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주말 백업에서 실시간 백업으로…백업 관행 변화는 큰 소득

[아이티데일리] 2002년 12월 당시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해야 하는 기업은 모두 119개사로 은행 21개사, 증권사 43개사, 보험사 43개, 카드사 7개, 그리고 유관기관 5개사였다. 하지만 2002년 11월까지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한 곳은 은행 14개사, 증권사 10개사, 보험사 8개사, 카드사 3개사, 유관기관 2개사로 30.2%에 불과했다. 당시 관계자들은 은행, 증권사, 카드사는 3시간 안에, 보험사는 24시간에 복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금감원 권고안을 낮은 구축률의 원인으로 봤다. 2002년 금융기관의 재해복구센터 구축 현황과 문제점, 대안 등을 살펴봤다. 

 

재해복구센터 구축비용 부담이 한 몫

2002년 11월 금융기관의 재해복구센터 구축률은 30.2%로 당초 전망에서 크게 벗어난 수치였다. 전문가들은 제한 시간 내 복구해야 한다는 점과 더불어 재해복구센터의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꼬집었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마당에 더 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2002년 증권 시장의 위축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증권사들이 재해복구센터의 구축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했다.

재해복구센터의 구축과 운영비용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당시 초기 구축비용만 적어도 10억 원에서 많으면 100억 원 이상이며, 구축 이후 운영비용도 매년 1억 원에서 10억 원이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스템 공급업체의 관계자는 “하드웨어만을 생각할 경우 스토리지 5TB을 도입할 때 10억 원이 넘는다. 전산실에 방온, 방습, 방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도 따로 두면 20억 원이 훌쩍 넘는다. 통신 회선 비용이나 소프트웨어 비용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관계자 또한 “자체적으로 구축하면 10억 원, 외부에 위탁할 경우에는 5억 원의 초기 구축비용이 든다. 또 운영비용은 자체적으로 하면 5억 원, 외부 위탁 시 월 1억 원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2001년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한 하나은행은 시스템 임대료, 시설 사용료, 운용비용, 통신비 등을 합쳐 약 1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캐피탈은 통신설비, DB서버, 애플리케이션, 디스크, 전송 장치 등을 포함해 약 40억 원을 투자했다.

2002년 11월 기준 보험사 재해복구센터 구축 현황(출처: 컴퓨터월드 2002년 12월호)
2002년 11월 기준 보험사 재해복구센터 구축 현황(출처: 컴퓨터월드 2002년 12월호)
2002년 11월 기준 신용카드사 재해복구센터 구축 현황(출처: 컴퓨터월드 2002년 12월호)
2002년 11월 기준 신용카드사 재해복구센터 구축 현황(출처: 컴퓨터월드 2002년 12월호)

 

시행 구축 계획안 제출 통해 구축 미뤄

실제 2002년 말까지만 해도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한 금융기관이 메이저급이거나 재벌 그룹 소속의 계열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상황만 봐도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용이 그만큼 많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2002년 말까지 재해복구센터의 구축을 권고했던 금감원도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금융기관이 언제, 어떻게 구축하겠다는 구축 시행 계획안을 제출하면 반드시 2002년 안에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무조건 빨리 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하지 않은 금융기관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앞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구축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 대한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어떠한 이익과 불이익을 줄지는 미정이라는 뜻이었다.

 

금융사, 통신회선비 인하 한목소리

또 회선 비용을 낮추는 방안도 고민했다는 것이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통신 회선 비용에 대해 금융사와 통신사의 말이 다르다”며 정책 결정의 어려움을 털어 놓기도 했다.

금융기관들은 “회선비용이 전체 운영비용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2001년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한 한 은행은 통신비용으로만 20억 원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3년에 구축할 계획을 세웠던 한 금융기관 또한 운영비용의 30%를 통신비로 지출할 것 같다는 계획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형 은행의 전산실 책임자는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회선비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통신사의 주장은 달랐다. 재해복구센터 구축의 경우, 원가 수준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이익은 기존 전산센터와 지점을 연결하는 백업망 구축 부문에서 거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백업 관행 1년 만에 바꿔

비록 당시 금융기관들의 재해복구센터 구축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큰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굳어져있던 백업 관행이 크게 변화한 사실이었다. 데이터를 테이프로 옮기는 백업 작업을 위해 야간이나 주말에도 일했던 상황들이 불과 24시간 내 실시간 데이터 전송체제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2001년 미국 테러 사태 이후 백업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금융감독원의 ‘금융기관 재해복구센터 구축 권고안’이 마련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비록 재해복구센터 구축에는 늦게 나섰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재해복구센터의 구축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또한 2002년 전까지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했던 금융기관들은 독자적인 센터 구축보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삼성SDS, LG CNS, SK C&C 등 서비스 업체에 위탁 운영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체적으로 구축할 경우, 건물 구입비나 임대료 등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2002년 재해복구센터 구축 시 고려사항(출처: 컴퓨터월드 2002년 12월 호)
2002년 재해복구센터 구축 시 고려사항(출처: 컴퓨터월드 2002년 12월 호)

한미은행, 하나은행, 외환카드 등은 현대정보기술의 데이터 센터가 있던 용인에 재해복구센터를 뒀으며, 기업은행, LG카드, LG화재 등은 부평에 있던 LG CNS 데이터 센터와 연결돼 있었다. 이외 타 금융기관의 재해복구센터 또한 대부분 서울에서 불과 30~40km 떨어진 수도권 지역에 집중됐다. 이는 서비스 업체들의 데이터 센터가 부평이나 용인 등 수도권 지역에 위치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거리가 멀수록 통신 회선 비용이 올라가는 것을 고려한 탓이었다. 여기에다 금감원이 구체적으로 거리를 명시하지 않고 있으며, 동일 재해 지역을 피해 구축하면 된다는 당시 권고안 내용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메인시스템과 백업시스템 간의 가까운 거리를 놓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적어도 100km는 떨어져 있어야 완벽한 복구 체제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실제 조흥은행, 한국은행,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은 서울에서 200~3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해 관심을 끌었다.

 

재해복구센터 구축에 회의적인 입장도

2001년 10월 금감원이 재해복구센터 구축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하고 이어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했던 금융기관은 2002년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항간에는 일부 기업이 메인시스템의 성능 저하를 이유로 하루에 한 번씩만 데이터를 백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실시간 백업 체제를 갖춰 놓고도 하루에 한번만 백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었으나 이런 소문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놓고도 시스템을 사장시키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또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하라는 금감원의 권고에 타의적으로 대응한 것에 불과하며, 향후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나 효과적인 운영도 기대할 수도 없어 재해복구센터의 구축이 하나의 정부 정책 사업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러한 말이 떠돌았던 것도 재해복구센터의 구축에 관해 회의적인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 단면이 아니겠냐는 것이 관련 업계의 시각이었다. 실제로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왜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해야 하는가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동안 데이터 손실로 어려움을 당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냐며 오히려 반문했던 것이다. 일종의 보험 성격인 재해복구센터 구축에 엄청난 구축 및 운영비용을 쏟아 붓는 것은 낭비지 않겠냐는 지적이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재해의 원인은 천재지변이 32.5%, 기기 고장이 34.9%, 인재가 32.6%다. 이는 2/3은 미리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재해의 발생에 대해 대처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입장이 떠오르면서 과연 바람직한 재해복구센터의 구축방안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재해복구센터 구축 첫 단계에 해당하는 분석 및 설계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무 분석 및 설계 철저해야

당시 국내 금융기관들이 재해복구센터를 구축한 방식은 서비스 업체에게 일괄 맡기는 것이 주류를 이뤘다. 서비스 업체들이 컨설팅에서부터 최종 구축 운영까지를 책임지고 해준 것이다. 문제는 서비스 업체들이 업무 분석이나 설계보다는 시스템의 구현에만 치우쳐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복구 업무의 대상이나 범위를 불명확하게 정의하는 현상을 낳고, 이어 비용의 낭비 요인으로 작용했다. 불요불급한 데이터가 아니면 실시간으로 전송할 필요가 없는데 이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있는 것은 분석 설계 단계에서 철저한 작업이 부족했기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 업무를 풀 미러링 방식으로 구축하기 보다는 업무의 특성이나 기업 내부의 데이터 중요도를 따져 적합한 복구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즉 고객의 업무 데이터 가운데 3시간 안에는 꼭 복구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고 24시간 안에 복구해도 되는 데이터를 분류해 별도의 복구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최적화된 투자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어 “컨설팅 업체나 SI 서비스 업체들이 이러한 역할을 충실하게 해줘야 한다. 사용자들 또한 가격만을 따지기 보다는 효과적인 구축 운영 방안을 모색하는 데 신경을 써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하드웨어 솔루션의 도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재해복구 컨설팅 과정을 거쳐 깊이 있는 업무 분석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운영방안을 수립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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