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만큼 실망도 커, 1년만에 대부분 중도 포기

컴퓨터월드 2001년 11월호 표지
컴퓨터월드 2001년 11월호 표지

[아이티데일리] 2000년, 국내 정보통신 업계에 북한 진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정보통신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력난이 심각해진데다가, 북한 인력이나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력이 세계 일류 수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술 제휴나 SW 반입, 인력 활용 등의 목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북한에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남북경협은 1년만에 참여 기업의 90%가 중도 포기하는 등 실망스런 결과가 나타났다. 남북경협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긴 안목과 철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90% 이상 중도 포기

2001년, 국내 IT 업계가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북한의 태도 변화였다. 북한은 2000년 초 과학기술을 강성대국 건성의 3대 기둥 중 하나로 내세웠다. 전자·정밀기기 등 첨단과학기술, 응용과학기술의 개발 및 도입에 주력하면서, 당면한 경제난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실용적 기술 개발을 정책의 핵심으로 잡은 것이었다. 북한은 남한 기업 가운데서도 기술 이전에 뜻이 있는 기업들에게 우선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우리 기업들은 북한이 애니메이션과 음성을 비롯한 각종 인식 기술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낮은 임금에 조금만 교육해도 SW 개발 등에 투입할 수 있는 개발자들이 많다는 점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특히 분단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의 교류를 본격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2000년부터 1년 동안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북한을 다녀왔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벤처기업, 학계에 이르기까지 북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또 이들 기업들은 저마다 북한 방문 후 얼마를 투자할 것이며 어떤 내용으로 합의했다는 성과들을 발표해 세간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사업을 진행하고, 나온 성과를 공개하는 기업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 기업들은 사업계획을 발표한 이후 북한과의 협력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북한과 협력 사업을 진행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북한과 협력 사업을 하겠다고 밝힌 기업 중 90%가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사업 포기한 이유는 북한과의 사업이 수익성으로 연결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북한과의 협력을 위한 투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 협력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투자를 우습게 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협력 사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로 ‘남한 기업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꼽았다.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하면서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북한에서는 이러한 발언을 약속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협력 사업을 구체화 할 경우 약속을 못지키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이 경우 북쪽 담당자가 문책을 당하기 때문에 북뽁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북한은 사업이 완전히 성사되기 전까지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데, 우리 기업들은 어느정도 얘기만 오가면 돌아와 소문을 내버렸다”면서, 이런 경우가 되풀이되다 보니 북한에서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기업들이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고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것 역시 불신의 이유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 남한의 언론에도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언론들이 기업의 말만 듣고 쓸데없이 기사화 하는 탓에 실제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곤란을 겪는 일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또한 북한에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진행하는 협력 사업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납북 IT 경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은 고쳐지지 않았다. 북한 진출 컨설팅을 하던 한 기업의 관계자는 북한과 협력 사업을 하려는 경우 대부분이 ‘투자를 하겠다’거나 ‘북한과 함께 발전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보단 ‘인건비가 싸니까 이익이 클 것’이라는 식의 생각만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주체적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북한은 일 자체의 성과나 기업의 투자 규모보다 사람을 더 중심에 놓고 있다고 조언했다.

한 전문가는 “거래를 하자고 밀어붙이기 보다는 같은 민족으로써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문제가 생겼을 때도 기업 담당자가 평소에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가를 바탕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말했다.

2001년 남북 정보통신 협력 주요현황(출처: 컴퓨터월드 2001년 11월호)
2001년 남북 정보통신 협력 주요현황(출처: 컴퓨터월드 2001년 11월호)

 

공장 건립 등 성과냈던 ‘IMRI’

남북 경협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던 대표적인 기업이 아이엠알아이(IMRI)였다. 북한 진출 컨설팅이 주 사업 분야였던 IMRI는 북한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공장까지 건립했다. 당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대북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하던 IMF 시기였기에 북한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직원들에게도 북한을 인정하는 시각에서 평등하게 바라볼 것을 강조했던 IMRI는 북한 기술자에게 모니터 기술과 관련된 교육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교육 과정에서도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의견 교환을 통해 함께 좋은 방안을 찾는 등 북한의 신뢰를 받았다는 설명이었다.

남북 경협 사례(출처: 컴퓨터월드)
남북 경협 사례(출처: 컴퓨터월드)

IMRI는 특히 북한에서 사업을 하면서 문제에 부딪힐 때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 가지 예로는 북의 전력 문제가 있었는데, 다른 기업들이 포기할 때 IMRI는 시간 단위의 통계를 통해 불량률이 가장 심한 시간에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방법을 택했다.

특히 북한에 세웠던 모니터 공장은 의미가 더욱 컸다. 모니터 생산 단가를 낮추는데 그치지 않고 북한 내수용으로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IMRI는 북한이 정보통신 분야를 장려하는 만큼 모니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IMRI는 북한, 조총련과 함께 유니코텍(UNIKOTEC, Unification of Korean Technology)이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 유니코텍은 북한이 기술력을 제공하고, 조총련이 일본에서의 마케팅을, IMRI가 자본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일본에 15명, 북한에 12명의 직원을 두었다. 유니코텍은 번역기, 문자입력기, 문자인식기, 문서자동작성편집 SW를 패키지로 만들어 일본시장에 공급했다. 이를 통해 월 5천만 엔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또 IMRI는 유니코텍을 모니터 일본 총판으로도 활용했다.


고려기술개발제작소 설립한 ‘엔트랙’

엔트랙(Ntrak)은 인터넷 벤처기업 가운데 가장 열심히 북한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엔트랙은 북한에 구두공장을 운영한 엘칸토의 인터넷 쇼핑몰을 만든 것을 계기로, 북한과 3D 및 애니메이션 분야 협력을 시작했다.

엔트랙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3D 기술교육이 있었다. 2000년 7월부터 교육을 진행했으며 2001년까지 500명, 2002년까지 3천 명의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었다.

당시 엔트랙이 민족경제협력연합회로부터 승인받고 공사를 진행했던 고려기술개발제작소는 연구개발동 8개, 교육관리동 1개, 비즈니스센터 1개로 구성됐다. 특히 비즈니스센터에는 숙박, 전시, 문화, 여가시설 등을 두어 경협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장기투숙하는데도 문제가 없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엔트랙은 건물 건립과 함께 11월까지 실무협상을 끝내고, 고려기술개발제작소에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었다. 또한 고려기술개발제작소를 기반으로 남북경제협력센터를 만든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엔트랙은 고려기술개발제작소가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통일의 물꼬를 트는데도 의의가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단동-신의주 SW 및 멀티미디어 밸리로 주목받은 ‘하나비즈’

하나비즈(HANABIZ)는 ‘단동-신의주 소프트웨어 및 멀티미디어 밸리’ 계획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현실적으로 법이나 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IT 인력 활용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단동-신의주 소프트웨어 및 멀티미디어 밸리’는 중국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정보통신단지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북한 인력이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교육센터도 건립하고, 건물임대비용이 싼 지역에 기업들을 유치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특히 이 계획은 북한의 개발인력들을 국내로 데리고 올 수 없는 상황에서, 공동개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평가됐다. 더불어 완충지대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중국진출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남북합작 IT 벤처기업으로 설립된 ‘하나프로그램센터’는 프로젝트팀과 교육파트로 운영됐으며, 개발인원 10명과 교육인원 30명이 모두 북한 인력으로 구성됐다. 교육센터는 따로 운영됐으며, 10명의 남한 인력이 강사로 투입됐다.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윈도우 2000서버, 네트워크, 리눅스, 비주얼C+ 등과 같은 IT 공통과정 외에도 전문 과정으로 전자상거래, 네트워크 등의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었다. 또한 VR 과정을 포항공대에서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남북경협에 있어 IT 분야는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평가됐다. IT분야는 단순 임가공이 아니라 대부분 교육과 공동개발이 동시에 진행돼야 하며, 따라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남북합작 IT벤처 하나프로그램센터 제막식
남북합작 IT벤처 하나프로그램센터 제막식
하나프로그램센터 교육 현장 사진
하나프로그램센터 교육 현장 사진


북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

북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낸 기업들은 북한을 이해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은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다른 체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함께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남쪽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라는 지적이었다.

성과를 거둔 기업들은 무엇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 신뢰가 쌓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하게 내실을 다져가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은 북한에 진출하면서 정부의 지원이나 전문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걸림돌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난관이 많은 상황에서 안정적인 기업들이 북한과 협력해야 긴 호흡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데, 어려운 경영 조건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북한 진출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북한에 사업을 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관광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북한 방문 시 사업에 몰두하지 않았고, 결국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는 기업들도 많았다는 관계자의 한탄도 있었다.

이외에도 진출하는 기업들이 너무 SW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었다. 대부분 북한이 강점을 갖고 있는 3D나 애니메이션 분야를 계획하고 있는데다가, SW는 기술진보가 빠르고 경향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지적이었다. 제조업은 진출하는 분야가 중복되지 않도록 조절하는데 반해, SW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

남북협력과 관련해 정부의 문제도 있었다. 사업을 추진했던 기업 중 중소기업도 많았는데, 이들은 정부의 지원 문제를 많이 거론했다. 특히 남북협력기금 대출을 신청해도 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대출 심사에서 담보와 신용을 요구하는데, 기업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 담보를 제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대출받는 방법이 제한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통일부에서 대출에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출을 신청하면 담당자는 있지만, 절차 진행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출 절차를 안내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업체들이 수출입은행에 문의해 통일부 담당자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빠른 처리를 부탁하는 실정이었다.

물류비용 문제도 기업들의 불만 사항이었다. 엔트랙의 경우 고려기술개발제작소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재를 보내는데, 자재비용의 2/3에 달하는 물류비용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계산해보니 유럽에 왕복으로 보내는 비용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독점권을 가진 국양해운이 비싼 요금을 책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의 자료 공개가 제한돼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대북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에게는 특수자료 취급 인가가 안 돼, 사업을 위한 정보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관계자들은 “최소한 경협에 참여하는 기업들에게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특수자료 취급인가 제도는 북한 자료에 접촉하는 것을 막자는 것인데, 북한을 다녀오면서 정보를 보고 온 사람들에게도 막는 것이 말이 되느냐” 등의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규제도 기업들의 지적에 반드시 포함되는 사항이었다. 전략물자 기준에서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제한하던 기준이 완화되면서 법적으로 펜티엄4 이상의 컴퓨터도 가져갈 수 있었지만, 미국의 승인 문제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고려기술개발제작소 조감도(출처: 컴퓨터월드)
고려기술개발제작소 조감도(출처: 컴퓨터월드)

당시 유독 기업들이 북한으로 진출하려던 이유에는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북한을 방문한 강사들은 하나같이 북한 사람들이 성실한데다가,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을 받고 있고, 수준이 높기 때문에 활용분야가 많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점도 분명했다. 개발비의 가장 큰 부분인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었고, 개발인력이 고정돼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가장 기대받는 부분이 경제협력이었다. 또한 경제협력 선두에는 IT 산업이 있었다. 정보통신 분야 협력은 남북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물론, 통일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다만 1년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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