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메모리 중심의 구조적 한계, 현재까지 이어져
AI 등 차세대 기술 혁신으로 반도체 산업도 혁신 중…변신하지 못하면 사양길
[아이티데일리]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강남 코엑스에서 개최된 ‘세미콘 코리아 2025’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 ▲기업간, 국가간 다각적인 협력 모색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실상을 드러낸 행사였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톱 아래 소재·부품·장비 회사들이 수직·수평으로 얽혀 있는 구조다. 두 회사의 세계 메모리 시장 점유율이 워낙 높아 바게닝 파워가 세기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상당수 한국 지사 형태로 진출해 있다. 이들 대부분이 이번 행사에 집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명성은 오래 전부터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던 지위다. 여전히 그 명성은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영향력의 확대냐 위축이냐다. 이번 행사에서도 전 세계 500여 기업이 2300개에 달하는 부스에서 솔루션을 소개하고 협력 기회를 모색했다. 신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학습의 열기도 상당했다. 행사 동안 약 7만 명이 코엑스를 찾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그러나 ‘세미콘 코리아 2025’에서 보인 모습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지위가 여전히 공고한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기조연설에서 발표된 내용은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송재혁 삼성전자 사장은 “AI가 사람의 뇌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반도체도 기술이나 효율성 면에서 다양하게 진화할 것이며 업계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가트너의 가우라브 굽타 부사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5년 후 반도체 시장은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장 전망과 같은 일부 내용은 한국 언론이 선호하는 것이었지만, 대체로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요 기조연설자였던 글로벌 반도체 연구기관 IMEC의 루크 반 덴 호브 회장 겸 CEO는 행사 참여에 앞서 자체 기자회견을 갖는 등 한국과의 협력 강화를 기대하는 행보를 보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도 교감하고 협력 방안을 찾았다. 한국에 연구소를 설립할 가능성도 열었다. 글로벌 협력을 타진한 이벤트는 이것이 거의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고난도 반도체 장비인 리소그라피, 에처, 디바이스 등 다양한 기술 영역 세션에는 배움의 과정에 있는 청년 다수가 참여해 나름 교육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왜 엔비디아나 애플, 구글, 퀄컴 등 자체 반도체 칩을 설계 또는 제작하는 기업들은 보이지 않았을까. 한국 PC 시장에서 CPU로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인텔은 조용했을까.
지난해 9월 대만에서 열렸던 ‘세미콘 타이완’에는 위에 거론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등장해 대만 반도체 산업과의 협업을 강조했다. 이는 CNBC를 비롯한 유수의 언론들이 소개한 바 있다. 이는 물론 파운드리 부문의 절대적인 강자 TSMC가 대만에 버티고 있어서일 것이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현재도 그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어떤 경쟁자도 따르지 못할 기술력도 갖추고 있다. 2나노 공정의 상용화가 TSMC의 절대적인 무기다.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겠다고 총력을 기울였지만 기세가 꺾였다. 공정 기술 면에서 TSMC의 경쟁력에 밀린 것이다. 삼성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그 몫을 모두 TSMC가 챙기고 있다. 인텔도 CPU의 자체 생산은 물론 파운드리 사업에 나섰다. 7나노 공정을 넘어 5나노에 도전하고 있지만 힘든 과제다. 인텔은 AMD에게까지 일부 밀리는 상황에 처해 있다. TSMC에 대한 러브콜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는 빨간불이다.
이번 세미콘 코리아 행사는 작금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지만, 메모리 외에는 이렇다 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30여 년 전 16메가, 64메가 D램 시절 굳어졌던 산업 구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재와 장비, 부품 산업이 발전했다지만, 행사장에는 여전히 외국계 한국 지사의 부스가 넘쳐난다.
우리 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흔들리는 지금, 정책을 다루는 정계와 관계, 연구기관 지도자들은 ‘세미콘 코리아’ 행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삼성과 SK만 바라보면서 여전히 낙관하고 있다면 위험하다.
AI를 비롯해 차세대 기술은 날로 혁신하고 있다. 이에 맞추어 산업도 발전한다. 빅테크들은 자신들의 대표 솔루션에 탑재되는 칩을 자체 설계하고 있다. 이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파운드리를 비롯한 비 메모리 영역이 주류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우리는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이를 등한시했다.
삼성전자도 역부족임을 드러내고 있다. 행사에서 나타난 성과와 과제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도약을 위한 정책적인 발판을 마련해야 할 때다. 송재혁 사장이 이야기했듯이 전 분야에서의 협력과 실행이 따라 주어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이를 유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