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 사진=픽사베이
원자력 발전소. 사진=픽사베이

[아이티데일리] 서방 국가와 중국 및 러시아의 분쟁은 군사나 에너지 분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원자력산업도 수년에 걸쳐 그 전장이 되어 왔다. 그런데 신흥국에서의 원자력 건설 계약에서 구미 국가는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고 포브스지가 보도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구미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스아톰과 계약을 맺었다. 완공되면 중앙아시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력이 공급된다. 이는 러시아의 우산에서 벗어난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가 영향력을 되찾게 된다는 의미도 갖는다.

물론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러시아가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카자흐스탄은 현재 러시아의 진출을 거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중국, 러시아, 한국, 프랑스 등 4개국의 제안을 검토 중이며, 올가을 실시될 국민투표로 결정할 예정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서방 국가와의 경쟁에서 러시아의 약진은 자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의 해외 진출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의 부실한 원자력 정책이었다. 원자력은 가장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에너지의 하나로,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국가가 이를 인식하고 있지만, 미국만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미국의 무지가 러시아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원자로 건설 분야에서 러시아는 세계적인 공급 국가로 부상했다. 세계 원자력산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7월 기준, 중국, 인도, 터키, 이집트, 방글라데시, 이란, 슬로바키아 등 7개국에서 원자로를 건설 중이었다. 그중 터키와 슬로바키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다.

러시아는 원자로 건설 이외의 분야에서도 원자력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우라늄 가공 및 농축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에는 각각 세계 전체 생산능력의 38%와 46%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핵연료 수출에서도 주요국이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10억 달러 이상의 원자력 관련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특히 아프리카의 지정학적 혼란을 틈타 한때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던 우라늄 자산을 노리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 국가의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량은 지난해 배가됐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 이상에 걸쳐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핵연료를 구입하고 있었다. 미 정부는 지난달 마침내 이 기업에도 제재를 부과했다.

중국도 원자력 산업에서는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 중국의 원자력 산업은 국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건설 중인 원자로는 지난해 7월 기준 23개에 달했다. 이는 중국 경제가 확대돼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는 불과 1기밖에 없다. 중국이 원자력 산업을 육성해 온 반면, 미국에서는 마지막으로 건설된 원자로의 완성이 7년이나 늦어여 예산 초과가 170억 달러나 발생했다. 이는 미국의 인가와 환경심사 절차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중국은 최근 해외로의 원자로 공급에도 나섰다. 국영 중국핵공업집단(CNNC)과 중국광핵집단(CGN)은 3세대 원자로 '화룡 1호'를 개발했다. 이 원자로는 2021년 후쿠키요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동을 시작했다. 중국은 지난해 파키스탄에서 차슈마 원자력 발전소 5호기 건설에도 착수했다. 중국은 국외에서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원자력 산업은 한때 세계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1990년에는 112기의 원자로가 가동돼 빠른 속도로 탄소 배출 제로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34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가동하고 있던 원자로의 3분의 1 정도를 폐쇄했다. 신규 원자로는 거의 건설되지 않았고, 남은 원자로의 평균 연령은 수십 년으로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10~15년 사이에 수십 기의 원자로가 수명을 다해 닫을 수밖에 없다. 미국 전체 발전량의 20%를 잃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의 정책도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태도는 호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 불가리아, 가나,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필리핀을 비롯한 외국과의 계약을 위해 미국 수출입은행(EXIM)과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 소형 모듈로(SMR)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 의회에서는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고용을 늘리고 신청 수수료를 인하함으로써 규제 장벽을 낮추는 '원자력 추진법'이 하원에서 통과되었다. 원자로의 기술 혁신도 촉진한다.

미국의 원자력개발에 대한 장벽이 없어지면 제너럴아토믹스나 벡텔 등 미국 기업도 활기를 되찾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세계 원자력발전 능력이 2022년 371GW에서 2050년에는 890GW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원자력이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 경제력 강화에 큰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늘어남에 따라, 원자력 산업도 변곡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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