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업계 현실 반영 못한 '중기 판로지원법 시행령 개정에 애꿎은 중기업만 피해 입어

[아이티데일리]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 촉진하겠다고 만든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법’ 이 오히려 소프트웨어 중기업에게 위법을 저지르게 하는 악법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법으로 인해 공공기관이 발주한 1억 원 미만의 물품 납품 및 용역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중기업이 별도로 소기업을 설립하는 가 하면 소기업을 통해 수주한 공공기관 납품 사업을 다시 중기업에게 재하청을 주어 소위 ‘통과세’만 받는 형태로 운영하는 전문기업까지도 등장하는 등 공공기관 납품시장을 혼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8일 관련 기관 및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개정된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법(중기 판로지원법)’ 시행령에는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한 1억원 미만의 물품 및 용역 입찰에 근로자 50인 미만의 소기업이나 소상공인만 참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최근 공공기관이 발주한 1억원 미만 물품 및 용역 사업 입찰에 참여하려다가 참여 제한 조건에 걸려 발만 동동 구르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등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A 공공기관은 최근 6천만원 규모의 물품 납품 건을 발주하면서 ‘중기 판로지원법’을 고려, 중소기업 공공구매 종합정보 사이트 상 ‘중·소기업·소상공인 및 장애인기업 확인요령’에 따라 발급된 소기업·소상공인 확인서를 소지한 자로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했다.

이 때문에 A 기관이 요구하는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는 대다수 중기업의 경우 참여를 할 수 없었고 유일한 소기업으로 분류된 B 기업만 참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시근로자 수에 연구소 인력을 뺀다고?

사실 B 기업은 전체 정직원이 90명에 이르는 중기업이다. 하지만 지난 7월 1일 시행된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상시근로자수 산정에 기업부설연구소 인력이 제외되면서 B기업은 연구소 인력을 제외한 상시근로자수가 19명이어서 소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B 기업 관계자는 “원래부터 개발직은 연구소 인력으로 배치했다"며 법을 악용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소기업 인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상시근로자 수가 85명으로 계상되어 중기업으로 인정 받았지만 올해부터 시행령이 바뀌면서 연구소 인력을 별도 분리하게 되면서 연구소 인력이 상시근로자 수로 계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일용근로자 ▲3개월 이내 기간 근로자 ▲기업부설연구소 및 연구개발전담부서 연구전담요원 ▲1개월 동안 60시간 미만 소정근로자는 상시근로자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SW업계는 '중소기업 판로지원법' 시행령과 '중소기업기본법'시행령 개정으로 B기업처럼 자사의 인력을 기업부설연구소 인력으로 배치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사례가 많아 졌다.

SW업체 K사 대표는 “'중기 판로지원법' 시행령 개정으로 이제 1억원 미만 공공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돼 매출에 큰 손해를 미치게 됐다”며, “사실 회사 직원의 대다수가 SW 개발 인력이어서 연구 인력으로 볼 수 있는만큼 인원의 대부분을 연구소 인력으로 돌리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기 판로지원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공기관 물품 및 용역 사업 수주 기회를 잃은 중기업이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을 활용, 고육책으로 소기업으로 회귀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통과세’ 받는 소기업 탄생할 것

이 뿐만 아니라 법의 허점을 노려 공공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중기업을 대상으로 일명 ‘통과세’만 받고 대신 물품을 납품해주는 소기업을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다.

통과세만 노린 변칙 기업들은 기술이나 인력을 갖추지 않고도 50인 미만의 소기업으로 등록해 공공시장 물품 및 용역 입찰 참여 요건을 갖춰 공공기관 발주 사업을 수주하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업으로 하청을 주는 구조로 법의 허점을 노린다는 게 관련 업계의 주장이다.

이같은 변칙기업들이 공공 용역시장에서 판을 친다면, 사업을 수주받기 위해 저가 입찰이 성행하고 통과세를 내다보니 재하청 중기업의 경영악화는 물론 저가제품 납품으로 인한 사업의 부실화도 초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결국 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개정한 법이 SW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해 엉뚱하게 중기업의 설 자리를 뺏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창업이후 경쟁력을 갖춰 중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규모를 키워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야할 SW기업들이 단순한 논리의 법 조문 변경에 영향을 받아 되레 소기업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이 빈 틈을 노려 이를 악용하려는 기업들까지 생길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SW산업 육성을 담당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런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부 관계자는 “중기 판로지원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일단 관련된 법 등 사실 파악이 필요한 것 같다”고만 말을 아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SW산업을 비롯한 IT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든 미래부가 SW와 관련 된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현재 미래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중기 판로지원법’과 ‘중소기업기본법’ 시행 전에 나서서 SW업계의 입장을 대변했어야 했다”고 꼬집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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