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국내기업의 CRM, 무엇이 문제인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CRM 경영을 수용하여 대규모의 시스템 투자와 CRM 팀이라는 조직을 갖추고, CRM의 이름아래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필자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국내기업과 컨설팅 프로젝트를 하기 시작했고, CRM에 관한 책 출간과 여러 세미나를 통해 국내기업에 CRM을 소개해왔다.
2002년 이후에는 국내 기업에서 일 하면서 많은 국내기업들의 CRM 활동을 직접 관찰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국내에서 CRM 경영이 성공했다는 얘기를 별반 들어보지 못했다. CRM 경영을 위해 전산 시스템 또는 IT솔루션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많은 인력을 투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의 CRM 경영은 왜 겉돌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몇 년간 국내 기업들의 CRM 활동을 돌아보면서 필자가 느끼는 것은 '국내기업의 CRM,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이 지면을 이용하여 국내기업이 추진해온 CRM 경영의 실태와 문제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국내에서 CRM 경영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개선을 위한 제언도 해 보고자 한다.

1. 국내기업 CRM 경영의 문제점들
(1) 국내기업의 제도적인 면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제도적인 면에서 걸림돌을 생각해 보자. 많은 국내기업의 경우 CRM을 담당하는 임원은 물론 심지어 CEO도 임기가 1년으로 되어있고, 이 기간의 실적 평가에 따라 연임이 결정 된다. 이러한 제도아래 CRM을 담당하는 책임자들은 짧은 기간 내에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압력을 느끼게 된다. CRM은 기본적으로 반복 학습을 통해 개선해 나가는 프로세스로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앞서 언급한 국내기업의 제도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고객과 함께 기업이 Win-Win할 수 있는 다양한 CRM 마케팅 활동을 통해 고객의 생애 전체에 걸친 장기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진정 CRM 경영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기업의 CRM 담당 책임자들은 구체적인 성과를 임기 내에 보여야 하기에 자연히 단기적 매출 증대 등의 외형을 키우는 것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들은 고객과 Win-win하는 CRM 솔루션을 신중히 만들어 실행하기 보다는, 단기적 성과를 위해 최대한 많은 마케팅 캠페인을 실행하여 외형적인 성과를 높이는데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마케팅 캠페인을 실행하다 보면 모든 캠페인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기에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반응율을 최대로 높여 외형을 키우기 위해 때로는 대규모의 고객 수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실행하기도 한다.
이런 대규모 캠페인의 경우, 많은 고객에게 적절한 오퍼(Offer)를 찾아 제공하기가 어렵고 동시에 캠페인 비용이 커지므로 기대하는 이익을 거두기가 무척 어렵다. 결국 CRM의 원리가 올바로 실현되기 어려운 제도아래서 국내기업의 CRM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CRM 담당자들의 짧은 임기 또는 단기적인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현행 제도는 CRM 경영의 성공을 어렵게 하는 하나의 걸림돌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2) 국내기업의 CRM 전문지식과 경험에 대하여
국내 CRM 경영이 아직 성공적인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국내기업들의 조직전체가 CRM에 대한 경험, 전문지식, 필요한 스킬(Skill)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 일 것이다. 국내기업의 CEO들은 CRM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또 CRM을 추진한 국내기업의 CEO들은 어떤 구체적인 목적과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을까? 혹시, 외국의 선진기업이 시작했으니까 혹은 경쟁사가 추진하니까 뒤 따라서 받아들이고 시작한 것은 아닐까?
기업의 경영에 있어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최고경영자인 CEO가 얼마나 알고 일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제품을 조립하듯 CRM 시스템을 갖추고 CRM팀을 중심으로 한 조직과 인력이 구비되었다고 해서 CRM 경영이 저절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국내기업의 경영진은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국내기업의 CEO 또는 경영진이 CRM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추진하지 못했다고 본다. 오히려 CRM에 대한 미흡한 이해와 막연한 기대가 CRM성과에 대한 실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내기업에서 CRM의 실행을 담당하는 임원이나 팀장 그리고 실무자들에게는 어떠한 이슈들이 발견되는가? 국내기업의 CRM 담당임원 이하 실무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CRM에 대한 구체적인 실제 경험과 Know-how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기업의 CRM 실무자들은 CRM 활동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접근 방법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프레임워크(Frame-work)를 만들어 체계적인 사고를 통해 솔루션을 도출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이러한 훈련과 노력이 미흡하여, 자신이 만들어낸 솔루션에는 자신이 없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선진기업에서 또는 다른 경쟁사에서 했던 것들을 찾는데 급급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국내기업의 실무자들은 이렇게 경험, 전문지식, 그리고 솔루션 찾는 훈련과 체계적인 사고에 대해 미흡한 부분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도와 학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했던 것 또는 현재 하고 있는 것을 결과에 상관없이 정당화하기 바쁜 실무자의 자세와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CRM 경영이 추구하는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국내기업이 외국사례를 통해 '어느 해외 선진기업에서 어떠한 것을 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설프게 흉내도 내보고 이것저것 해본 것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그들에게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거 해봤습니다. 그것도 해봤지요. 해봤는데 잘 안 되던데요'라는 반응이 국내기업 CRM팀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과연 제대로 해 본 것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렇게 잘 안되거나 실패 후에 다시 결과에 대해 분석해보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다음에는 잘 할 수 있는지 등의 해결책을 도출하고 반복 실행을 통한 개선을 이루는 진정 CRM경영이 추구하는 실행은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필자는 아직, 이러한 CRM 프로세스를 따라 실행하는 국내 기업을 직접 관찰해 보지도 못했고 간접적으로 듣지도 못했다. 이렇게 국내기업들이 CRM이 진정 추구하는 것과 역행하거나 CRM 프로세스에 따른 올바른 실행을 하지 못한다면, 과연 CRM의 성공이 가능할 수 있을까?
국내기업들이 CRM 경영을 실행하는데 또 하나의 문제점은 CRM 기획력(CRM Planning)이 약해 체계적으로 수립된 CRM 로드맵(CRM Roadmap)이 없어 균형적인 CRM 추진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CRM 경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CRM 로드맵을 수립해야 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확장하여 이에 따른 체계적인 실행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CRM을 실행하고 있는 국내기업들 중에서 실행을 인도하는 체계적인 CRM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 기업을 별로 보지 못했다. 이런 CRM 로드맵 없이 CRM을 추진한다는 것은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여 기획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CRM 경영을 통한 조직의 비전(Vision)은 무엇이며,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어떤 것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하에 어떤 CRM 솔루션이나 프로그램들을 실행할 것인지가 구체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실행 후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그것을 통해 사후관리나 개선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와 계획이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체화된 CRM 로드맵이 없다면 과연 CRM 경영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획단계에서 또는 준비단계에서 철저한 계획과 치밀한 실행 안을 만들어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때는 예상치 못한 많은 것들과 부딪히게 되고 실행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물며, 이러한 준비와 CRM 로드맵도 없이 실행이 앞서간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체계적인 CRM 로드맵의 부재는 여전히 국내기업의 CRM 경영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3) 국내기업의 CRM 측정체계에 대하여
요즈음 많은 국내기업들이 CRM경영 이름아래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신규 고객을 획득하는 고객 유치 활동이나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활동, 또는 고객 로열티를 높이려는 로열티 프로그램에 관련된 활동 등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들의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결과를 비교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석하여 개선사항을 밝혀내는데 필요한 CRM 측정체계는 얼마나 잘 만들어져 활용되고 있을까? CRM 경영아래에서뿐 아니라,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공감하는 원리중의 하나는 '측정될 수 없는 것은 관리될 수 없다'일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또는 총론적으로는 모두 고개를 끄떡이는 이 경영의 기본원리가 철저히 지켜져야 하는 CRM 경영아래서 국내기업들은 CRM 관련 활동의 성과 측정을 올바로 하고 있는 것일까? 실상 필자는 사전에 적절한 측정체계를 구축해 놓고 실행으로 옮기는 국내기업들의 CRM 활동들을 흔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국내기업의 대부분은 실행 결과를 제대로 측정하여 분석하고 개선을 위한 반복학습을 통해 성과를 내는 일이 잘 안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CRM 활동의 성과가 정확히 측정 되었다면, 올바로 관리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성공적인 성과가 많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기업들 가운데 실질적인 CRM 성공이 드문 현실을 볼 때 이 측정의 문제는 분명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4) 국내기업의 CRM 마케팅 캠페인에 대하여
CRM 경영의 대표적인 활동 중의 하나는 CRM 마케팅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CRM하면 많은 사람들은 마케팅 캠페인을 마음속에 떠 올리고, 마치 마케팅 캠페인이 CRM의 모든 것으로 잘 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실제로 필자가 경험한 미국기업들의 효과적인 CRM 마케팅 캠페인과는 달리, 국내기업들이 실행하는 CRM 마케팅 캠페인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캠페인 목표고객 선정, 캠페인 기획, 캠페인 오퍼(Offer)선정 등의 부분에서도 문제점이 있지만, 우선 지나치게 많은 마케팅 캠페인을 무차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대규모의 목표고객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실행하여 비용대비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주된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고객의 니즈(Needs)를 충족시켜 고객과의 관계가 강화되도록 실행되어야 하는 마케팅 캠페인이 이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마케팅 캠페인 실행결과가 목적에 부합하게 나왔는지, 즉 고객과의 관계가 실제로 강화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거의 모든 국내기업들이 캠페인 성과지표를 ROI로 사용하고 있지만, ROI는 고객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CRM지표가 되지 못한다. ROI는 공헌이익을 캠페인 비용으로 나눈 것을 백분율로 나타낸 것으로 이는 고객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아무런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ROI는 고객관계강화를 위한 캠페인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측정치(Metric)는 사실상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이렇게 마케팅 캠페인의 성과를 회사 이익의 형태인 ROI만으로 따지고 있다는 것은 국내기업들이 고객중심적인 사고로 전환하지 못한 채 아직도 회사중심적인 생각으로 부적절한 CRM 지표(CRM Metrics)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런 형태의 마케팅 캠페인이 계속 반복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객은 멀어지고 ROI는 점차 낮아지는 결과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CRM 경영이 추구하는 고객과 기업이 함께 Win-win하는 활동을 통해 고객관계를 강화하고 평생고객으로 유도해 가고자 하는 기본 목적에 부합되지 않아 결국 CRM은 실패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CRM 마케팅 캠페인의 문제점에 비추어, CRM의 이름아래 올바른 마케팅 캠페인이 실행되도록 다음 3가지를 제안해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먼저, CRM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할 때 CRM의 원리가 반영되어 고객과 기업이 함께 Win-win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ROI는 높아지더라도 Win-win결과가 되지 못해 고객관계가 강화되지 못한다면 지속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 그 다음은 제공하고자 하는 오퍼가 선정된 목표고객들의 니즈에 적절한 것이고 동시에 적절한 채널이 선택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캠페인 결과를 측정하여 분석할 때는 단순히 이익의 관점에서 ROI만 계산하여 평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ROI는 보완적인 지표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ROI를 계산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여 이를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과 고객과의 관계를 정의하고 이를 계량화하여 측정할 수 있는 Relationship Score같은 지표를 만들어, 장기적으로 진정 CRM경영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5) CRM을 위해 사용되는 데이터 마이닝에 대하여
CRM 경영을 위해 많이 활용되고 있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에 대한 문제점도 생각해보고자 한다. CRM 경영의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는 과거의 경영방식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많은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객에 대한 정보를 도출하고 이를 마케팅 활동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축적되어온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고객의 거래 패턴(Transaction Pattern)이나 경영의 법칙(Business Rule)을 새로이 발견하여 영업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컴퓨터와 관련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열리게 되었다. 이렇게 기업의 축적되어온 많은 거래데이터로부터 고객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찾아내는 지식 발견 프로세스(Process of Knowledge Discovery), 즉 데이터 마이닝이 CRM경영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왔다.
모집단(Population)에서 추출한 표본(Sample)집단을 분석하여 모집단에 대해 추론(Inference)하는 기존의 통계적 분석방법과는 달리 데이터 마이닝은 모집단 전체에 대한 데이터를 사용한다. 이렇게 데이터 마이닝은 모집단의 파라미터(Population Parameter)를 직접 구하여 사용하므로 샘플데이터에서 나올 수 있는 오차를 줄일 수 있고 모집단에 대한 추론과정도 없이 직접 모집단에 대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데이터 마이닝은 많은 관심을 얻게 되었고 실제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데이터 마이닝 툴(Data Mining Tool)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데이터 마이닝 툴을 제공하는 Vendor들이 데이터 마이닝에 대한 역할이나 효과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홍보했기에 기업은 데이터 마이닝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결국, 데이터 마이닝으로부터 얻는 혜택이 과장된 기대에 못 미치게 되자, 기업들의 데이터 마이닝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로서는 데이터 마이닝의 활용은 광범위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데이터 마이닝의 문제점은 발견된 패턴이나 규칙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발생되는지 또는 변수간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데이터 마이닝이 찾아낸 발견 중에서 많은 경우, 통제 가능한 변수(Controllable Variable)와 목적변수(Target Variable)사이의 인과관계에 기반을 둔 모델(Model)이나 알고리즘(Algorithm)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이렇게 되면, 어떠한 변수가 어떻게 목표변수에 영향을 주는지를 밝혀낼 수 없으며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정보(Actionable Information)를 도출하기가 어려워 활용 면에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데이터 마이닝이 찾아낸 패턴들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하는 블랙박스(Black Box)같은 모델, 예를 들어 신경망(Neural Network) 같은 모델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변수 사이의 알려진 관계를 감안하여 알고리즘을 선택하고 적용하기 보다는, 단순히 여러 알고리즘을 순차적으로 적용하고 오차의 규모에 따른 모델의 적합성(Goodness of Fit)만을 기준으로 규칙성을 찾으면 사후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래데이터가 늘어나고 축적되면 모집단의 데이터 셋(Data Set)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동일한 모델을 적용한다고 해도 드러나는 패턴이나 규칙성이 달라질 수 있기에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데이터 마이닝이 제시하는 패턴이나 비즈니스 룰(Business Rule)은 데이터 의존적으로 되어, 데이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기업이 수용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점들이 바로 데이터 마이닝의 한계가 되고, 이로 인해 데이터 마이닝은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국내기업의 조직 문화에 대하여
여기서 또 한 가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국내기업들의 조직 문화에 대한 변화(Organizational Change)부분이다. CRM 경영은 새로운 경영전략, 프로세스, 제도, 프로그램, 조직 역량과 스킬(Skill), 데이터와 분석을 위한 툴(Tool), 고객에 대한 사고방식(Mindset) 등 여러 면에서 기존의 경영방식과는 구별되는 경영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CRM 경영을 추진해나가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의 사고에 있어서의 변화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은 사고가 변하지 않으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그리고 행동에 있어서 변화가 없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없다.
그러므로 올바른 CRM 경영을 위해서는 조직원 모두가 CRM이 요구하는 고객중심적인 사고로 전환해야만 한다. 과거에 같은 상품중심적인 또는 기술 중심적인 사고와 경영 마인드(Business Mind)를 가지고는 절대로 CRM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다.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미국기업에서도 조직의 변화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이란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기업이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한 조직의 변화 또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변화를 통한 조직의 변화는 반드시 교육과 보상이 함께 제공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의 경영방식 하에서 중요시 되었던 것들과는 다른 것을 요구하는 CRM 경영이 정착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CEO나 최고 경영층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조직의 변화는 CEO의 의지와 부단한 추진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 CRM 경영의 성공을 위해 CEO는 조직원들에게 지향하는 목표를 비전(Vision)과 함께 명확히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교육과 보상체계를 갖추어 조직의 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CRM 경영을 도입한 수많은 국내기업에서 이러한 CEO의 역할을 충분히 해온 CEO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기에 국내기업의 CRM 성공은 이러한 CEO가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 국내기업의 CRM 시스템, 툴, 그리고 IT 솔루션
국내에서 CRM 경영의 도입기에 이미 겪어보았듯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서 어떠한 CRM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설정도 없이 시스템 구축이 선행되는 사례는 규모나 수에 있어서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종종 관찰되고 있다. 어느 대기업의 경우를 보면, CRM 시스템의 부분으로 캠페인 관리(Campaign Management)를 위한 툴(Tool)을 도입하는데 수십억 원을 투자했지만, 시장여건의 변화로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하고 다른 시스템과 통합된 적이 있었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Sears(www.sears.com)라는 유통회사의 경우에는 많은 비용을 지출하여 캠페인 관리 툴을 구입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실행하는 마케팅 캠페인을 관리하는데 꼭 필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간단한 캠페인관리 툴을 자체 내에서 개발하여 사용해왔다.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최소한의 소프트웨어 또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실행해 보고, 결과에 따라 또 필요에 따라 캠페인 관리 툴을 단계적으로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Sears는 국내기업들과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최근 국내 텔레콤 분야의 어느 대기업에서 새로이 와이브로(Wireless Broadband)가 출시됨에 따라 이에 관련된 데이터를 모으려고 그 동안 CRM을 위해 사용해온 기존의 데이터 시스템을 바꾸는데 수백억 원을 투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대규모로 새로운 데이터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했는지 또는 기존의 시스템을 활용하여 데이터 항목이나 데이터 테이블을 추가하는 것은 불가능했는지 궁금하다. 과연 이러한 막대한 투자로 구축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추가적으로 얻어지는 데이터를 가지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여 이익을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가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CRM 시스템, CRM 소프트웨어, CRM 툴(Tool) 또는 IT솔루션 등을 도입하기 전에, 그 것들을 사용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또 어떻게 그 투자를 회수할 것인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시스템 투자는 절대로 투자대비 성과를 낼 수 없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시스템투자가 꼭 필요할 때 또는 정당화될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선행적으로 필요한 작업을 완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CRM 경영의 핵심이 기술이나 시스템에 있지 않고,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강화시켜나가 평생고객을 만드는 고객관계 관리에 있는 것이다. 기술이나 시스템은 CRM 경영을 위해 필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지만, CRM의 핵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수적인 구성요소일 뿐이다. 이러한 CRM의 핵심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위한 로드맵(Roadmap)이 먼저 구축된 후에 그 로드맵의 실행을 위한 요건이 되는 것이 기술과 시스템이다. 따라서 CRM의 핵심 목표를 포함한 로드맵이 구축되기도 전에 기술적 투자나 시스템투자가 앞서 나간다면, 절대로 CRM 경영으로부터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CRM을 위한 IT 솔루션을 제공하는 벤더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이미 경험했듯이, 국내기업들의 CRM 수용은 시스템 중심적이었고 IT 주도적이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그릇된 도입으로 오히려 IT 솔루션 벤더들은 스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CRM 경영은 시스템이 필요하고, 데이터 분석 툴과 여러 CRM 활동을 관리하는 툴(Management Tool)을 요구한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그러한 IT 솔루션이나 툴을 맹목적으로 도입해서는 안되고 그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먼저 구체화되어야 한다. 어느 국내기업이 캠페인 관리 툴인 Siebel(www.siebel.com)시스템 도입을 추진하다가 중단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이와 같이, 시스템이나 IT 솔루션을 도입하기 전에 진정 그것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엄격히 따져보아 IT 솔루션이나 툴을 도입하는 순서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시스템이나 IT 솔루션을 제공하는 벤더들은 이제 하드웨어나 IT 관련 소프트웨어 제품을 단순히 파는 사업은 점차 더 어려워지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벤더들은 판매위주의 영업에서 벗어나, 그들이 제공하는 제품을 사용하여 이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을 함께 제시하는 새로운 차원의 영업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과거 필자는 세계적인 기업인 GE캐피탈의 한 임원이 했던 다음과 같은 고백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GE Capital spent millions of dollars in building the Siebel system for the entire enterprise. Nobody here at GE, however, has figured out how to make money out of the Siebel implementation."

이 고백에서 뚜렷이 볼 수 있듯이, IT 솔루션의 도입은 종착점이 아니고, 오히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CRM 활동을 위해 아무리 좋은 IT 솔루션이라 할지라도 이를 이용하여 돈을 벌 수 없거나 이익을 낼 수 없는 것이라면, 기업에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단순히 IT 솔루션이나 제품을 파는 정도로는 벤더로서 성장하기 어렵고, 그것을 이용하여 어떻게 돈을 벌고 이익을 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제안이 비즈니스 모델 형태로 필히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국내기업들의 살아있는 CRM을 위한 제언들
앞 서 살펴본 여러 가지 국내기업의 CRM 경영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제언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CRM 경영을 시작할 때는 실행 가능한 목표 또는 결과를 먼저 분명히 세우도록 해야 한다. CRM 경영의 성공은 설정했던 목표 달성여부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CRM 활동을 시작할 때는 구체적이고 가능하면 정량적인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 설정된 목표를 무엇을 어떻게 해서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화된 CRM 로드맵(Roadmap) 또는 CRM 마케팅 플랜을 반드시 마련하고 시작해야 한다.

둘째, CRM의 원리(principles)를 명확히 세우고 지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CRM의 원리 중 하나는 고객중심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상 고객중심적인 사고란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다. 무의식중에 회사중심적인 사고로 전환되지 않도록 CRM의 원리를 명확히 정립하고 이에 충실해야 고객과 기업이 함께 Win-win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CRM 경영에서는 분명한 것 만하고 작게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CRM 활동이란 단기적인 것이 아니고, 반복적이며 장기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불확실한 가운데 많은 것을 크게 시도하지 말고, 확실히 고객과 기업이 함께 Win-win하면서 이익이 수반되는 것부터 작게 시작하면서 점진적으로 확장시켜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CRM 활동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실행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수긍하듯이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 CRM 경영에서 측정 체계 없는 실행이란 개선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실행이 되게 마련이다. 너무나도 기본적인 CRM의 원리인데 너무도 쉽게 간과되기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다섯째, CRM 활동을 위해 시스템/시스템기능/IT 솔루션은 필요하지만 꼭 필요할 때, 가능하면 나중에 도입하도록 하여 시스템 또는 IT 솔루션의 구축이 앞서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 시스템이 또는 IT 솔루션이 필요한지를 구체화해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IT 솔루션 구축과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을 사전에 명확히 만들어, 과거에 경험한 낭비와 손실을 재현하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CRM 경영이 요구하는 변화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와 프로세스를 사전에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CRM은 과거의 경영방식과 다르고, 변화를 요구한다. 달라진 변화들이 올바로 실행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변화를 관리하여야 CRM 성공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앞서 논의한 국내기업에서 관찰된 CRM 경영의 문제점들 외에 다른 것들도 성공적인 CRM에 걸림돌로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러나 CRM 활동에 대해 많은 관찰과 고민을 해본 필자로서는 여기서 지적된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국내기업들의 CRM 경영은 겉돌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국내기업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먼저 인식하고 개선해나가지 않으면서, CRM 경영이 기업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거나 CRM에 대해 성급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좋은 물건을 잘 못 사용하고도 물건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 최정환 / jw@jcmiinc.com
JC 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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