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 발전을 위한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은 최근 최고책임자를 새로 맞이했다. 전임 고현진 원장에 이어 이번에도 민간기업 출신이다. 그것도 국내 최고의 IT 기업 가운데 하나인 LG CNS 부사장을 역임한 유영민 씨이다.

전임 고현진 원장이 주로 글로벌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반면 신임 유영민 원장은 순수 국내 기업에서만 뼈대를 키웠다. 전임 고 원장은 주로 소프트웨어 시장 확산 및 수요 창출에 역점을 둔 정책을 펼쳐왔다. 노무현 대통령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강력한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 정책에 따른 고 원장의 소프트웨어 수요 창출 노력은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성과에 대한 평가를 논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일지 모르지만 노력한 만큼 실질적인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관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수요 창출 정책은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보다 오히려 외국 기업들만 성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마치 고속도로를 건설해 놓으니까 현대나 대우 등의 국산 자동차가 달리는 게 아니라 벤츠나 BMW 같은 외국산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는 꼴이다. KIPA를 중심으로 정부 공공기관에서 공개 소프트웨어 도입을 강력히 권장하고 있지만 현업에서는 '부담스럽다'거나 아니면 '억지춘향'으로 마저 못해 구매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국산 소프트웨어의 '품질'과 '기술지원 서비스' 능력 때문이다. 품질만 좋고, 사후 기술지원 서비스만 잘 된다면 정부가 강력히 권장을 하지 않더라도 사용자들이 알아서 먼저 구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젠 소프트웨어 품질과 기술지원 서비스 향상에 앞장서야만 한다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국산 소프트웨어들의 품질은 왜 떨어지는가?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국산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개발 환경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솔루션을 개발할 때 약 100여명 이상이 투입된다고 한다. 즉 약 10여명은 설계를 하고, 30여명은 프로그램을 짜고, 50명 이상이 테스트를 하고, 20여명이 표준화하거나 문서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따라서 개발에 연간 약 2,500만 달러(250억 원)를 투자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떤가? 굳이 기업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나라 최고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의 실상만 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ETRI가 일부 국내 대표적인 리눅스 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부요(Booyo)의 경우 개발인력이 겨우 30여명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 인원으로 설계, 프로그램화, 테스트, 표준화 등 거의 모든 과정을 전천후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대다수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실상도 이와 비슷하거나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품질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험과 검증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를 할 수 있는 시설이나 실험 센터 같은 게 거의 없다. 테스트 센터(Test Center) 같은 기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국산 소프트웨어 사용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품질 향상을 통한 수요 창출'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정책을 추진하고 구현시키는 유영민 원장을 비롯해 소장, 단장 등의 핵심 인력들의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어야만 할 것이다. 신임 유영민 원장은 27년여 동안 국내 최고의 민간 기업에서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실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것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IT 강국 달성에 한 발 더 다가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