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무력화되나…기후 도피처 사라지고 경제 시스템은 파괴돼
[아이티데일리]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처음으로 섭씨 1.5도 이상 상승했다고 미국해양대기청(NOAA)를 비롯한 세계 기상 관련 기관들이 일제히 발표했다. 네이처, CNN 등 글로벌 언론들이 대서특필했음은 물론이다. 기후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발표하면서 세계가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지구 온난화의 최악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의미는 크다. 특히 국가 및 가정의 경제 시스템이 부정적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국가적으로는 극심한 기상 변동으로 인한 재해 빈발과 과도한 복구 비용,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안 도시의 재설계, 농업 시스템의 급변 등 헤아릴 수 없는 변경 요인이 발생한다. 모든 것은 비용으로 통한다. 가정 경제도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가격 인상 등 치솟는 인플레이션, 기후 도피처의 상실, 기후 변동으로 인한 거주지 이전 등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이번 발표로 당장 보이는 것은 기온 한 가지 지표이고 기간은 2024년 1년뿐이지만, 기후 과학자들은 이것이 기상이변만으로도 전 세계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위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냉엄하게 상기시켜준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 엑서터 대학교의 사회 과학자이자 기후 위험을 연구하는 게일 화이트먼 교수는 네이처 온라인판에서 "1.5도를 넘어선 것은 지구의 물리적 현실이자 상징적인 충격"이라며 "인류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1.5도를 넘어섰다는 발표는 지구 온도를 독립적으로 추적하는 여러 국제기구에서 공동으로 발표했다. 각 그룹별로 약간씩 다른 계산 수치를 내세웠지만, 그 데이터를 평균하면 작년에 지구 온도가 1850~1900년의 평균보다 섭씨 1.55도 높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1850~1900년은 인간이 대기 중으로 온실 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기 전인 '산업화 이전' 시기로 간주되며 이 기간은 지구 온난화를 비교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지만, 2024년 수치는 다수의 기록을 수립했던 2023년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악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후 과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의 기온 급등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구 기후 시스템의 변화를 나타내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섭씨 1.5도의 근거는 지난 2015년 파리에서 개최된 COP21(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행사에서 발표한 파리협정이다. 약 200개국이 파리 기후 협정에 서명해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섭씨 1.5도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화석 연료 및 기타 출처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은 계속 증가했다. 풍력 및 태양광 발전과 같은 청정 에너지원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작년에는 탄소 배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1기 트럼프 시기 트럼프는 파리협정을 탈퇴했다. 기후 변화에 의한 재앙을 가짜뉴스라고 일축하고 석유를 비롯한 화석 연료 산업에 힘을 실어 주었다. 탄소배출 1, 2위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 ‘탄소 중립’을 위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양대 축의 하나인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라 청정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중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안토니오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해 1.5도 한계를 넘어섰다고 해서 기후 변화에 대한 인류의 장기 목표가 어그러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이는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 지도자들은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기후 과학자들은 기온 데이터에서 잡음(정상적인 기후 변화)를 참작하기 위해 10년 평균 온도를 중요하게 관측한다. 이를 통해 지구의 장기적 온도 추세를 파악하고 기후 모델을 개선하며 앞으로 더 나은 예측을 구축할 수 있다. 기후 과학자들은 이 척도로 관측했을 때 2024년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섭씨 1.3도까지 따뜻해졌으며 1.5도가 완전히 깨지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추정한다.
추가로 주어진 시간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자연보호단체인 자연보호협회의 수석 과학자 캐서린 헤이호 박사는 ”온실 가스에 의해 갇힌 열의 대부분은 지구의 바다, 육지, 얼음에 흡수된다“면서 ”대기의 10년 평균이 1.5도를 넘을 때쯤이면 지구는 더 많은 열을 축적해 폭풍과 화재, 생태계 손상, 해수면 상승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학자들은 1.5도 한계에 마법 같은 것은 없다고 지적한다. 1.5도는 지구 온난화를 2도로 제한하자는 이전 목표를 수정한 것이다. 2도 제한으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침수될 위험이 있는 남태평양 섬나라를 포함해 가장 취약한 국가를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인정해 강화한 것이다. 결국 숫자는 정치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1.5도로 억제하면 세계가 안전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거꾸로 1.5도를 조금만 크게라도 넘어서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뜻도 아니다. 이는 스펙트럼일 뿐이며 ‘온난화’라는 자체가 중요하다.
예상보다 일찍 1.5도를 돌파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유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분석한 많은 배출 시나리오는 지구 온도가 일시적으로는 그 한계를 초과할 것이지만, 결국 인류가 대기에서 탄소 추출을 가속해 금세기 말에는 평균 지구 온도를 낮출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되면 재앙적인 기후 악몽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1.5도 돌파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2023년과 2024년의 기온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징후라면 정치적인 파장은 클 것이며 정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에게까지 영향을 줄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역으로 1.5도 한계가 깨졌다는 소식이 기후 행동에 반대 여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과장됐다“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1.5도 한계를 넘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항변할 것이다. 기후 변화에 의한 지구 영향이 장기간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을 망각한 무지의 소치다. 극심한 기상 변화의 영향, 빙하가 녹고 생태계가 변화하는 등의 장기적 위험은 온실 가스 배출을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