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라인 세우고도 예산 책정 없어 제자리걸음
2021년부터 시장 개화 조짐…공공·금융 등 주요 업계 변화 주목

[아이티데일리] 2019년, 오라클 자바SE 정책 변경

오라클이 자바 과금 정책 변경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났다. 오라클은 2019년 1월부터 자사의 자바 공급 정책을 기존의 패키지 라이선스 형태에서 구독형(subscription) 라이선스 형태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기업들이 자사 SW 판매 전략을 일회성 라이선스 구매에서 구독형으로 전환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자바에 대해서는 그 충격과 변화가 남달랐다. 오라클 자바의 과금 정책 변경이 이슈가 되기 전까지 자바 사용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자바는 오픈소스이며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게 맞다. 오픈JDK(Java Development Kit)를 사용하는 데에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오라클이 제공하는 자바는 다르다. 오라클은 자바 생태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오픈소스 자바를 ‘오라클 자바SE(Standard Edition)’ 등으로 패키징해 판매해왔다. 오라클SE는 한 번도 무료였던 적이 없다. 오라클 이외에도 IBM이나 레드햇 등 여러 글로벌 기업들은 오픈소스 자바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JDK를 개발해 공급해왔다.

오라클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은 독자적인 자바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오라클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은 독자적인 자바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자바가 오픈소스이며 따라서 공짜라는 인식이 팽배했기에, 당시 오라클의 자바 과금 정책 변경은 ‘자바 유료화’로 받아들여졌다. 수많은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오라클 자바SE를 무료로 다운받아 사용하고 있었으며, 개발자들 역시 자바가 유료라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오라클 역시 자바SE의 무단 사용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슈가 되는 일도 없었다.

2018년 말부터 정부는 ‘오라클의 자바 유료화’를 중요한 이슈로 파악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오라클의 자바 정책 변경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어 공공기관에 배포했다. 크게 대책은 세 가지로 나뉜다. 오라클 자바SE를 사용하며 매달 비용을 지불하거나, 오라클 대신 오픈소스 자바를 사용하거나, 제3의 기업에서 제공하는 자바를 사용하거나.


필요성 느끼면서도 예산 책정에 난항

하지만 국내 공공기관의 IT담당자들은 주먹구구식 대응 마련에 불과하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에서 마련한 가이드라인이나 구체적인 매뉴얼은 타당하지만, 가장 중요한 예산 책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바른 가이드라인이 제시돼도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책정되지 않으면 대응이 불가능하다. 오라클의 자바 정책 변경은 2018년 하반기에서야 본격적으로 이슈가 됐으며, 이에 따라 2019년 예산안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2019년 공공사업에서는 자바 라이선스 비용에 별도의 예산이 잡힌 경우를 찾기 어렵다. 이는 모든 산업계의 이슈가 코로나19 하나로 덮여버린 202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오라클이 자바SE 정책을 변경한 이후 미국이나 유럽,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컴플라이언스 이슈나 기타 법적인 분쟁이 발생했다. 그래서 기업들이 새로운 과금 정책을 실감하고 이에 대응해야한다는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오라클코리아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다보니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눈치를 보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라클의 자바 정책 변경에 따라 기업과 기관의 IT담당자는 기존에 없던 예산을 새롭게 편성해서 만들어야 했다. 심지어 원래 없던 항목도 아니고, 그동안 무료로 잘 써오던 자바에 대해 비용을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진을 설득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일부 선도적인 기업들이나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쳐야 하는 기업들만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일부 기업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오라클 자바SE 대신 오픈소스 자바를 사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의 거의 모든 시스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자바를 완전히 오픈소스로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자바는 9버전부터 6개월 간격으로 신규 버전이 나오고 있으며, 신규 버전이 나오면 기존 버전에 대한 버그픽스나 업데이트가 지원되지 않는다. 오픈소스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용 중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지겠다는 소리이니 IT담당자 입장에서는 골머리를 싸매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권범준 아줄시스템 한국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라클이 자바 정책을 변경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국내 시장에서는 여전히 자바를 돈 내고 쓴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특히 금융업계에서는 자바를 최신 버전으로 관리하고 보안성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먼저 나서서 총대를 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이어 “그런데 최근에는 자바 시장에 폭풍전야와 같은 모습이 엿보인다”면서, “그동안 자바에 돈을 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높고 단단한 댐처럼 느껴졌지만, 요새 그 댐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새는 것 같은 모습이 엿보인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무너지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전 산업계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21년부터는 자바 시장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공공기관들이 2021년에 진행할 사업을 발주하면서 제안요청서(RFP)에 자바에 대한 비용을 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바 사용에 대해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인정받게 되면서 공공사업에서도 자바 라이선스를 합법적으로 구독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2021년부터 국내 자바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미 오라클 자바 과금 정책 변경에 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IT담당자들이 경영진을 설득하는 데에 공공기관의 선도적인 사례를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6개월마다 출시되는 자바 신규 버전

한편 업계 전문가들은 새로운 자바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비용 이외의 요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자바 9부터 6개월마다 새로운 버전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기존에는 버전과 버전 사이가 연 단위로 매우 길었고 정해진 기간도 없었다. 가령 자바 6은 2006년 12월에 출시됐는데, 다음 버전인 자바 7이 나온 것은 2011년 7월이다. 자바 8은 2014년 3월에 출시됐다. 하지만 오라클은 2017년 9월 자바SE 9를 출시하면서 향후 6개월마다 매년 3월과 9월에 새로운 버전을 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오라클의 새로운 계획은 잘 지켜졌다. 이에 따라 2020년 3월에 자바SE 14가, 9월에 자바SE 15가 출시됐다. 오는 2021년 3월에는 자바SE 16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오라클 자바SE 지원 로드맵 (출처: 오라클)
오라클 자바SE 지원 로드맵 (출처: 오라클)

일각에서는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더라도 기존에 사용하던 버전을 계속 유지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전에 자바 신규 버전이 출시됐을 때도 많은 국내 기업·기관들은 기존에 사용하던 버전을 계속 사용해왔다. 자바 15가 나온 지금도 많은 조직들이 자바 8을 사용하고 있으며, 보수적인 기업이나 오래된 시스템에서는 자바 6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더라도 기존 버전에 대한 버그픽스나 업데이트가 지원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령 2017년 9월에 자바SE 9가 출시됐지만, 오라클은 2022년 3월까지 자바SE 8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오라클은 자바SE 9부터 새로운 지원 정책을 내세웠다. 신규 버전이 출시되면 기존 버전에 대한 일반 업데이트는 종료된다. 자바SE 9에 대한 버그픽스와 업데이트는 자바SE 10이 출시되는 2018년 3월까지만 제공됐다. 2020년 9월 출시된 자바SE 15도 2021년 3월이면 지원이 종료된다. 만약 고객이 자바SE 15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사용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오라클 측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꾸준한 업데이트와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서비스 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6개월마다 신규 버전으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오라클은 3년마다 LTS(Long-Term-Support) 버전을 지정해 6개월 이상 지원하고 있다. LTS 버전은 다음 버전이 나오더라도 버그픽스와 업데이트가 제공된다. 현재 오라클이 지정한 LTS 버전은 2018년 9월 출시된 자바SE 11이며, 2023년 9월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6개월마다 최신 자바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서비스 안정성과 유지·관리의 편의성을 위해서는 LTS 버전을 사용하는 게 현실적이다. 오는 2021년 9월에는 다음 LTS 버전인 자바SE 17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바SE·오픈JDK 아닌 ‘제3의 자바’도 고려해야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오라클의 강압적인 자바 지원 정책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빠른 버전 업데이트, 3년 단위로 제공되는 LTS 버전 등이 기업의 운영 정책과 맞지 않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에서는 아직 자바 8을 사용하는 조직들이 많고, 오래된 시스템에서는 자바 6도 심심찮게 보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버전을 유지하는 것이 보안이나 성능 측면에서 좋은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업의 시스템이 해당 버전에 최적화돼있어 손쉽게 다른 버전으로 변경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오라클이 버전 별로 지원 정책과 기간을 다르게 가져감으로써 기업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오라클 이외의 자바를 사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JDK가 대표적이지만 서비스 지원을 생각하면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라클 자바SE와 오픈JDK 이외의 제3의 자바를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라클 이외에도 독자적인 레퍼런스를 가지고 JDK를 개발해 자바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들이 있다. 오라클이 자바SE 공급과 서비스를 비즈니스 모델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들 역시 독자적인 자바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오라클이 자바SE에 대한 과금 정책을 변경한 이후 보다 적극적인 시장 공략에 나서는 추세다.

오라클 자바SE와 아줄시스템 줄루 지원 정책 비교 (출처: 아줄시스템)
오라클 자바SE와 아줄시스템 줄루 지원 정책 비교 (출처: 아줄시스템)

제3의 자바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오라클과는 다른 서비스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오라클이 서비스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버전들에 대해서도 연 단위의 지원 정책을 제공하는 식이다. 국내에서는 오픈JDK 기반의 줄루(Zulu)를 공급하는 아줄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아줄시스템은 오라클 자바SE의 LTS 버전인 11·17버전 외에도, 그 사이에 발표되는 홀수 버전(13·15)들을 MTS(Middle-Term-Support) 버전으로 지정해 5년 간의 업데이트와 지원을 보장한다. 이미 자바SE에서는 지원이 종료된 9버전 역시도 지원 가능하며, 국내에서 여전히 수요가 있는 그 이전 버전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2021년, ‘국내 자바 유료화 원년’ 전망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자바를 배제하고 IT 시스템을 개발하는 나라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공공 IT의 핵심에 자바 기반의 전자정부 프레임워크를 두고 있어 자바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간 자바 정책 변경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던 국내 기업과 기관들은 한시바삐 대안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2021년은 국내 자바 시장이 본격화되는 첫 해가 될 전망이다. 이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기업·기관들이 공공시장의 변화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관행적으로 무시해왔던 자바 사용료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조직의 IT시스템의 구성과 필요에 맞게 최적의 자바 라이선스 정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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