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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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변하지 않았다
채근담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의 책이라면 최근담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적은 번잡스런 글입니다. 채근담은 교과서 같은 가르침이지만, 최근담은 현실에서 얻어낸 터득입니다.
중국엔 채근담이 있고 한국엔 최근담이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미국 땅에서 살다간 두 사람은 태생도 비슷하고 삶도 비슷하고 죽음까지 같다. 까만 얼굴로 태어난 그들은 까맣다는 이유 하나로 그 삶이 정해진다. 그들만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 또한 똑같은 이유로 그들처럼 조금 미리 살다가 갔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하는 지향은 같으나 이뤄내고자 하는 방법은 달랐다.
하얀 얼굴에 저항하면서 오히려 이들은 방법의 차이로 합치지 못하고 반목으로 등을 진다. 같은 적인 하얀 얼굴을 앞에 두고서도 적은 제켜두고 자기네들끼리 손가락질하며 싸우는 모순을 보였다.
한 사람은 이랬다. 하얀 얼굴들하고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어차피 합쳐질 수 없는 하얀 얼굴과 까만 얼굴, 둘 사이를 한데 얼버무려 뭉쳐 놓고 잘 되어갈 거라고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했다. 미국 땅 일부라도 까만 얼굴만의 동떨어진 세계를 주장하고 나왔다. 까만 얼굴을 사랑하라고 했다.
한 사람은 달랐다. 인간은 평등하기에 하얀 얼굴과 까만 얼굴이 한데 어우러져 살기를 희망했다. 까만 손과 하얀 손이 마주 잡고 위대한 미국 땅에 함께 살게 될 세상을 꿈꿨다. 하얀 얼굴들에 타협의 손짓을 보냈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면서 까만 얼굴 모두에게 하얀 얼굴에게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꿈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들은 3년을 사이에 두고 결국 암살을 당하고 만다. 이들 나이 고작 마흔이요 서른아홉이었다. 그 뒤 미국 땅에선 이들이 희망하던 흑백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 아님 흑백 갈등이 없는 세계로 바꿔져 갔는가.
부시 대통령은 국무장관 자리에 연거푸 흑인 한 명을 앞세워 흑인의 상당수 표를 얻어냈다. 아카데미 이래 처음으로 아카데미 주연상에 흑인배우가 수상했다 하여 세상이 달라지긴 했다고 한다. 정말 바뀌었을까. 이 정도면 전에 비해 큰 발전이 아니겠느냐 하며 사회의 점증적 발전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허리케인이 몰고 간 미시시피 강변의 뉴올리언스 사태를 지켜 본 이방인, 제 3자의 눈에는 결코 바뀌지 않은 미국 땅에서의 흑인차별의 엄연한 현실이 보였다. 한 명의 부르주아 흑인을 장관에 앉혀 놓은 부시의 제스처가 얼마나 가증스런 정치적 쇼인지 아수라장이 된 미시시피 강변과 약탈 장면으로 이어진 TV 카메라에 그대로 노정되었다.
말콤 X와 루터 킹의 흑인 인권운동의 영향으로 흑인의 출세 등 그나마 지금과 같은 흑인 인권신장을 낳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고개가 설레설레 돌아간다. 백인 사회에 진입한 듯한 흑인 몇 명이 아니라 흑인 다수의 삶에 눈을 붙여놓고 미국 땅을 보면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미국은 여전히 하얀 얼굴들의 땅일 뿐이다. 국무장관이라는 콩가루 콩고물에, 아카데미 주연상이라는 지렁이 미끼에 말콤 X나 루터 킹과 같은 흑인 인권운동은 감히 미국 땅에서 발을 들이기가 힘들어졌다. 여전한 백인우월 우선주의국가, 선도적 인권방임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최고권력층의 머리 속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백 년 전과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 땅은 어떤가. 삼성 이건희 정치로비 사건, 또는 홍석현 중앙일보 게이트사건, 소위 X 파일 사건에 대한 검찰의 최종발표를 듣고 있자니 불현듯 말콤 X와 루터 킹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졌다. 소감이자 결론은, 결코 바뀌지 않은 사회! 아니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은 세상!
그래. 민주 또는 평화대통령(40년을 넘게 이 땅의 민주주의 정착에 헌신했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과 노동자인권대통령(노동자 인권을 앞세워 정치를 시작했으니), 두 명의 대통령을 국민이 거푸 뽑아줘 놓고도 이 땅의 민주는 오히려 더 묘연하고 더욱이 노동자 권리는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통령이 된 뒤 그들은 모두 여느 기득권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이며 선출해준 많은 국민을 실망시키고 만민을 조롱했다.
이 두 대통령의 변절의 결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콤 X와 루터 킹 이후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이뤄낸 것 같은 민주화나 개혁의 껍데기에 휩싸이고 가려져 진정한 민주화나 실질적 개혁의 담론 또는 요구조차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통령을 두 명이나 앉혔건만 무슨 또 민주화요 개혁이냐'라는 사회적 방심 또는 방조만 남겼을 뿐이다. 두 대통령은 영원할 것 같은 이 땅 기득권의 콩고물이요 미끼였고 소망하던 국민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단 말인가.
미국 땅에서 그렇듯이 이 땅을 좌지우지하는 최고 권력층은 한 두 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한다고 철떡 같이 믿었건만 역사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믿음의 배반으로 내 스스로에게 조롱 섞인 웃음을 던져야만 한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믿음을 그래도 믿고 단지 이를 수정한다면, 발전하되 단지 발전의 시기가 늘어지고 늦추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자조적 소망으로 자위해야 하는 건지...
7~8년 전의 일이라 생각이 나질 않는다는 홍석현 중앙일보 전 회장의 뻔뻔함이 칼날 시퍼렇게 서 있다는 똑똑한(?) 검찰 수뇌부를 농락해도 전혀 어색하게 봐서는 안 되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니... 이 따위 파렴치 집단을 우리 사회의 영원한 최고 권력으로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모셔야(?) 한다는 말인가.

『김삿갓 동행 유랑』은 연재 사이사이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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