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제값받기·제도 개선’ 같은 주장 외치지만 여전히 그대로
소프트웨어 업계 “많은 것 바라지 않아…건설사업처럼만 해달라”
[아이티데일리]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은 그동안 국민들의 서비스 복지 향상과 더불어 국내 중소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들은 공공시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사업 참여를 꺼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제대로 된 보상은 커녕 수시로 바뀌는 과업에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제값받기 실현을 위해서는 단순히 SW사업의 기능점수(FP) 단가 인상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예산 증액을 비롯 △원격지 개발 활성화 △변동 계약 도입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FP 단가 4년 만에 인상됐지만…아직 갈 길 멀다
최근 소프트웨어 업계의 초점은 SW 사업 수행에 대한 ‘제값 받기’에 쏠려 있다. 합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업계가 지속적으로 인상을 요구해 온 기능 점수 단가(Function Point; FP)가 지난달 9.5% 상승하며 한숨을 돌릴 수 있게는 됐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달하지 못했기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SW 개발 단가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3년 동안 단 두 차례 인상됐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이 기간 비용이 2배 이상 증가했다. FP는 도입 이후 물가상승률, SW 기술자 임금인상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FP 당 단가는 2010년 49만 7,427원으로 고시된 후 2014년 4.4% 인상된 51만 9,203원, 2020년에는 6.5% 인상된 55만 3,114원을 기록했다. 2010년 대비 총 ‘11.2%’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개발원가 인상률은 2015년 5.8%, 2016년 4.8%, 2017년 6.7%, 2018년 7.5%, 2019년 11.2%로 매년 상승했다. 특히 2020년 이후에는 16.1%, 20.2%, 21.7%, ‘26.4%’로 상승폭을 더욱 확대했다. FP 단가가 인상 없이 머물러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FP 단가의 상승은 제한적이었지만 인건비와 같은 주요 비용 요소는 급격히 증가했다”며 “SW 개발 시 발생하는 품질 사고와 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예산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FP 단가 인상은 9.5%로 지난 2020년 6.5% 인상된 것에 비하면 나름대로 파격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동안의 개발원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소프트웨어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물가 인상률만큼 FP 단가 올리면 잡음 없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채효근 부회장은 매년 물가 인상률만큼 FP 단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건설업처럼 자재비와 인건비를 감안해 매년 물가 인상률만큼 올려왔다면 FP단가는 지금보다 20% 이상 상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값을 주고 일을 시켜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FP 단가로는 품질 관리가 충분히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FP 단가를 보다 합리적으로 책정해야 하고, 단일 단가 대신 난이도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FP 산정 방안은 ISO 표준으로 정해져 누가 산정하든지 편차가 ±1% 이내를 보여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고무줄처럼 변동이 크다”며 정확한 산출 기법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다.
FP단가가 인상된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FP단가와 함께 예산이 증액되어야 한다. FP단가만 인상될 경우, 정해진 예산으로 사업을 해야되는 정부 기관 입장에서는 사업 규모나 사업 갯수를줄여야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소프트웨어 업계는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IT 예산을 늘려야 한다. 채 부회장은 현재 국가 전체 예산 중 1% 미만인 4~5조 원 정도가 IT 분야에 배정되고 있는데, 이를 2~3%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시과업변경, 변동 계약으로 진행하고 예비비 둬야”
수시과업변경 문제에 대해 채 부회장은 “우리 SW 사업은 통상 80%가 변동된다”며 과업 변경은 업계 특성상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업심의위원회에서 과업 변동을 처리기는 하지만, 발주 기관 측에서 그에 대한 예산 확보가 어려워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국가 계약법 상 확정 계약이 아닌 변동 계약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채 부회장의 주장이다. 현재 재화 구매, 용역 구매, 건설 구매 세 가지로 계약이 나눠져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용역 구매로 취급돼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과업 변경이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건설 사업처럼 변동 비용을 예비비에서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해결책의 일환으로 제시되고 있는 ‘분리 발주’에 대해 채효근 부회장은 “분리 발주를 하면 리스크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SI(시스템 통합) 사업자의 경우 사업의 특성에 맞게 필요한 SW를 선택해야 하는데, 분리 발주로 인해 호환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것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이는 인테그레이션(Integration·하나의 일관된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선구매 후 인테그레이션 방식은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대기업은 그룹 구매 파워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며 분리 발주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덧붙여 “발주 금액에도 반영되지 않으면 예산 범위 내에 맞게 사업을 축소해 과업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산출 내역서 공개 통한 투명성 강화 필요
“많은 거 바라지 않아요. 건설 사업과 똑같이만 해도 많은 부분이 개선될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관련한 정책을 연구 중인 A씨는 ‘산출 내역서 공개를 통한 투명성 강화’가 시급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공공 SW 사업의 발주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의 과업 기준은 제안 요청서(RFP)와 예산 당국의 설계 내역 산출에 따라 결정된다. 발주 기관은 산출 내역서를 보유하고 있지만, 입찰 공고 시에는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수주처는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 입찰 과정에서 투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입찰 당시 프로젝트의 전체 규모나 필요한 SW 구성 요소를 알 수 없어, 프로젝트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견이다. 사업 수행 시 수시로 과업이 변경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따라서 A씨는 SW 사업의 발주도 건설 사업처럼 해줬으면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건설 공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설계 도면’과 ‘시방서’가 있는데 설계 도면의 경우 시설에 대한 배치, 규모 등 어떤 방법으로 공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며 “시방서에는 해당 시설에 들어갈 재료에 관한 규격과 품질 같은 것들이 모두 표현된다”고 말했다.
결국 SW 사업도 건설업처럼 기본설계 후 사업자에게 필요한 정보, 즉 시방서와 같은 개념의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이를 통해 공공 발주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A씨는 제안했다. 그리고 정부가 더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산 책정 및 과업 조정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SW 개발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공공 사업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A씨는 강조했다.
사실상 현 상황에서 공공 SW 사업의 경우 ‘제안 요청서’가 설계 도면이고 ‘산출 내역서’가 시방서의 개념인데, 건설 사업과는 다르게 이 산출 내역서를 발주처만 쥔 상황에서 이를 공개 하지 않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발주처는 입찰 공고를 내기 전 과업심의위원회를 개최하도록 돼 있다. 과업심의위원회의 역할은 정해져 있다. △과업 규모의 적정성 검토 △과업 규모의 확정 △사업 변경 발생 시 변경에 대한 금액과 기간 조정 등으로만 정의돼 있다. 여기서 당장 큰 문제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가 되면, 수주처의 의지와 관계없이 곧바로 과업에 대한 수행 기준이 정해져 버리는 것이다. 원만한 사업 진행을 위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원격지 개발에 관한 고찰
한편 SW 제값 받기를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원격지 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와 관련된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진흥법에 따라 원격지 개발이 가능해졌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소프트웨어 진흥법에 의거, 개발업체는 작업 장소를 발주 기관에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발주 기관에 있다. 보안 및 사업 관리와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토 균형 발전법에 따라 공공기관과 국가기관들이 세종시, 나주시, 전주시 등 각 지방으로 이전했다. 이후 개발 작업은 지방의 발주자 인근에서 이뤄지게 됐다. 원격지 개발의 필요성은 이때부터 제기돼 왔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원격지 근무가 보편화됐지만, 보안 문제로 인해 여전히 발주 기관 근처에서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안은 원격지 개발에 있어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공공기관의 경우, 국정원이 관여해 용역 사업자가 준수해야 하는 보안 항목들을 제시한다. 이는 네트워크, 인력, 저장 장치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포함한다.
개발사들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발주 기관 근처에서 하는 게 적절해 보일 수 있으나 해당 지역에서 사무실을 마련해 개발하든지 수주 업체 사무실에서 원격으로 하든지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국정원에서 요구하는 보안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문제라면, 개발업체가 자체적으로 보안 시설을 마련하면 된다. 예를 들어 별도의 인트라넷 사용, 인증된 저장 장치 사용, 독립된 행정망 구축 등 요구된 사항을 갖춰놓으면 해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이 항상 업체 개발자들을 옆에 두는 것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공직 기관의 특성상 보안만큼이나 중시하고 있는 ‘보고 문화’에 있다고 A씨는 지적한다. 발주 기관은 대개 순환 근무로 인해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 분석 설계 단계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개발 단계에서 요구사항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발주 기관 사업 담당자가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사업 진행 사항을 보고할 때 수주 업체 관계자와 동행해 기관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까이 있다면 발주처 입장에서는 좋지만 이를 감내해야 하는 수주 업체의 애로사항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수주처가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인근에서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개발 인력이 서울 등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면, 생활 환경 변화로 인해 높은 이직률을 보인다. 이는 인력 관리와 유지에 큰 어려움을 초래한다. 실제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경우 30~40%의 퇴사율을 보이기도 한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열악한 급여에 장기 파견을 감수하고 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A씨는 “불필요한 임대료와 인건비를 쏟아부을 필요 없이 보안에 대한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며 “원격지 개발 활성화를 통해 공공 SW 사업의 메리트를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기관 등의 공공 소프트웨어사업 5대 중점분야 점검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원격지 개발 실시율은 전체 22.3%에 불과하다.
공공 SW 시장은 개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 시장이 반대로 개발사 조직 내부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런 원격지 개발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프로젝트의 핵심인 중간 경력(5~10년 차) 인력이 감소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많은 개발 인력들이 경력을 쌓은 후 대기업이나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업 프로젝트의 안정성과 품질을 저해하고, 결국 리스크 관리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 그래도 사업 진행이 어려운데 개발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퇴사가 속출, 엎친 데 덮친 패키지 세트로 업계는 타격을 입고 있다.
A씨는 “숙련된 개발 인력의 부족과 지방 이전으로 인한 인력 이동 문제는 공공 SW 사업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라며 “공공 사업에서의 입찰 유찰 문제는 경쟁 구조의 약화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로 인해 공공 사업 경쟁력이 감소하고, 프로젝트 진행은 더욱 어려워져 품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 바로 공공 SW 사업 유찰률이다. 지난 2021년에는 정부에서 10건의 사업을 입찰시키면 당시 46%의 유찰률이 발생하기도 했다.
FP 단가 인상, 기뻐하긴 이르다... 적용시기가 문제
4년 만에 FP 단가 인상이 됐지만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는 평가다. 앞서 언급했듯 “FP 단가 인상에 맞춰 관련 예산이 증액되느냐 안 되느냐”를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금 인상 발표를 했다고 하더라도 시기를 잘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통상적으로 국가 예산을 수립할 때 3~4월경 예산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과기정통부에 제출하면 이를 검토, 기재부에 올려 같은 해 9월에 예산 심의를 진행한다. 이후 국회에서 예산 심의를 한 뒤 12월에 예산이 확정, 이듬해 1월 기재부가 확정 예산을 발표하는 게 루틴이다.
그런데 이미 예산 작업 시기가 지났다. 따라서 지금 FP 단가가 인상됐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시기는 2년 뒤쯤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업계가 시름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 내년인 2025년까지는 그대로 버텨야 할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품질 개선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예산 증액과 단가 인상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다. 업계는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건설 사업처럼만 해달라”는 요구만 들어줘도 업계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계 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예산 증액에 필요한 근거 마련을, 기획재정부에서는 여러 요소들을 감안해 예산 증액 처리를 신속히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차일피일 또 미루다가 제2의 행정망 사태가 발생한다면, 과연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국민들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