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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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독도가 문제되고 있다.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일이 문제가 되고 있다. 뒤집어 본다. 우리가 일본 땅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땅이었다고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했다고 치자. 일본왕의 시조는 우리 민족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걸 주장하며 일본 땅은 우리 땅이라고 우겨댄다면? 이런 꼴을 지금 독도에서 본다. 어이가 없다. 문제가 될 게 하나 없어 보이는데 우린 우려를 해야 한다.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염려하고 경제력도 우려되고... 다시 뒤집어본다. 우리가 미국 정도로 강대국이라면 저리 까불어댈 수나 있을까? 하지만 일본만을 욕해댈 게 아니라 더 차분하게-우리 정부의 며칠 전처럼 그렇다고 침묵만 하며 쉬쉬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대응해야 한다. 차분한 대응? 이 따위 말은 누구나 하던데 나도 하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본다.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자기 땅에 편입시켰다.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선 당시 한국 정부에서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으니 이를 인정한 게 아니냐 한다. 이를 보도하는 TV뉴스를 보니 이에 대해 우리가 그 땐 일본에 강점된 상태라 어떤 우리 주장도 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보도는 내가 봐도 억지요 제3자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너희가 힘이 없었으니 당연히 일본에게 복속되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빌미를 주고 있었다. 1905년 때가 아니라 지금 2005년 우리 TV의 보도가 이러고 있다는 말이다. 땅이란 게 그렇질 않은가. 더구나 미국을 포함, 유럽 강대국 몇 나라가 2천년 전의 땅에서 2천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물러나게 하고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을 봐라. 이런 나라들이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데 우린 그땐 힘이 없어서라고 주장을 지금 편다면 씨도 먹히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럼 어떻게? 답을 최근 다음 글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그대로 인용한다.
「일본인이 울릉도 이외에 독도가 있음을 알았던 사실을 말해주는 기록이 처음 나타난 것은 1667년에 쓰인 『은주시청합기』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은주에서 배를 타고 서북쪽으로 1박2일 동안을 가면 송도가 있고 또 하루를 가면 죽도가 있다. 이 두 섬은 무인도이며 고려 땅에서 이 섬을 보는 것은 일본의 운주에서 은주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건지, 즉 서북쪽 땅은 이 은주에서 끝난다."고 했다. 이 무렵 동해 쪽에 사는 일본인들이 고기잡이나 벌목을 위해 울릉도에 가기 시작하면서 독도를 알게 된 것이다. (중략) 17세기 경에 와서 일본인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이 때문에 조선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일종의 영토분쟁이 생겼다. 그러나 1696년 숙종 22년에 조선 정부와 일본 정부는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했고 그 부속도서인 독도도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정부는 일본인의 울릉도 출입을 금지함으로써 일본인들도 더 이상 독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은 일본인들이 쓴 기록에 남아 있다.」
또 서양인들에게 독도가 처음 알려진 건 1849년 프랑스 고래잡이배 '리앙쿠르'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 배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섬이라고 불려졌단다.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때는 그때부터다. 일본 어부들의 요구로 일본정부는 독도를 자기 땅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영토 편입의 작업을 시작한다.
우리는 당시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일본에 의해 온 나라의 땅을 그들의 전쟁터로 양보하고 있었고 고종을 포함, 조선 정부의 관료들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추잡한 꼴을 보이고 있었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1905년 2월 22일자로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 시마네현이 조례 제정하듯 일방적으로 그들의 식으로 했던 똑같은 방식이었다. 이 날이 바로 그들의 '다께시마의 날'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보다 5년 앞선 1900년에 칙령 제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도에 편입하고 울릉군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다시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일본이 독도를 영토편입한 뒤인 1905년에 나카이는 죽도어렵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회사 자료를 보면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한국영토라고 여겨지므로 (독도를 빌리는 문제는) 장차 통감부가 처리해야 할 일이라 생각되어 도쿄에 가서 획책했는데 일본정부의 수산국장이 (중략) 의문을 제시했고 수로부장의 단정에 의해 이 섬이 전혀 무소속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글의 항간을 잘 읽어 내려가 보면 지금 일본 정부가 하는 짓하고 너무나 같다. 지방정부에서 하는 일이니 모른다고 하는 일본정부의 무대응과 똑같다. 여기서 일본의 일방적 영토편입을 볼 수가 있다. 이를 따져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방정부에서 영토편입을 한 일본보다 이미 5년 앞서 칙령으로 독도의 존재를 정부 차원에서 확실히 해둔 반면 일본은 일개 지방의 그것도 일방적으로 자기 맘대로 남의 땅을 편입해버린 꼴이 되었다. 이는 며칠 전 우리의 마산시가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조례를 통해 영토 편입한 것과 다를 게 없다. 마산시의 대마도 편입은 오히려 역사적 근거가 있었지만 일본의 독도 편입은 그렇지 않다. 임의대로 우리 정부와 상의 없이 주인 없는 땅이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으로 영토편입을 했다. 이 허술한 점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그들의 주장을 따짐으로서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가를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우린 당당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주변 강대국 눈치만 보던 때에 그나마 이런 칙령을 내놨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이 칙령의 구체적 내용은 글에 명시돼 있지 않았지만 지금 정부가 이를 찾아 일본과 그리고 국제사회에 내놔야 한다. 일본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들은 1905년 영토편입을 주장하고 있질 않은가. 이를 깰 수 있는 자료를 이 글이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은 강만길 교수가 쓴 '독도는 일본 자료로서도 일본 땅이 아니다'에서 인용했다. 이 글은 「우리 역사 속 왜」(서해문집 발행)중에 들어있다.
이 글을 보면서 프랑스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구나 싶다. 태평양의 그 많은 섬들을 봐라. 자기네가 처음 발견했다고 하고 무력으로 장악하면 자기네 땅이 돼버리질 않았는가. 그러나 태평양의 섬들은 자기네의 역사 기록이 없어 무력에 무릎을 꿇고 그냥 넘겨주고 말았다. 나는 여기서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배운다. 만약 이런 기록이라도 우리가 남겨놓지 않았다면 지금 우린 할 말이 없질 않은가. 무력이 힘인 세상에서 말이다. 나는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저리 우겨대는 일본을 보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힘을 키워야 겠구나 부터 생각한다. 우리가 힘이 있고 원자폭탄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이때를 과거의 치욕을 그들에게 되갚아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 원자폭탄을 일본 땅에 뿌려버리면 될 텐데 하는 감정이 먼저 섞인 울화를 어찌 할 수가 없다.
우리 역사엔 우리 서민들의 기록이 적다. 맨 왕권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모략과 중상의 역사뿐이다. 그럴듯한 정복의 역사는 고구려 외엔 없다. 이나마 중국이 자기 역사 속에 넣으려고 한다. 독도사수대들의 활약상이 곧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이 또한 기록이다. 반갑다.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끔찍한 심정으로 이번 독도문제로 배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힘을 키우자. 과거 그랬듯이 우리 정부 관리들에게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일이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들은 오히려 우리의 적이었다. 지금도 안 그러라는 법 없으니 우리 스스로 명심해야 한다. 지금도 봐라. 마산시가 '대마도의 날'을 조례로 제정하자 우리 중앙정부는 하루도 기다려주지 않고 철회를 요구했다. 또 삼일절 대통령 담화문에 대한 일본의 평가를 들어보면 고이즈미나 일본 언론들은 노 대통령이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국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국내용, 그러니까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가 폄하했다. 우선 이렇게 밖에 대응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해야겠지만 한편 이런 소릴 듣도록 행동한 우리 정부에도 비판을 동시에 가해야 한다. 그 날 노 대통령이 삼일절 담화문을 발표한 바로 뒤 우리 국민 모두 이에 찬성을 했고 앞으론 말만이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며 정부에 구체적 실천방안 제시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 날 오후,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뭐라 했던가. 원칙적인 발언일 뿐 일본 정부에 대한 보상 등 구체적 실천 방안은 아직 없다고 했다. 바로 이 점을 일본 정부나 일본 총리는 간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요 우리 정부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디 이게 지금뿐인가. 1999년 일본과 체결한 신어업협정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정부의 양보로 인해 지금 독도 영유권에 대해 우리가 불리해졌다지 않은가. 일본이 이 약점을 파고들며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있질 않는가. 하지만 정권을 이어받은 현 정권도 이 어업협정에 대해 침묵만 하고 있을 뿐이다. 어업과 국토문제는 별개라면서. 별개인가? 별개라면 저 일본이 저리 주장하고 나설 수나 있을까. 일본은 지방정부(시마네현)마저 어부들의 요구에 응해 독도를 자기 땅에 넣으려고 이미 백년 전부터 수작을 부려왔다. 우린 어땠나? 어부의 요구를 진심으로 들어준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말이다. 오히려 일본 편에 서서 협정을 체결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부가 우리의 정부였고 지금의 정부란 말이다. 며칠 전 TV토론회에 나온 방청객 중 독도수호대의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들어보자.
"우리 정부가 독도를 위해 뭘 해왔느냐. 오히려 민간인인 울릉도민이 사제를 다 털어 독도지키기를 이미 몇 십년 전부터 해왔다. 지금 독도 문제가 커지자 한달 전만해도 우리 경찰청장의 방문을 막았던 정부였고 1995년까지 거주하고 있던 독도주민을 내쫓은 게 우리 정부지 않는가. 이러더니 문화재청장인가 하는 자가 헬리콥터나 타고 와서 훌쩍 둘러보고 그 동안 막았던 독도여행을 허가한다느니 호들갑을 떨고 있다. 우리 땅을 우리가 가보지 못하게 한 건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정부다. 우리 정부를 믿을 수가 없으니 정부는 그냥 가만 있는 게 났다. 독도는 우리가 지키겠다."
이랬던 정부다. 문화재청장이 나설 때가 아니다. 기껏 독도를 문화재 수준으로 폄하하려 하는가. 여행이니 하는 수준의 정부 발상이 이래서 미덥질 않다. 일본이 말하고 있는 국내용 정치적 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쇼는 분위기에 따라 또 쉽사리 바뀌기 마련이다. 믿을 건 우리 국민뿐이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힘은 역시 서민들에게서 나왔고 서민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왕과 그 밑의 소수 지배층들이 다 망쳐놓은 우리의 역사를 그나마 복원시켜 놓은 건 바로 우리 서민들이었다. 이젠 절대 권력을 쥔 자들의 눈치 보기의 치졸함과 자기들만의 이익에 또 망가질 우리나라를 또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젠 우리의 주권은 외부에서가 아니라 우리 내부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찾아 지켜야 한다. 독도영유권문제는 일본과의 싸움이자 동시에 안일한 우리 정부와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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