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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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안해!”
지하철에서였다. 저만치서 칠순쯤 돼 보이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앉은 자들에게 구걸하듯 손을 내밀며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내 껌을 내 앞에 내민다. 2천원을 주머니에서 급히 꺼내 "괜찮습니다"며 껌은 받질 않았다. 할머니가 굳이 껌 두 통을 손에 쥐어주며 하는 말은 "내가 불안해"였다. 시중가 5백 원짜리 껌 한 통에 두 배인 천원을 받아가긴 하지만 내 선입관과는 달리 무작정 구걸은 아니었다. 그 말 한마디 남겨놓고 옆 자리로 또 손을 내미는 할머니를 줄곧 쳐다보게 되었다. 껌을 사주는 이를 보지 못했다. 저리 팔리지 않는데 적지만 도움이라 여기고 껌 대신 돈을 받아도 될 만도 하겠다 싶은데 굳이 손을 저어 사양해야 했을까? 할머니가 거스름돈 대신 내게 주고 간 "내가 불안해!"라는 말 한마디를 진종일 귀에서 벗어내질 못했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만났다. 인왕산 자락의 옛 집을 올라가는 길가엔 텃밭이 있었다. 상추를 따고 있는 팔순의 할머니와 잠시 얘기를 나눈 뒤 상추를 받아 2천원을 지불하려는데 할머니는 내게 "나더러 칼 들고 강도질을 하라 하지"라며 역시 다른 봉투를 만들어 상추를 그득 담아주었었다. 그 날도 오늘처럼 나는 내 얼굴에서 내내 웃음을 떠나보내질 않았었다. 아니 절로 웃음이 나왔더랬다.
늦게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뉴스를 들어보기 위해 TV를 켜려다 그만 멈췄다. 신문이 그랬듯이 TV 역시 정보는 커녕 이마엔 짜증, 그리고 입엔 욕만 늘게 하니 오늘 할머니 덕에 웃을 수 있던 시간을 단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TV 대신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불안해!" "나더러 칼 들고 강도질을 하라 하지."
고작 천원 더 받는 일에 할머니들은 공히 겁을 먹고 있었다. 천 원을 더 받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했었다. 천 원이면 아이들 먹는 과자 한 봉이요 버스 한번 타면 다 써버릴 적은 돈이건만...
불현듯 웃던 얼굴이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나는 우스갯소설인 「돈키호테」의 이 글귀 하나를 가슴에다 밑줄 긋고 살아왔었다. 인용하면, "하느님은 신중한 자의 악한 의도는 두둔하지 않으시지만, 단순 무식한 자의 선한 의도에는 늘 도움의 손을 내미신다."
세르반테스나 돈키호테의 희망이지만 나의 소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망은 언제나 허망했다.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믿어보려는 것은 소망이 팽개쳐지는 순간 방금 전 내가 손가락질을 해대던 자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신념도 아니요 의지도 아니요 할머니들처럼 그저 겁을 집어먹는 소심에 불과할 뿐이다. 이래서 잠시지만 할머니로 나는 웃을 수 있었던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비호 받는 '신중한 자들의 악한 의도'는 이젠 과거처럼 극소수 가진 자만의 전유 향유물이 아니다. 이들의 뻔뻔함이 당당함으로 치장되고 처벌은 커녕 정당한 대접으로 치환이 되어지는 비틀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아이들까지)은 '악한 의도를 가진 잠재적 신중한 자들'로, 이들은 이러면서 하시라도 '악한 의도의 신중한 자'에 편입, 또는 편승할 준비를 하고 산다.
"털어 먼지 안 나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 해."
아마 할머니들은 이게 겁이 나고 두려웠지 않았을까? 이래서 천원에도 지레 겁을 먹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덧붙여 내가 듣는 소린 또 있다. 너 혼자 잘난 척 하지마라며 하는 진심어린 충고.
"'물이 너무 깨끗해도 물고기가 안 사는 법"
고개를 저으면 진심어린 충고는 진중한 협박으로 옮겨온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나?
언제부터 이런 속담들이 우리네 가슴을 옥조여 왔을까? 누구의 의도에 의해 '단순 무식한 자'를 더욱 죄의식 속에 빠져들게 하고 말았나? 이런 류의 속담은 '신중한 자의 악한 의도'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또 하나의 악한 의도인 줄 알면서도 나 자신 타협을 한다.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 이러자고.
이래서 침묵을 하게 되고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허나 이럴수록 더 공허해지면 그저 다시 꺼내드는 「돈키호테」. 그 두꺼운 책을 지루하게 읽다보면 문득 오늘 만난 돈키호테가 떠올려진다. 할머니였다.
"내가 불안해!" "나더러 칼 들고 강도질을 하라 하지."
돈키호테를 보진 못했지만 할머니의 행색도 글에서처럼 그와 비슷하다. 다시 깔깔깔 절로 웃게 된다. 돈키호테가 그랬을 것 같은 웃음으로. 이렇게 웃을 때 마음은 전혀 공허하지가 않다. 「돈키호테」를 굳이 꺼내 읽을 이유가 없다. 길에서 돈키호테를 자주 만나고 싶다.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돈키호테를 만나면 가슴으로 화들짝 웃을 수 있으니까! 잔망스럽다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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