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 법률고문이었던 이원조 부사장과 홍보담당 최고 책임자인 이용식 상무가 이달 중으로 퇴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토니 로메로 사장도 빠르면 내년 2월(?)경 한국IBM을 떠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토니 로메로 사장의 퇴임여부는 아직 정확하진 않지만 후임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렇게 오랜 기간 맡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어쨌든 이원조 법률고문과 이용식 상무의 퇴직과 함께 토니 로메로 사장의 퇴임설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이들 세 사람의 움직임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들 세 사람은 지난해 말 국내외 IT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뇌물 파동’사건을 처리하는데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토니 로메로 사장은 사건처리를 위한 칼자루를 쥐고 흔들었고, 이원조 고문은 칼자루를 휘두를 수 있도록 모든 위법 자료를 조사해 제공했으며, 이용식 상무는 대외 이미지 추락을 저지하는 방패막이 역할에 최선을 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이들 세 사람의 퇴직과 퇴임은 곧 ‘뇌물 파동’ 사건을 일단락 짓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한국IBM의 ‘뇌물 파동’이라는 대사건은 무엇을 남겼을까?
우선 이 사건의 법원 판결부터 살펴본다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월 9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사건번호 2004고합112)으로 벌금 3억원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한국IBM은 이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4월 10일 취하했다. 이에 따라 이사건은 4월 18일 벌금 3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그러나 한국IBM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3억원의 벌금형 처벌을 받았지만 결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봤다.
가장 큰 피해는 지난 67년 설립 이후 37년여 동안 애써 쌓아온 ‘정직과 원칙’이라는 명예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컴퓨터의 대명사이자 세계 최고의 회사라 할 수 있는 IBM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전, 현직 사원들의 자긍심과 자부심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특히 이 사건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는 동료 직원 및 임원들의 불명예 퇴직은 내부 직원들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했다.
뇌물파동 사건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대표적인 임원들을 보면 신재철 사장을 비롯해 이상호 부사장, 이동윤 부사장, 김태영 전무, 김영규 상무 등이다. 이들은 모두가 한국IBM에서만 20년 이상 근무한 인물들이다. 젊음과 청춘을 한국IBM에 다 바친 셈이다.
이밖에 부장, 차장, 과장들 10여명도 이 사건으로 불명예 퇴직했다.
이들 가운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당연히 책임져야만 하겠지만 “왜 사표를 내야만 하는지 조차 모르겠다”고 할 만큼 억울해 한 인물들도 많다고 한다. 어떤 임원은 수 개월이 지나도록 무엇 때문에 불명예 퇴직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잘 몰라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미 IBM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 몇 년 전까지 기록돼 있는 호스트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까지 샅샅이 들춰내 조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사건과 연루된 관계자들을 비롯해 특정 직급 이상의 관계자들까지 그들이 주고받은 메일을 모두 조사해 문제가 있는 관계자들을 한국IBM 내부가 아닌 제 3의 장소로 일일이 불러 확인했고, 또한 그 장소에서 퇴직을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떤 임원은 자기 책상의 개인 서류도 정리하지 못한 채 문 밖에서 쫓겨나듯 퇴직 당했다고 한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대다수 임원들은 수수방관의 자세를 취했고, 이로 인해 남아 있는 임원 및 매니저들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불신감도 새로 생겼다는 것. 즉 토니 로메로 사장은 원칙을 앞세워 칼자루만 휘두를 뿐 내부 직원들을 감싸주고 보호해 줘야만 할 지도자로서의 덕목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언제든 떠날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매니저들에 대한 부하 직원들의 불신감도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 즉 부하 직원들에 대해 보호하고 리드할 매니저들이 사건 처리에 대해 방관만 하는 자세에 불신감이 높아졌다는 것.
한편 한국IBM은 이 사건을 계기로 협력사 정책을 전면 바꿨다. 즉 중소 규모의 협력사 주에서 대기업 위주의 총판 체제로 채널정책을 바꿨다.
그러나 그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할 수 없지만 중소 규모의 기존 협력사들은 IBM 기종 위주에서 멀티 벤더화를 추진하고 있다. 즉 IBM 제품만 공급하지 않고 타 경쟁사 제품도 공급할 뿐만 아니라 협력관계도 다변화하고 있다는 것.
한국IBM의 총판정책은 자금력이 좋은 대기업들을 협력사로 확보해 기존 중소 규모의 협력사들의 문제점, 즉 지급보증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는 한국IBM만의 채널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저가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영업정책 고수와 많은 매니저들의 퇴직은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어쨌든 한국IBM의 뇌물 파동 사건은 그 동안 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자존심과 자긍심, 자부심을 가졌던 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불명예를 안겨 주었다. 그들이 자존심을 회복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그 동안 한국적 상황에 맞춰 다소 융통성 있는 영업정책을 펼쳐 오던 한국IBM은 과거와 같은 영업행위는 못할 것이다. 즉 미 본사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상명하달식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행히 차기 사장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이휘성 부사장은 성실과 정직 그 자체라고 평가받고 있다. 즉 그는 미 본사의 정책에 크게 벗어난 행동을 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상황도 많이 고려하는 사려 깊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어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새로운 신뢰를 형성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주변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한편 이원조 법률고문은 법률사무소로, 이용식 상무는 외국인 생명보험사 홍보 책임자로 각각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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