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방식 개선으로 행정서비스 혁신, 행정정보 공동이용 등 성과 거둬
법제 정비·부처 간 협력·안전성 강화 등 해결 과제도 적지 않아

[아이티데일리] 전자정부는 ‘각종 민원 서비스나 행정업무를 인터넷 접속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온라인 정부’를 의미한다. 이 사업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01년으로, 당시 국민의정부는 튼튼한 정보 인프라를 바탕으로 정부 경쟁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하에 그 핵심 전략으로 전자정부 구현을 내세웠다.

국민의정부는 그동안 각 행정기관이 개별적으로, 단위 업무별로 추진해 오던 정보화 사업 중 전자정부 기반 구축에 핵심이 되는 11가지 분야를 중점 추진과제로 선정했다. 그리고 이를 전담할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설립했다. 그 결과, 2002년 11월 전자정부 홈페이지 개통을 기점으로 전자정부의 기반이 속속 마련되기 시작했다.

전자정부의 비전
전자정부의 비전

전자정부 홈페이지는 2003년 10월 말 기준 이용자 수가 2천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9월부터 토지대장 3종의 민원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할 수 있게 되면서 하루 평균 이용 횟수가 1,150건에서 1,900여 건으로 늘어났다. 행정기관 사이의 정보 공동이용 건수도 개통 초기 하루 평균 5,800건에서 1만 3천여 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주민·호적·국세 분야 등 이용 빈도가 높은 행정정보의 공동 이용 체계를 구축해 20종의 민원 첨부서류 제출을 폐지함으로써 국민의 관공서 방문 횟수를 줄이는 효과도 거뒀다.
 

나라장터 통해 공공조달 온라인화

‘나라장터’로 불리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G2B)은 1년간 13만여 건의 발주 정보를 인터넷에서 일괄 제공하는 등 공공조달의 온라인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2만 5천여 기관과 8만 7천여 기업이 함께 이용함으로써 연간 약 25조 원의 전자상거래가 이뤄졌으며, 전자입찰 91.4%, 쇼핑몰 구매 97% 등 전자조달이 정착 단계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나라장터는 UN이 주는 ‘공공서비스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보험 분야에서는 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시스템(SIIS)’이 구축돼 보험자격 관련 신고업무를 1회 신고만으로 일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2003년 5월 전면 시행 이후 5개월 동안 총 477만 건, 월평균 95만 건의 공통 신고가 이뤄졌다.

전국 시군구에서 공통으로 수행하는 주민, 차량, 호적 등 21개 업무를 전산화한 ‘시군구 행정종합정보시스템’ 또한 전자정부 주요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시스템은 한 번의 전입신고만으로 차량, 보건복지 등 주민과 관련된 10개 부문의 주소가 일괄 변경돼 민원 편리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신청서류가 15종에서 1종으로 통합됐고, 처리 기간도 20일에서 4일로 단축됐다.

이 밖에도 ‘종합국세서비스’는 개통 후 전체 납세자의 약 24%,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의 약 99%가 홈택스 서비스에 가입해 신고, 납부 및 각종 민원증명을 인터넷으로 처리했다. 전자결재·전자문서 유통·재정·인사 등 공통행정 분야에서도 전면적인 전자화가 이뤄짐으로써 행정관리의 효율성 및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정부기관의 전자결재율은 91.3%, 전자문서유통률은 82.9%로 나타났다.

전자정부의 목표
전자정부의 목표

 

“행정조직 생산성 향상과 국민 편익 극대화”

전자정부는 ‘정부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고’, ‘국민에게 편리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2가지의 큰 목표를 갖고 있었다. 행정자치부 정국환 행정정보화계획관은 “행정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국민의 편리성을 높이는 것, 이 2가지가 전자정부의 축”이라고 말했다.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정부 업무의 흐름을 정의하고 조직 간 업무가 분산되지 않도록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편리한 행정서비스’란 어떤 경로로 관공서 홈페이지에 들어오든지 그 업무 담당자가 누구이든지, 어떤 절차로 처리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도 충분히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앞에서 소개한 여러 시스템을 통합해 각종 민원업무가 온라인으로 처리됨으로써 국민의 편리성이 크게 증대됐다. 정부 조직 역시 서류가 직접 오가지 않고 업무를 처리해 공무원의 생산성이 향상됐다.

오프라인 중심의 행정에서는 국민 1명이 1년에 10번 정도 공공기관을 방문해 민원을 처리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하지만 전자정부 구현으로 상당 부분이 온라인에서 처리됐으며, 그 이용률 또한 꾸준히 높아지는 성과가 나타났다.

전자정부의 성과는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국민이 직접 찾아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필요한 업무를 할 수 있고, 온라인에 공개된 각종 정보를 통해 정부의 활동사항을 쉽게 이해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이처럼 정부 정책을 쉽게 접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물론 국민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면서 참여민주주의의 활성화에도 한몫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했다.

이와 관련,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전자정부팀의 최창학 팀장은 “전자정부 사업은 전자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정부의 투명성 높이는 데도 한몫

전자정부의 구현은 각종 행정 처리와 관련된 부조리를 예방함으로써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도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으로 민원을 처리하면서 무엇보다 담당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창구에서 대면하지 않게 된 것이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전자조달 사업이다. 당시 공공기관에서 조달을 통해 구입하는 물품 규모는 약 70조 원에 달했다. 많은 돈이 오가는 탓에 과거에는 입찰 과정의 투명성과 관련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자입찰이 시행된 후 이런 문제들은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낙찰자를 전자적인 방식으로 선정하면서 조달 과정이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공공 입찰 가운데 전자입찰의 비중이 91.4%, 일반 구매 가운데 쇼핑몰 구매가 97%에 달해 물품 구매와 관련된 비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정보통신부 박재문 정보화지원과장은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전자정부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자무역 서비스 또한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자무역이 실시되기 이전에는 통관 업무 등에서 일처리를 빠르게 하려면 이른바 ‘급행료’를 내기도 했다. 전자무역 서비스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무역의 전 과정이 인터넷으로 처리됨으로써 관세, 통관 업무의 투명성이 개선됐다.

서울특별시의 ‘민원처리 온라인공개시스템’은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주는 상을 받았을 정도로 큰 효과를 보았다. 민선2기인 고건 시장 때 만들어진 이 시스템은 시청이나 구청에 인·허가 민원을 신청하면 접수와 동시에 인터넷에 처리 과정이 뜨도록 해 시민들은 신청한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언제나 확인할 수 있었다.


전자정부 구축 경험이 SI 분야 수출로 이어져

서울시가 인·허가 업무를 공개하게 된 것은 행정업무 가운데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은 부조리가 있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시행 당시 50여 개의 인·허가 업무를 공개했던 서울시는 2002년부터는 70여 개로 항목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이권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35개 위원회 활동도 모두 공개했다.

서울시 CIO인 박정호 정보화기획단장은 “시민들은 자신과 관련된 업무를 누가 조정하고 있으며,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늦춰지고 있다면 이유는 무엇인지를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업무 공개를 통해 부조리가 전혀 없는 행정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자정부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국제사회에서 국내 기업의 SI 분야 위상이 높아졌다. 삼성SDS에서 전자정부 관련 사업을 총괄하던 이병헌 상무는 “지금까지 SI 업체가 해외에 진출하기 매우 어려웠지만, 최근 해외 SI 사업에서 국내 기업의 입지가 격상됐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의 한 시에서 행정 시스템 재구축 사업자를 선정했는데, 삼성SDS가 NEC, 후지쯔 등 일본의 유수 기업과 경쟁해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특히 이 시에서는 이미 NEC가 개발한 시스템을 쓰고 있었음에도 한국 기업에 재구축을 맡겼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서울시나 강남구청의 성공 사례가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SDS 이병헌 상무는 “앞으로 전자정부 사업의 성공이 SI 부문의 수출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자정부 추진분야와 아젠다
전자정부 추진분야와 아젠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참여정부의 로드맵

참여정부는 출범하면서 국민의정부가 추진하던 전자정부 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이전 정부에서 11대 과제를 추진하는 데 집중한 것과 달리, 세계 최고 수준의 열린 전자정부를 만든다는 비전을 세우고 법제 정비, 업무혁신 프로세서 개발까지 사업에 포함시켰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최창학 전자정부팀장은 “업무의 프로세스화를 추진하면서 정보화도 함께 추진하는 것이 지난 정부의 전자정부 사업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사업을 4대 분야로 나눠 10대 아젠다와 31개 세부과제를 선정했으며, 14명의 전자정부전문위원을 위촉해 과제별 사업추진을 전담시켰다. 전문위원들은 사업추진과 관련해 런너 코치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부처 간 협력 유도나 업무 조정도 전문위원의 역할에 포함돼 지난 정부의 전자정부특별위원보다 그 위상이 더욱 강화됐음을 알 수 있었다.

전자정부의 구현 원칙에 있어서 성장 위주의 정보화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정부 서비스, 정보자원 관리 등에서의 혁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정보자원관리의 혁신은 국민의정부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부분인데 참여정부 들어서는 법제 정비를 전담하는 별도의 테스크포스를 만들어 연구를 진행했다. 개인정보보호 문제 역시 행정자치부의 정보화총괄과에서 담당하는 것에서 기능을 확대해 전담 과를 신설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행정자치부 정보화총괄담당관실의 최병관 서기관은 “지난 정부에서는 11대 과제를 2년 안에 완성하려다보니 급하게 진행한 측면이 있었다. 참여정부는 5년 동안 꾸준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등·초본 발급

참여정부는 2004년 상반기에 전자정부 사업의 로드맵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었다. 당시 짜여진 로드맵은 2004년까지의 계획만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전자정부전문위원회에서 맡았는데, 진행이 상당 부분 진척된 부분은 해당 부처로 이관하고, 오랫동안 런너 코치의 역할을 하는 것은 로드맵을 새로 짜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2004년부터는 전자정부 서비스 이용을 보편화하고, 체감 효과를 높이고자 주민등록등·초본, 건축물대장 등 국민이 자주 이용하는 행정서류를 온라인으로 발급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또한 일부에서는 모바일 전자정부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전자정부전문위원회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유통체계 고도화, 법제 정비(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 시·도/시·군·구 행정정보시스템 고도화, 시·도 공통 행정정보시스템 개발, 정부 기능관계 분석 및 업무 재설계, 온라인 발급대상 민원 확대 등 다양한 과제를 2004년 핵심추진과제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 밖에 2004년에 새로 시작해 몇 년간 단계적으로 시행할 사업들도 계획이 마련돼 있는 상황이었다.
 

2005년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실현

당시 우리나라의 민원사무 개수는 4천 개 이상이었다. 이 가운데 인터넷에서 민원 신청이 가능한 것이 400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은 30개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행정서류는 9개에 불과했다.

또한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신청해 우편으로 서류를 받는 방식이었기에 국민이 느끼는 전자정부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주민등록등본을 2004년 상반기부터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게 되면서 전자정부가 국민의 일상으로 파고들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관계·부처 간 협조 부족 등 해결 과제로 떠올라

전자정부가 성공적으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이미 2003년 5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그간 진행돼 온 전자정부 구축사업의 문제점으로 △정부혁신·지방분권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기여도 미흡 △관계 부처 간 협조 미흡 및 집단 이기주의의 팽배 △객관적인 성과 평가체계 미흡 등을 꼽은 바 있다.

‘정부혁신·지방분권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기여도 미흡’과 관련해서는 일하는 방식의 개선과 전면적인 업무 재설계 없이 정보화가 추진돼 업무 개선효과가 기대 이하였다는 점이 우선 지적됐다. 또한 오프라인 중심의 현행 법령 및 관행이 정보화에 제약이 되고 있으며, 중앙부처 중심의 ‘푸시(Push)형’ 사업 추진으로 자치단체 특성에 맞는 시스템 개발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관계 부처 간 협조 미흡 및 집단 이기주의의 팽배’ 부분에서는 정보 보유기관의 정보 제공 기피 등으로 공유체계가 제대로 서 있지 않고, 정보화로 인한 기득권 상실 및 정보 오·남용의 가능성 등을 이유로 이해 당사자 및 시민단체의 반발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객관적인 성과 평가 체계 미흡’과 관련해서도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 사전에 사업의 타당성 검토 절차가 빈약했으며, 사용자나 객관적인 제3자에 의한 사후 평가 제도가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정보 격차 해소 및 정보 소외계층 지원

학계와 업계의 전자정부 전문가들 또한 많은 문제점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들을 지적했다. 우선 정보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부분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PC가 없거나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아 PC 이용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 또는 환경은 갖춰졌으나 사용할 줄 모르는 경우에 대한 대책은 정부가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이와 관련, 우체국에서 무료로 인터넷 사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중고 PC를 수리해서 보급하는 것처럼 퍼블릭 액세스를 확충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그리고 민간업체와 사업을 연계해 해결 방안을 적극 모색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국민 교육도 최우선 과제로 여겨졌다.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능력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전자정부의 서비스가 의미를 지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의 ‘정보화마을사업’은 교육으로 정보격차를 해소하고, 주민의 소득증대에도 일조한 성공사례이기에 참고해봄직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장애인, 외국인을 위한 지원방안은 행정기관의 정보화수준 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어 점차 나아지고 있었지만, 전자정부가 복지사회로 가기 위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면 소외계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이러한 준비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시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정부가 전자정부 사업을 주도함에 있어 밀어붙이기식으로만 진행하는 탓에 국민에게 사업의 필요성과 효과를 홍보하는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자정부 사업은 행정의 객체였던 국민을 행정의 주체로 이끌어내는 사업이었다. 온라인을 통해 정부의 정책과 사업에 쉽게 접근하는 것을 바탕으로 이해도를 높이고, 이는 또다시 국민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나가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사업 방식은 전자정부의 모습을 갖추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비전과 목표가 무엇이며, 구현되면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아울러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다 보니 국민은 서비스가 변경돼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비판할 줄 모르고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이용자로 전락하는 측면도 지적됐다.


시스템, 서비스의 안전성 강화

전자정부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보안, 즉 안전성과 관련된 내용이다. 인터넷으로 행정문서를 발급받다가 해킹을 당하지 않을지, 위·변조된 문서는 아닐지 하는 불안감은 누구든 느낄 수 있다.

전문가들은 IT 기술로 100% 안전한 보안책을 마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비용 부담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층 강화된 보안책을 마련한다 해도 해커들이 이를 언제 무력화시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 업무나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단계적으로 보안 정책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다.

예를 들어 위·변조나 도용 시 재산권에 해를 입힐 수 있는 행정문서들은 기술적으로나 서비스 방법론적으로 탄탄한 보안책을 강구한 뒤에 서비스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킹이나 바이러스 등 보안과 관련한 부분 외에 IT 시스템 안정성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서비스 이용 중 시스템이 정지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개인정보나 행정자료의 유출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전성 문제와 관련해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 공무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민원처리 인터넷 공개시스템 운영 현황
민원처리 인터넷 공개시스템 운영 현황

전자정부의 행정서비스가 오프라인보다 편리한 이유는 단지 인터넷으로 민원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여러 부처나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처리해야 했던 업무를 하나의 창구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장점이었다,

주민·호적·국세 분야 등 이용 빈도가 높은 행정정보의 공동이용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20종의 민원 첨부서류 제출을 폐지한 전자정부 단일 창구가 네티즌이 선정한 2002년 ‘베스트 오브 베스트 2002상’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직적 연계는 잘 되면서도 수평적 연계는 잘 이뤄지지 않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관계 부처 간 협조 수준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행정자치부 정국환 행정정보화계획관은 “두 과의 협조를 얻어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에도 이런 불편함을 경험할 때가 적지 않다”며 “특히 협조가 잘 되던 분야라 할지라도 한번 사고가 생기면 더욱 폐쇄적으로 바뀌어버린다”고 설명했다.

전자정부 관련 법제정비 추진방향
전자정부 관련 법제정비 추진방향


전자정부 뒷받침할 법적 근거 마련 시급

전자정부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는 점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의 수집 및 축적과 관련한 현행법이 부족한 상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보를 수집·축적·처리·이동하고 디지털화하는 데 있어 전자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당시 참여정부 또한 오프라인 중심의 법제도는 전자정부서비스의 걸림돌이며, 법제 정비가 ‘성공적인 전자정부 구현의 핵심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주민정보이용기관과 관련한 규정이 미비해 4대 보험 정보 연계 서비스에 차질을 빚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사례는 관련 법제정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참여정부는 이와 관련해 2004년 행정자치부 내에 법제 정비를 전담하는 새로운 과를 만들고,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법, 제도 마련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아울러 해외 사례를 연구·검토하고 관련 학계나 시민단체와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눔으로써 정보화 시대의 강력한 도구로 인해 국민의 프라이버시가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밖에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연계가 부족한 점, 전자정부의 한 축인 공무원의 인식 부족 같은 문제도 고쳐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공조 부문과 관련해 서울특별시 정보화기획단장을 맡고 있던 박정호 국장은 “정부와 지자체 사이에 대화가 부족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전국을 아우르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반면, 지자체는 시민과 직접 부딪히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에 양자 간의 활발한 대화는 국민과 함께하는 전자정부를 만드는 데 필수 요소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었다.

이어 박정호 국장은 “특히 광역시는 그 규모의 특성상 전체 기획 기능과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역할을 모두 가지고 있어 중앙정부와 기초 자치단체 사이에서 중재자, 조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의 인식 부족과 관련해서는 교육의 문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됐다. 공무원들은 단순히 전자정부를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책임을 갖고 업무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중요성을 이해하고, 정보시스템을 활용할 때 적극 신뢰하면서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전자정부 성공의 중요한 열쇠 중 하나로 간주됐다.

명지대학교 정윤수 교수는 “정부가 업무혁신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자체 공무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전의 업무 처리 형태를 인터넷으로 바꾸고 종이문서를 전자문서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특히 업무 협조와 같은 부분은 오프라인으로 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전자정부 서비스가 시작되고 문서 없는 업무 환경이 갖춰졌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작지 않았다. 하지만 전자정부의 구현 목적은 행정서비스를 온라인화하고 업무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전자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부와 국민 사이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국민을 행정 주체로 세우고, 진정한 참여민주주의 사회를 이루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해 명지대 정윤수 교수는 “복지사회를 말할 때 ‘가장 바람직한 복지사회는 복지가 국민의 삶 속에 스며들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듯 전자정부도 국민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올바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다 누리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정부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모습의 전자정부를 지향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제는 ‘디지털플랫폼정부’

여러 정부를 거치며 2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전자정부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부터 ‘민원24’를 통해 주민등록등·초본을 누구나 온라인으로 쉽게 출력할 수 있게 됐으며, 2017년에는 민원24, 대한민국정부포털, 알려드림e 등 전자정부 시스템을 통합한 ‘정부24’가 실시되며 국민의 온라인 민원 업무는 더 편리해졌다.

실제로 UN이 2022년 발표한 전자정부 발전지수 종합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3위를 차지했으며, 세부적으로 온라인서비스, 정보통신인프라 부문에서도 각각 3위, 4위를 기록했다. 특히 전자정부 발전지수가 2004년 이래로 2008년을 빼고는 매년 5위권 이내의 순위를 기록하는 등 대한민국 전자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AI)·빅데이터 기반 행정 정보시스템인 ‘디지털플랫폼정부’를 2022년부터 추진 중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는 국민이 실생활에서 더 편하게 사용하는 행정서비스를 만들고, 민간의 우수 서비스 개발 지원을 목표로 데이터를 개방하고 사일로(Silo)화 된 부처별 데이터 시스템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지자체 공무원 업무 관리 프로그램과 정부24 등 국가행정망에 연속적인 전산장애가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로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관리시스템 ‘e호조’와 조달청의 ‘나라장터’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지난해 11월 25일 라우터에 장비 케이블을 연결하는 일부 포트 이상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2004년 당시 본지에서는 전자정부의 개선해야 할 점으로 ‘시스템과 서비스의 안전성 강화’를 꼽으며 시스템 정지로 개인정보, 행정자료 유출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안정성을 강화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년이 지난 2024년 디지털플랫폼정부에도 이와 같은 비판은 유효하다. 더 나은 디지털플랫폼정부를 위해서는 새로운 서비스 못지않게 기본을 돌아보고 안정성을 다지는 일 역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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