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데일리] “정부가 사람들을 ‘봉쇄하기 위해’ ‘기후 위기’를 조장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지고 있지만, 파리 시민들은 새로이 조성된 ‘15분 도시’를 온 몸으로 즐기고 있다. 시위가 일상인 프랑스에서 파리를 15분 도시로 재설계한다는 것에 대한 반대 시위가 없다는 것은 그 만큼 이 정책이 성공적임을 의미한다고 가디언지가 소개했다. 15분 도시를 둘러싸고 옥스퍼드 등지에서 반대 물결이 요동치는 영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5분 도시 개념은 파리 소르본 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주창한 스마트시티 개념이다. 도보 또는 자전거와 같은 마이크로모빌리티로 15분 이내에 일터, 쇼핑, 교육,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는 개념이다. 앤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이 이 개념을 받아들여 공격적으로 파리를 개조하고 있다. 파리 시 전역을 소규모 블록으로 쪼개 소도시로 개편한다는 구상이다. 이 정책으로 앤 이달고는 시장에 재선됐다.
모레노 교수는 “모레노가 파리를 폐쇄하려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음모를 꾸미는 이들도 없다. 파리에 사는 시민들은 15분 도시로 인한 변화를 보았고 경험했으며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자신한다. 그는 “파리는 많은 새로운 15분 도시 지역을 창출했고 모두 인기 만점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절대 이를 공개 감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가짜 뉴스가 횡행해도 파리는 예외”라는 설명이다. 파리의 여러 곳이 아름다운 풍광, 새로운 녹지 공간, 새 거주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앤 이달고는 모레노와 긴밀하게 협력했다. 모레노를 파리 시정부의 스마트시티 담당으로 겸직시켰다. 그 결과 파리에는 15분 도시의 개념을 만족하는 소도시(파리 내 블록)가 무려 50여 곳이나 생겨났다. 앞으로 더 많은 소규모 도시가 조성된다.
모레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앤 이달고는 기후 변화 대응에 전념하는 뛰어난 시장이다. 그녀는 15분 도시가 새로운 도시 계획을 수립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파리가 새로운 도시 계획을 세운 것은 2000년이었으며, 이 로드맵은 향후 10~15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5분 도시는 교통 계획이 아닌 시민들의 삶의 근본적인 변혁이라는 것이다.
모레노는 밀라노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도시에서 구현되고 있는 15분 도시 이론에 대한 책 ‘15분 도시(The 15-Minute City)를 썼다. 이 책은 5월 초에 발매될 예정이다. 책에서는 15분 도시에 대한 개념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도시는 직장인이 일할 수 있는 도심지에 고층 빌딩이 넘쳐나고, 가족은 교외의 주택가에 머무는 구조였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교통수단이 운송하는 구조였고, 그래서 도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그리고 상업 지구와 금융지구와 문화지구가 분할됐다. 또한 부작용으로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이 나뉘었다. 파리 북동부의 빈촌은 최대 40%의 주택이 사회 공공 주택이다. 파리 서부 부유한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5% 미만으로 떨어진다. 15분 도시는 이 개념을 송두리째 뒤엎는다.
종래의 도시는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개조되는 도시는 다양한 사회 계층이 섞일 수 있도록 저렴하거나 비싼 주택이 혼합된 거주 단지의 개발한다. 또한 학교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직장과 집에 더 가깝게 만들고, 간병인들이 더 쉽게 이동하고 (15분 도시)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무실은 집뿐만 아니라 문화 장소, 의료, 상가 및 기타 편의 시설과 더 가깝도록 설계한다. 공원 등 공유 공간은 그 지역 거주민들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다.
대표적인 예는 Îlot 생제르망 개발이다. 옛 국방부 청사에 위치해 있으며, 에펠탑이 한눈에 보이는 이 거주지의 월 임대료는 600유로로 저렴하다. 부자들이 대다수인 이 지역 주민들과 지역 책임자(구청장 격)이 거세게 반대했지만 그대로 시행됐고, 현재는 삶의 질이 더 향상되고 풍경도 좋아졌다. 지역 우수개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소득 지구인 파리 북서부의 클리시-바티뇰 지구도 녹색 마을로 재단장하고 있다. 지구의 약 4분의 1은 녹지 공간과 새로운 공원으로 채워졌다. 주민의 50%가 공공주택에 살고 25%가 중산층이며, 나머지 25%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소상공인 보호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대도시에서는 구멍가게가 대형 체인점에 의해 먹히기 쉽다. 파리시정부는 새로운 계획을 통해 이를 미연에 막는 조치를 취했다. 시는 2억 유로를 투자, 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도시의 소매 지역을 관리하는 상업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소매 지역은 특히 소규모 상점, 장인, 빵집, 서점에 임대된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좋은 경제 모델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파리시의 문화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투자다. 또한 지역 상점을 주택 가까이에 두어 사람들이 거주지 인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애도 있었다. 자동차 운전자 조합 등이 거세게 반발한 것. 그러나 여론과 정책은 과감한 개혁을 택했고 지금은 자동차 진입이 금지되는 지역, 새로운 공원과 야외 바가 있는 센 강변 등 모든 것이 변했다. 교통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였던 시대는 과거지사가 됐다.
런던은 정 반대의 길을 걷는다. 런던의 탄소 초저배출 구역 확장을 둘러싸고 갈등이 폭발했으며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 지역인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보행자 도로로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이달고는 자동차 관련 업계와 단체의 반대에 강하게 대응했다. 선거에서 지원하지 않겠다는 협박에 “지금까지도 자동차 부문 로비에 대해 강하게 대처했고, 결과적으로 두 번 시장에 당선됐다”고 말했다. 누구도 센 강변 고속도로를 제 개통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반대로 차량의 진입을 누구도 원치 않는다.
모레노는 향후 수 년 내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많은 사무실이 금융 지구의 넓은 공간을 매각하고 주거 지역에 더 가깝게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원격으로 일할 수 있거나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 모레노는 “향후 10년 동안 기업 부동산 시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확신한다”라며 “기업들은 이제 사무실 공간으로 주택, 학교, 상점이 있는 다용도 지역을 선택하고 있다. 남성적인 디자인의 초고층 빌딩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