기술을 통해 단일 칩에 수백만에서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점점 더 강력한 칩셋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러한 발전은 트랜지스터 수가 약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 예측한 무어의 법칙에 크게 기반하고 있었다. 그 결과, 컴퓨팅 성능과 효율성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됐다.
무어의 법칙이 효력을 발휘한 1990년대 초반까지는 트랜지스터와 기타 칩셋 구성 요소의 지속적인 소형화가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휴대전화가 처음 시장에 등장하던 시기와 맞물려 모바일 칩의 부상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바일 칩셋
현대의 전력 효율적인 칩 설계는 초기 휴대전화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예로는 1990년대 중반에 출시된 Arm 기반의 노키아(Nokia) 6110 GSM 휴대전화가 있다. 이 제품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를 계기로 반도체 기업들은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칩셋 개발에 집중하게 됐다.
모바일 칩셋이 발전함에 따라 성능과 전력 효율성은 지속적으로 향상됐고, 다양한 새로운 기능이 더해졌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의 등장을 견인했으며,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더욱 강력하고 정교한 모바일 칩, 즉 시스템온칩(SoC)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SoC는 CPU, GPU, 모뎀,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 메모리, I/O 인터페이스, 그리고 NPU와 같은 AI 가속기를 포함해 대부분의 전자 부품을 하나의 칩에 고도로 통합한 형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모바일 기기에서 활용되는 폭넓은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모바일 SoC, 다양한 기술 시장으로의 확산
이러한 모바일 SoC는 이제 스마트폰을 넘어 PC, 노트북, IoT, 임베디드 시스템 등 다양한 소비자 기기와 기술 시장으로 확장됐다. 고성능과 확장성을 요구하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이터 센터 분야에서도, 모바일 SoC의 전력 대비 성능 중심 설계 철학은 CPU 설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컴퓨팅 기능과 구성 요소의 확대 필요성은 업계 전반에 걸친 성능 향상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물리적 설계의 한계, 기술적 제약, 경제적 부담 등으로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현대의 SoC 설계에서는 성능과 함께 전력 효율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AI 기반의 효율적 컴퓨팅을 향한 움직임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컴퓨팅 워크로드는 규모와 복잡성 모두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에너지 사용량과 비용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에 따라 업계 전반에서는 효율적인 AI 컴퓨팅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는 대규모 데이터 센터부터 실제 디바이스인 엣지 단까지 모든 기술 접점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AI 워크로드를 엣지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경우,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대역폭 절감, 데이터 프라이버시 향상, 더 빠른 사용자 경험 등 다양한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공간과 전력이 제한된 소형 디바이스에서도 효율적인 AI 처리가 가능해야 한다.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맞춤형 실리콘 도입
효율적인 AI 구현을 위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맞춤형 실리콘이다. 많은 SoC가 범용 칩셋인 반면, 맞춤형 실리콘은 특정 시장, 애플리케이션 또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설계된 전용 솔루션이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맞춤형 실리콘을 연구하고 여기에 투자하고 있으며, 특히 2024년 클라우드 서버 지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빅 4’ 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러들이 그 중심에 있다.
AWS의 그래비톤4(Graviton 4)는 데이터 센터 및 AI 워크로드를 가속화하기 위해 설계된 대표적인 맞춤형 솔루션으로, 성능과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큰 개선을 제공하고 있다.
2023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클라우드용 최초의 맞춤형 실리콘 솔루션인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코발트(Azure Cobalt)를 발표했다. 이 칩은 복잡한 컴퓨팅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됐다. 최근에는 구글 클라우드(Google Cloud)가 데이터 센터 내 복잡한 서버 워크로드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형 실리콘 설계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맞춤형 실리콘은 대형 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규모 기업들 역시 다양한 고성능 컴퓨팅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자체적인 맞춤형 실리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신흥 팹리스 기술 공급업체인 패러데이 테크놀로지(Faraday Technology)는 Arm과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의 지원 아래, 데이터 센터 및 고급 5G 네트워크용 64코어 맞춤형 실리콘 SoC를 개발 중이다. 또한, 한국의 AI 반도체 기업인 리벨리온(Rebellions)은 AI 워크로드의 전력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대규모 AI 실리콘 플랫폼 개발을 발표했다.
CSS와 칩렛의 부상
신속한 시장 진입의 이점을 극대화하려면, 사전 검증된 코어 컴퓨팅 기능과 함께 맞춤형 메모리 및 I/O 인터페이스를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는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CSS는 소프트웨어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SoC 설계자가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서브시스템을 추가해 차별화된 솔루션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패러데이, 리벨리온과 같은 기업들은 CSS를 활용해 맞춤형 실리콘을 빠르게 개발하는 동시에, 시스템 수준의 최적화를 위한 높은 유연성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CSS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첨단 패키징 기술과 기법은 최근 실리콘 진화의 또 다른 핵심 요소로, 이는 칩렛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칩렛은 여러 개의 반도체 다이(die)를 쌓고 상호 연결함으로써 성능을 높이고 효율성을 개선하며, 다이 투 다이(die-to-die) 인터페이스와 새로운 2.5D 및 3D 패키징 솔루션과 같은 최신 설계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상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칩을 설계하는 대신, 칩 제조업체는 칩렛을 추가하거나 기존 칩렛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컴퓨팅 성능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제품을 보다 빠르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또한 더 작은 칩을 생산함으로써 제조 과정에서 수율을 높이고 폐기물도 줄일 수 있다.
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지만, 칩렛 시장의 성장은 비용 절감은 물론, 기존 부품을 칩의 빌딩 블록(building block)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실리콘 개발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이는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기술 기업들에게 더 큰 상업적 차별화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기업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방안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표준화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지속되는 실리콘 진화
지난 40년간 실리콘 기술의 진화는 기술 산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혁신 분야 중 하나였다. 실리콘은 전 세계 기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기술을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연결성 있게 만들어 사용자에게 최적의 경험을 제공해왔다.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실리콘 설계 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갈수록 복잡해지는 컴퓨팅 워크로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컴퓨팅 효율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맞춤형 실리콘, CSS, 그리고 전력과 성능 면에서 실리콘 설계를 최적화할 수 있는 칩렛과 같은 혁신적 접근을 통해, 용도에 맞춘 특수 목적의 전용 칩셋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