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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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우리 궁궐의 지붕을 올려다보면 지붕 양쪽 언덕에 용마루가 있다. 하늘과 맞닿는 이 용마루는 위에서부터 용두, 그리고 줄을 이어 동물의 형상을 한 조각품들인 잡상이 나란히 내리앉아 있고 지붕 끝에 치미라 불리는 장식재로 마감돼 있다.
잡상은 장엄과 위엄을 의미하는 상징적 장식으로 용, 봉황, 사자, 기린, 천마, 해마, 고기, 해지, 원숭이 등 신성한 동물들을 건물의 머리 위에 얹어 놓음으로서 건물을 수호하게 한다. 이 잡상들은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 동물들이 대부분인데 잡상의 맨 위에 삼장법사가, 그 아래로 원숭이인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을 뜻하는 사자상 등이 놓여져 있다.
이를 알고 우리 궁궐을 보고 있노라면 건물 하나를 짓는데도 의미를 부여한 우리 조상의 여유와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용마루 양끝의 치미도 마찬가지다. 치는 바다에서 사는 짐승으로 목재건물을 화재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건물 위에 앉혀놓았다. 이것만이 아니다. 경회루 연못엔 불을 잡아먹는다는 짐승인 신화적 동물, 불가사리를 청동으로 만들어 넣어뒀었다.
그러나, 궁금했고 찝찝했다. 왜 하필 지붕의 장식기와까지 중국의 것을 따라야만 했을까. 특히 잡상은 건물 안에 묵거나 일을 보는 이의 지위의 격에 따라 세워지는 그 숫자가 달랐다 한다. 그 수는 격이 높을수록 많았다. 경복궁 등 우리 궁궐들의 그 잡상 숫자는 많아야 여덟이다. 대개 일곱 개 정도가 얹어져 있었다.
그나마 일반인들의 집 지붕에선 거의 볼 수도 없다. 왜 여덟일까? 아홉은 아무나 쓸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단다.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영적인 수가 '9'였다. 이 아홉은 우리나라에선 쓸 수가 없었고 중국의 황제만이 쓸 수가 있었다 한다. 이래서 중국의 왕궁 지붕에도 잡상이 있는데 그 숫자가 우리 궁궐보다 많은 아홉 개란다.
오래 전 대학 때 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현판 교체로 논란이 있던 광화문에도 잡상들이 놓여져 있다. 세어보니 일곱 개였던 것 같다. 용두와 잡상을 정확히 구분할 수가 없는 내 얄팍한 지식에 그 숫자가 일곱인지 여덟인지 애매했다. 어떻든 아홉은 아니다.
광화문 현판 교체는 다음으로 미뤘다고 들었다. 바꿔야 한다고 떠들어대던 문화재청은 교체 저의를 의심 받고 문제가 시끄럽게 불거지자 약삭스러운 개새끼마냥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이 역시 정치적 눈치보기와 다름없다. 이로 인해 역사 바로 세우기가 또 뒤로 미뤄졌다. 뒤로 미룬다고 하니 시끄럽게 떠들던 양편 모두 침묵으로 일관이다.
이렇게 은근슬쩍 역사의 정의는 또 묻혀져 가고 있다. 광화문 현판만이 아니다. 엄연한 우리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 속에 넣으려는 일을 중국이 정부차원에서 꾸준히 진행해 왔다는 뉴스가 좀 나오고 국내에서도 좀 떠들썩한 듯 싶더니 이 또한 흐지부지다.
이러던 중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겨대기 시작했고 일본 눈치만 보던 우리 정부도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까지 겹치면서 강경 자세로 선회한 듯하다. 더욱이 편을 갈라 이기적 싸움만 일삼던 우리 정치판이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우리 스스로는 안 되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적기가 지금이 아닌가 한다. 우리 스스로는 늘 편을 갈라 싸움판만 크게 벌려 놓고 역시 그 싸움판은 어떤 결론 없이 항상 대충대충 넘기고 말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의 몰상식한 행동에 우리는 오랜만에 싸움을 그치고 한 몸이 된 듯 보인다. 쉬쉬 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던, 쉬쉬외교를 일삼던 외교통상부 장관까지 독도 문제는 한일관계를 넘어선 상위개념이라며 일본에 대해 강경하게 돌아섰다.
벌써 잊혀져간 광화문 현판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의도는 여기에 있다. 이 기회에 우리 내부를 정리하고 정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보자. 일본이 우리 기준으로나 상식적으로 봐도 왜 저렇게 몰상식으로 나올 수가 있을까. 지난 삼일절에 노 대통령이 과거 일제강점 당시의 피해에 대해 일본정부의 보상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었다. 바로 이 날,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뭐라 하며 반응했던가. 노 대통령이 국내문제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을 거라며 무반응 또는 무관심한 척 넘기지 않았던가. 노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말이 있어서일 거다.
우리 땅 제주도에서 두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일본총리에게 우리 대통령은 임기 중 과거사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직접 들은, 그것도 한국 땅에서 마주 보고 들은 얘길 믿고 있을 것이다. 그걸 노 대통령의 진심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이런 중 국내에서 친일파의 잔재와 친일청산파가 야당, 여당으로 갈리어 싸움질만 하고 있는데다가 친일파 후손인 자가 당 대표로 있는 야당의 공세에 밀려 후퇴해야 하는 과거 청산의 한국내 정치적 문제를 일본 총리가 감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러니 고이즈미는 방송 마이크 앞에서 공개적으로 노 대통령의 삼일절 발언에 대해 '노 대통령이 국내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이' 라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국내의 상황 모면을 위한 부득불한 정치적 쇼라는 뉘앙스를 흘렸던 게 아니던가. 일본이 대통령이나 야당 지도자, 결국 우릴 우습게 봤다는 말이 된다. 누굴 탓해야 하나. 남의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선 일본보다도 우리의 역사를 정리하거나 우리 역사에 대해 국민의 뜻을 맞추지 않고는 일본의 작금의 몰염치, 몰상식 내지는 제 2의 침략의도를 분쇄할 수가 없다.
100년 전 우리 땅에서 일어난 일과 100년 후 지금 뭐가 다른가. 또 우리 내부의 합의 없이 싸움질만 하다가 또 다시 100년 지난 지금 합방치욕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지식인들의 잇따른 발언들을 보라. 한승조, 지만원, 그리고 그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상식 이하의 정신대 발언만이겠는가. 한 씨는 교단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위 교수는 서울대에서 버젓이 강의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학생들이 그 교수에게서 뭘 배울까. 반짝 항의가 있었지만 항의는 역시 멈춘 지 오래다. 다름 아닌 서울대에서다. 다음 우리 사회, 역사를 맡게 될 인재들이 모인 곳이질 않은가. 미래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일본이 보고 뭐라 생각하겠는가. 우릴 얕잡아 보는 그 생각이 일본을 이리 무식하게 나올 수 있게 하는 거란 말이다.
이래서 나는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다. 우선 눈치 보고 뒷날로 미뤄놨던 광화문 현판 교체문제와 함께 이 기회에 우리의 자주성을 찾아야 한다. 이 글 초두에 쓴 우리 궁궐 지붕의 잡상부터 없애든가 잡상의 숫자를 자주적인 숫자로 맞춰놔야 한다. 잡상의 숫자를 줄임으로서 스스로 중국에 복속을 했던 조선의 왕들의 사대부터 이젠 우리 후손들이 제대로 바꿔놔야 한다. 말만 자주를 부르짖을 게 아니다.
그리고 이참에 일본으로 비틀어진 광화문의 위치도 제대로 잡아줘야 한다. 광화문의 제 위치는 단지 건축물의 자리 옮기기가 아니다. 역사 바로 세워두기다. 그리고 이왕 재건축해야 할 광화문이라면 멋드러지게 좀 지어야 한다. 허여멀건 돌 위의 목재건축물이 늘 눈에 거슬렸었다. 시멘트로 만들어졌다는 말도 있다. 건물 하나라도 천년 이어질 수 있도록 제대로 세워두자. 돈이 없다고? 웃기지 마라. 충청도로 수도를 옮길 돈에 비하면 이 정돈 껌 값도 못 된다.
새로 지어야 할 수도건설도 중요하지만 지금 국내외적으로 더 필요로 하는 건 우리의 과거를 바로 세워놓는 일이 더 훨씬 중요하다. 지금 일본이 저리 날뛰고 있을 때, 우리 땅의 일본잔재를 정리하자는데 누가 시비를 걸 수 있을까. 걸어온다면 자충수가 될 게 분명하다. 이젠 분위기로 봐서 몇 달 전처럼 이 땅의 일제잔재가 일제청산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느니 하며 어찌하진 못할 것이다. 일제잔재의 내부에서부터 분열이 생겨날 게 분명하다.
자기네들도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자기들도 살아나려면 내부의 적을 몰아내야 할 테니까. 이래서 지금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이다.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온 일제 등 과거청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하지만, 또 한심스럽게도 개혁하자는 과거사법이 영 신통치가 않다. 여야가 합심해 이를 통과시켰단다. 아이고.
정치적 눈치보기로 2009년으로, 역사 뒤로 미뤄놨던 광화문 현판교체 건부터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지혜는 분열된 우리를 보고 까불어대는 일본을 겁주는 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정부의 강경 선언이니 시민단체의 거리 성토로는 눈 깜짝하지 않을 게 일본이다. 왜? 그들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꿰차고 있다. '저러다가 말겠지' 라는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 놓고는 어느 외부의 적 또는 마찰에 당당할 수가 없다. 불과 한 달 전에도 우린 듣지 않았던가. 미국의 일개 상원의원이 하는 말을.
"한국이 미국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적과 친구를 분명히 하라." 미국은 한 민족인 남과 북을 이렇게 이간질해대고 있다. '도움을 받으려면?' 우린 자존심도 없나? 여기서 어떤 실용주의로 맞서야 할까?
단지 옛 건축물(광화문) 하나 뜯어고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상대(일본이나 미국)가 느끼게 되는 위기감은 입만 떠들어대는 말만인 행동과는 전혀 다른 공포감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두 사람의 싸움과 같다. 한판 붙기 전 웃통을 벗어던지고 '너 가만 안 놔두겠다'고 입만 설쳐대는 자는 바로 한방에 간다. 하지만 아무 말 않고 고개를 깔고 제 주먹을 주무르며 상대의 공격에 대비하는 자는 늘 싸움에서 이겼다. 똑같다. 또 한번 호들갑만 떨다 그만 두게 되면 적에게 또 하나의 허점만 노출시킬 뿐이다. 우리 이제 입만으로 떠들어대는 호들갑 정치나 구호에서 벗어나자.
묵묵히 이제라도 광화문을 헐자. 아직도 권력으로 득세하고 있는 일제의 잔재를 이 땅에서 쓸어내자. 마침, 문화재청이 광화문을 헐고 새로 짓는다고 한다. 제 위치에 세우고 처음처럼 한자로 쓴 현판으로 교체하겠단다. 이에 대한 이의의 소리가 별로 들리질 않는다. 국민 모두가 정부의 눈 가리고 아옹에 넘어가고 있다.
옷만 새로 갈아입는다고 사람이 바뀌나? 같다. 명패만 갈면 뭐 하나? '중국집이요, 그것도 중국에 복속된 중국집이요' 라고 우리 스스로 머릴 조아린다. 일제만의 청산일 뿐, 이 나라에 팽배해 있는 사대주의는 또 언제나 청산하려 하는가. 이 기회에 다하자. 광화문을 허문다 하니, 허물 때 함께, 일제만이 아닌 사대주의도 허물자. 역시 독재청산이 한글 무시가 되어서도 안 된다. 독재는 청산하고 중국은 숭상한다? 어불성설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단지 책 한권으로 입김이 쌔진 현 문화재청장의 눈치를 보고 그의 의도에 따르거나, 침묵하며 그의 저의를 용인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다. 문화재청의 청산 구호가 일제나 독재에만 국한돼 보여 한심하기 그지없다.
문화재라는 우리의 보물이 한갓 정치 또는 정치적 인간의 장난질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문화를 어디 정치의 비속물로 삼으려 하는가. 문화를 어디 정치적 입지수단으로 삼으려 하는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현 문화재청의 좁디좁은 소견머리에 또 국고만 축낼 게 분명해 걱정도 앞선다. 쇼에만 관심이 있어서다. 쇼 좀 그만 하자. 문화재청이 시청률을 우선으로 삼는 TV 방송국은 아니지 않는가.
문화재 전문가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새로 세워지는 광화문의 잡상을 없애든가 잡상의 숫자로부터 자주적인 숫자를 얹도록 하자. 그리고 한자가 아닌 한글 현판을 광화문에 달자. 이 또한 우리의 자주를 다는 일이다.

글·사진 / 오동명(momsal2000@hanmail.net)
미술관순회버스를 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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