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23차 ‘영림원 CEO 포럼’에서 강연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가 5일 열린 23차 '영림원 CEO 포럼'에서 '최근 환경변화와 기업의 대응'을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1> 현 상황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100여 년 전에는 중국에 의지하다가 1900년대 초부터는 일본,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거의 미국에 얽매어 살아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여러 나라로 시야를 넓혔지만 최근 들어 다시 중국으로 그 지향점이 바뀌고 있다.

샌드위치 상황 해결에 남은 시간은 10년

최근 10년간의 변화는 더욱 숨가쁘다. 인터넷, 외환위기, 9.11 테러, 월드컵, 지진해일, 북핵, FTA, 기후 변화 등은 지난 10년 동안 벌어진 주요 사건들이다. 이 가운데 기후 변화는 향후 유망 사업의 변화를 예고한다. 한반도의 기후가 앞으로 아열대로 변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리조트' 등 기후에 맞는 사업이 미래 유망 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성장이 주춤하고 있는 것도 현 상황의 문제점이다. 최근 몇 년간 정치 민주화 등 사회가 성숙하면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이 개방 충격에 흔들리면서 위기를 맞이했지만 그 위기를 너무 쉽게 극복한 탓인지 혁신이 중단되고 자만에 빠진 것도 현 상황의 또 다른 문제점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 부상, 북한체제의 변화, 고령화 등이 그 예다. 특히 거대 중국의 팽창은 동북공정 프로젝트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미국에 의존해온 평화는 안보의식의 해이라는 문제를 고착화 시켰다.

요즘 혹자들은 우리나라 산업이나 기업의 상황에 대해 한 마디로 '샌드위치'로 표현한다. 앞으로 10년안에 이러한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면 산업 또는 기업이 '거덜'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10년 정도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상황을 타개할 것인가. 무엇보다 한번 해보자는 사람들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말이다. 그것도 하루 빨리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2008년은 우리나라에게 중요한 한해이다. 늦어도 2008년부터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그룹이 현재 주력사업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부의 적과 싸움이 가장 하수

현 상황의 문제점은 국가전략과 경영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과 사회 전반적인 투명성 확대로 인해 정치와 언론은 과거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고 있으며, 리더의 역량을 검증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사안을 앞세워 공세를 펼치는 현실은 국가리더십의 발휘에 애로가 되고 있다. 또 '큰 사고'를 하는 지도자와 지식인이 부재한 탓인지 미래 비전이나 전략 등 큰 문제를 외면한 채 작은 사안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수준을 보면 GDP 10위, 수출 8위, 외환 4위, 글로벌 기업 9위 등 경제력 분야와 반도체, 휴대폰, 인터넷, 조선, 철강, 자동차, 특허 출원 등 산업ㆍ기술 분야에서는 앞서있지만 삶의 질은 평균 수명 48위, 행복지수 102위라는 통계에서 나타나듯 매우 뒤처져 있다.

국가경쟁력 종합 순위에서 9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이를 유지, 발전하려면 앞에서 말한 외부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2008년은 한국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해이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100년, 건국 60년, 민주화 20년, 새정부 출범, 경제적으로는 산업화 45년, 첨단 산업 25년, 디지털 혁명 15년, 사회적으로는 개방 25년, 외환위기 10년, FTA 원년이 되는 해가 바로 2008년이다.

거대한 환경 변화에 둔감해서는 예기치 않은 큰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어느 농부가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고속철도의 속도를 모르고 예전처럼 태연하게 철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은 적절한 예다. 또 점진적인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도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죽을 수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의 타깃을 정확히 정해야 한다. 가장 하수는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며, 그 다음 하수는 외부의 적과 경쟁해 이기려는 것이다. 큰 사고의 틀에서 원대한 비전을 세우고 나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략이다.

<2> 환경변화 전망

최근 환경 변화의 원동력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현재는 특히 디지털 기술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기술은 시장 발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자원이나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물이나 공기 등 환경이 유망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최근 탈레반의 납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도 시장이나 국가, 자원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1>정세ㆍ정치

우리나라는 현재 자주국방의 역량을 시험하는 시기에 처해있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자주국방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첨단 무기 시스템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를 확보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이 시점에서 로마가 번영했던 요인과 멸망했던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한다. 로마의 번영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귀족이 직접 전쟁에 나섰던 상무(尙武) 정신을 들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조선시대가 막을 내린 것은 양반들이 군대에 가지 않은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의 번영은 이러한 상무정신에서 볼 수 있듯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또 현재 남북관계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앞으로 10년 안에 한반도의 가장 큰 리스크일 것이다. 관건은 북핵 해결과 평화 체제로 전환이다. 이렇게 되려면 북한의 개혁 및 개방 의지와 외부 경제 지원의 규모 등이 중요하다. 독일은 통일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동독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 왔다. 한반도에서도 남쪽의 시스템을 북쪽에 이식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12월 대선과 새정부 출범도 우리나라 환경의 변화를 전망하는데 주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12월 대선의 핵심적인 변수는 이념과 경제일 것이다. 여기에다 지역, 세대, 정책, 도덕성, 그리고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새 정부는 실용주의와 점진적인 개혁을 선택할 것이며, 2008년 4월 국회의원 선거는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정당간의 정책 공약을 보면 그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는 코드가 아닌 역량이 인사 정책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2>경제ㆍ산업

산업 기반 및 경쟁력의 약화로 인해 앞으로 경기의 조기 활성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해 4%대의 성장에 그쳤는데 체감경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양극화 문제는 성장률을 더욱 높여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유동성 과잉은 주식이나 부동산 및 미술품의 버블 현상을 낳고 있다. 그렇지만 서브 프라임 사태와 주택 대출 규제, 종부세 부과 등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적인 투자의 부진과 규제 지속, 그리고 기업가 정신의 약화도 현재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경제 및 산업의 문제점이다.

IT와 전통적인 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초 주력 업종인 제조업의 구조조정 이후 반도체 등 IT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IT가 부진의 늪에 빠지고 대신 조선, 기계 등 전통 산업이 활황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 발전을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대 중국 수출 비중이 1990년 0.9%에서 2006년에는 21%로 높아진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중국 시장의 진출 확대는 섬유나 신발 등 한계 산업의 구조조정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의 부활과 중국의 추격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 나라에 낀 '샌드위치'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엔저 및 경기 호조를 바탕으로 R&D와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 시장에서 매년 큰 폭으로 그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3>환경변화 평가

2007년 하반기 이후 시나리오는 크게 세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단기 조정 후 회복, △즉시 회복, △장기 침체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단기 조정 후 회복이다. 구조적인 모순을 해소함으로써 장기 성장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앞에서 말했듯이 삼성이 주력사의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망에 따른 것이다. 2008년 우리나라의 경기가 올해 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려면 이 시나리오 대로 가야한다.

<3>기업과 CEO의 대응

먼저 미래 트렌드에 부합하는 유망사업에 도전해야 한다. 본업의 경쟁력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다각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 유망 사업 기회로는 바이오 제약, 의료서비스, 자산관리, 관광, 도시 인프라 구축(건설, 엔지니어링, 장비), 에너지 플랜트, 물 산업, 신ㆍ재생 에너지, 투자 은행 등을 꼽을 수 있다.

CEO, 창조성 체질화하고 혁신 지속해야

기업의 CEO는 또 창조성을 체질화하고 혁신을 지속해야 한다. 창조성은 장인정신과 매니아 정신이 결합되어야만 발휘된다. 사업의 경영 방식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지속하며, 파트너십을 확대해 네트워크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도 시도해야 한다.

인재 양성과 좋은 직장으로 정착하는 것도 앞으로 기업이나 CEO가 해야 할 과제이다. 핵심 인력을 양성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며, 다인종ㆍ다문화를 수용해야할 것이다.

CEO의 리더십은 큰 방향을 제시하고, 변화를 자극할 때 제대로 발휘되는 것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이다)라는 글귀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고 한다. CEO는 이 시대의 義人이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CEO가 열심히 하고 사심이 없어야 구성원이 추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성쇠의 메커니즘은 성장->침식->공명->쇠퇴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기업이 지속성장 하려면 기업의 시스템 역량과 경영 성과가 선 순환하는 구조를 갖춰야한다. 기업의 침식은 성장의 타성 때문에 환경의 적합성을 상실할 때 발생하며, 공명은 내부 침식 요인과 외부 위협 요인이 상호 작용해 일어난다. 쇠퇴는 공명 충격이 시스템의 흡수 조절 능력을 넘어서면 닥치게 된다.

사고와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기업이 지속 성장하는데 중요한 열쇠이다. 위기는 사고, 부실, 일상 활동의 불신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데 위기에 도덕적으로 잘못 대응하면 불신이 증폭하게 된다. 이를테면 엔론의 분식 회계나 미쓰비시차의 불량 부품 은폐는 도덕성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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