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2개월 만에 기후 정책 전면 후퇴
소셜 미디어 비롯, 항공 에너지 금융 유통 등 전방위 확산

마크 저커버그(사진) 메타 CEO를 비롯,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이 기후 변화 대응에서 발을 빼고 있다. 사진=메타
마크 저커버그(사진) 메타 CEO를 비롯,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이 기후 변화 대응에서 발을 빼고 있다. 사진=메타

[아이티데일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에너지 정책 구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아래 “미국의 에너지 잠재력을 해방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내걸고 취임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미국의 기후 변화 대응은 뒷전으로 완전히 밀려났다고 지구 환경 데이터 분석과 연구 및 정책 솔루션을 제안하는 단체 어스(Earth)가 강하게 비판했다. 동시에 트럼프의 영향을 받은 글로벌 기업들이 탄소 제로를 향한 여정을 일제히 중단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어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정부 전반에 걸쳐 기후 변화에 대한 모든 언급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각 부처는 앞다퉈 이에 따랐다. 백악관 웹사이트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된 모든 페이지가 삭제됐으며, 미 농무부 산하 산림청(Forest Service)은 웹사이트에서 주요 기후 자료, 연구 및 적응 도구를 삭제했다. 또한, 교통부 웹사이트에서는 ‘기후 및 지속 가능성’ 섹션이 사라졌다.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주도한 급진적인 ‘예산 절감 노력’의 일환으로, 기후 및 환경 정의, 기후 스마트 농업, 청정에너지 및 교통 관련 보조금도 폐지됐다. 보조금을 받았던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이번 결정이 “부정확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주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기후 대응을 후퇴시킨 것은 정부 기관뿐만이 아니다. 수십 개의 기술, 에너지, 식품 기업들이 미국 내외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하거나, 기후 대응 및 정의를 촉진하기 위한 내부 정책을 철회하거나, 기후 공약 자체를 철회하는 방식으로 같은 길을 따르고 있다.

◆ 소셜 미디어

올해 1월, 미국 기술 대기업 메타(Meta)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콘텐츠 검열 정책을 대대적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두 플랫폼에서 제3자 팩트체킹(fact-checking) 시스템을 폐지하고, 사용자들이 게시물에 맥락을 추가할 수 있는 이른바 ‘커뮤니티 노트(Community Notes)’로 대체한다고 밝혔다.

메타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가짜뉴스 논란이 커지면서 팩트체킹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2020년에는 기후 변화 허위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기후 과학 정보 센터’를 개설했다. 이를 통해 메타와 협력하는 제3자 팩트체커들이 기후 변화 관련 허위 및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게시물을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1년 후, 저커버그는 의회 청문회에서 기후 허위 정보가 큰 문제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저커버그가 발표한 정책 변경에 따라, 메타의 제3자 팩트체킹 기관과의 계약이 종료됐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기후 허위 정보와 거짓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두 플랫폼은 각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위 및 3위 소셜 네트워크로, 월 활성 이용자 수를 합치면 50억 명이 넘는다.

저커버그는 보수 진영의 표현을 사용해 이번 결정이 ‘자유로운 표현(free expression)’을 우선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팩트체커들이 정치적으로 편향적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6년 메타의 팩트체킹 프로그램을 설계했던 전직 팩트체커는 저커버그의 발언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nternational Fact-Checking Network)의 초대 책임자였던 알렉시오스 만자를리스는 “저커버그가 트럼프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고 갈망했다”며 “결국 그는 그것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eMarketer)의 분석가 재스민 엔버그는 “이 결정은 저커버그가 트럼프의 승인을 얻기 위해 얼마나 멀리 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보수 진영을 열광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층은 그동안 메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메타가 지속 가능성 웹페이지에서 “기후 변화 대응을 선도하고 있다” 및 “과감한 기후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내용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 자선활동(Philanthropy)

제프 베조스가 설립한 베조스 어스 펀드(Bezos Earth Fund)는 최근 기후 변화 대응 목표를 검증하는 대표적 기관인 ‘과학기반목표 이니셔티브(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SBTi)’에 대한 1800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중단했다.

베조스 어스 펀드는 5년 전 베조스가 과학자, 활동가, 비정부기구(NGO) 등을 지원하여 기후 변화를 막고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기금이다. 어스 펀드는 3년 지원 약정이 종료된 데 따른 것이며, 향후 지원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번 조치를 ‘트럼프에게 굴복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조스와 저커버그는 트럼프의 취임 기금에 각각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 은행권: 기후 대응 연합 탈퇴

최근 몇 달 동안, 미국 6대 은행(골드만삭스, 웰스파고,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JP모건)이 기후 금융 연합에서 탈퇴했다. 은행들은 공식적으로 탈퇴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공화당이 주도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반대 캠페인으로 인해 거의 2년 동안 정치적 압력을 받아왔다. 캐나다 6대 은행과 유럽 최대 은행인 영국의 HSBC도 같은 길을 따랐다.

이들이 탈퇴한 넷제로 뱅킹 연합(Net-Zero Banking Alliance, NZBA)은 2021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크 카니가 UN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연합으로, 금융 기관들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시장에서 기후 변화 대응이 우선순위에서 점점 더 밀려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 투자 회사: ESG 투자 철회

은행권뿐만 아니라 투자회사들도 지속가능성 공약에서 발을 빼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은 1월,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et-Zero Asset Managers, NZAM)에서 탈퇴했다. NZAM은 국제적인 자산운용사들이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지원하는 연합이다.

블랙록은 11조 5000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 최대 투자사로, 공화당의 압력과 정부 관계자들의 조사를 이유로 탈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블랙록은 오랫동안 공화당 의원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왔다. 블랙록이 ‘좌파적’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이었다. 지난달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블랙록이 급진적인 ESG 목표를 미국 기업에 강요하기 위해 좌파 활동가들과 공모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블랙록의 탈퇴 이후, 미국 뱅가드(Vanguard), 노던 트러스트(Northern Trust) 등 여러 자산운용사들이 NZAM에서 잇따라 이탈했다.

NZAM은 2020년 12월, 자산운용 업계가 기후 변화로 인한 금융 리스크를 줄이고 장기적인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블랙록의 탈퇴 전까지 총 325개 기관이 참여했으며, 이들이 관리하는 자산 규모는 57조 5000억 달러에 달했다.

◆ 에너지 산업

프랑스의 토탈에너지(TotalEnergies)와 노르웨이의 에퀴노르(Equinor)를 포함한 여러 에너지 기업들이 최근 저탄소 에너지 투자 계획을 축소했다. 영국의 쉘(Shell), 미국의 엑슨모빌(ExxonMobil)과 셰브론(Chevron) 등은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공식 발표했다.

쉘은 이를 ‘전략적 재조정’이라고 설명하며, 기업의 성과를 높이고 순부채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새 전략에 따라 쉘은 2030년까지 석유 및 가스 투자를 연간 약 20% 늘려 100억 달러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며, 일일 생산량을 230만~250만 배럴로 증가시킬 예정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수소, 바이오가스, 바이오연료, 전기차 충전소, 탄소 포집 및 저장(CCS)과 같은 에너지 전환 부문에 대한 연간 투자금은 50억 달러 이상 삭감, 15억~20억 달러로 축소될 예정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석유와 가스 생산을 확대함으로써 전례 없는 이익을 거두었으며, 이는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저버린 것일 뿐만 아니라 환경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달 발표된 연구에서는 36개 주요 화석연료 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기타 항공 및 유통

FT는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 항공이 자사 웹사이트에서 “저탄소 전환이 시급하며 이미 진행 중”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FT 조사에 따르면, 월마트와 크래프트 하인즈 등 주요 유통 기업들도 기후 변화 관련 입장을 수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화당이 기후 행동 및 지속 가능성 노력을 반대하는 움직임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다.

월마트는 지난해 12월, 2025년까지 35%, 2030년까지 65%의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2015년 대비)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또한, 올해 목표 재검토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2023년 월마트의 탄소 배출량은 1506만 톤으로, 이는 약 350만 대의 내연기관 차량이 1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의 양과 맞먹는다.

월마트는 지난해 웹사이트에서 “기후 변화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이며, “지금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그 결과는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명시했지만, 이 문구는 12월에 삭제됐다.

크래프트 하인즈는 지난 1월, ‘내부 및 외부적인 도전 과제’를 이유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웹사이트에서 삭제했다.

비슷한 시기, 코카콜라도 자사 웹사이트에서 폐기물 관리와 관련된 지속 가능성 목표를 조용히 삭제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환경 단체들은 이를 두고 ‘그린워싱(기업이 친환경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인 변화 없이 홍보하는 행태)’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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