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20여 년 전 일이다. 公社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모 공기업에 대형 IT관련 프로젝트가 떴다. 하드웨어 공급처는 이미 결정됐고, 소프트웨어를 개발, 납품할 사업자를 결정하는 입찰과정이 남았다. 그런데 이상한 입찰이 벌어질 것이라는 정보가 쉬쉬하는 가운데 흘러나왔다.

생무지 기자 시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데다가 맷집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터라 이 이상한 입찰 현장을 잠입, 취재했다. 입찰 참가업체가 3개사였는데 그 중 한 업체의 직원으로 위장하여 참여한 것이다.

풋내기 특유의 결기와 특종을 눈앞에 둔 달뜬 기대감이 뒤범벅이 된 채로 들어선 입찰현장. 그러나 입찰 과정은 내내 맥이 풀릴 정도로 별일이 없었다. 입찰은 신속하고 평온하게 착착 진행됐다. 어떠한 잡음도 일지 않았다. 재빨리 입찰참가자들을 일별해봤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도 하다못해 뾰루지만큼도 변한 기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싱겁게 끝난 입찰 장을 벗어난 후, 위장 취업시켜준 업체 상관에게 다그쳐 물었다. 빙그레 웃으며 그가 던져준 한마디 답변은 "가격입찰이 빠졌잖아요."였다. 그러고 보니 입찰은 가격항목은 빼고 기술 제안서만 주고받은 것으로 끝났었다. 처자식 딸린 중년에 맷집도 별로일 것 같은 그 상관의 답변은 그 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곧바로 납품업체가 결정됐다.

슬그머니 오기가 발동, 선정된 업체를 탐문해봤더니, 아뿔싸! 당대 최고위층 인척이 뒷돈을 대 설립한 소프트회사였다. 특혜였다. 그 정도 특혜는 '비일비재'라는 말로 치부해버리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후문은 더욱 가관이었다. 하드웨어 업체가 이미 소프트웨어까지 턴키로 납품하기로 한 프로젝트였다는 것. 소프트웨어 끼워팔기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으니, 특혜주기가 땅 짚고 헤엄치던 시절이었다.

정부 및 공공 프로젝트는 공개와 입찰방식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사업자 선정과정에는 늘 잡음이 뒤따라 나오곤 한다. 20여 년 전 일어났던 이 이상한 입찰 이야기는 단순과감했던 그 시절 특혜비리의 유형을 일러준다.

그렇다면 세월이 흘러 입찰 과정의 투명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좋아진 요즘은 어떨까? 말 그대로 많이 투명해졌다. 우리는 지금 격세지감의 경제민주화를 만끽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고 교묘한 선정과정이, 간혹 또는 줄이어, 아니 뭔가를 틈타 비집고 일어나는 독버섯처럼 요즘 나타나 신경을 거슬린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안팎이 바람 잘 날 없는데 정부 프로젝트에서 잡음이 나돈다니, 차라리 말문이 막힌다.

어떤 프로젝트는 선정 평가위원들이 매겨 논 점수를 합산하는 과정에서 합산을 잘못한 경우가 발생했다. 주무 부처는 말썽이 일어날 것이 걱정됐는지, 그럴만한 연유로 선정업체에 가산점을 부여했다는 말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 그런가 하면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와 공동으로 특허를 낸 교수가 평가위원으로 활동해서 말썽이 일고 있다.

아직 이 프로젝트들이 특혜와 관련됐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단순한 실수에 의해 벌어진 일로 합당한 사후조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합리적이고 철저한 공인 정신으로 프로젝트 입찰과정을 준비하고 일을 처리했다면 얼마든지 일어나지 않을 사안들이라는 점에서 비난의 시선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 나라 전체가 발버둥치는 21세기에 정부 공공 프로젝트에서 잡음이 일어나는 것은 이젠 정말 보기 딱하다. 그리고 지겹다. 이럴 때마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나쁜 사례들을 차례대로 떠올리게 되는 기자들의 심정은 더욱 언짢다. 무엇보다도 거센 비난 여론이 일어나도 시간이 흐르면 유야무야되는 세태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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