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금지법 위반을 둘러싸고 1년 반 이상을 끌어온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동영상 재생 소프트웨어 전문 업체인 리얼네트웍스의 법적 분쟁이 지난주 합의로 소송을 끝냈다.
이들 두 회사의 법적 분쟁은 판결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비슷한 소송을 벌이고 있는 관련 업체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초미의 관심 사안이었다. 따라서 이번 합의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사와의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각종 소송들도 합의를 통해 해결해 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쨌든 이들 양사가 합의한 주요 내용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리얼네트웍스에 현금 4억 6000만 달러를 포함한 총 7억 6,100만 달러(약 8000억 원)를 지급하고, 그 대가로 독점금지법 소송 철회와 함께 디지털 음악과 MSN의 검색 사업 부분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급하는 돈 가운데 약 3억 100만 달러는 1년 반 동안 리얼네트웍스의 온라인 음악 서비스인 ‘랩소디’와 게임 서비스 사업의 판촉활동을 위한 사용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리얼네트웍스는 MS가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불공정 거래, 일명 ‘끼워 팔기’로 산업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맹비난해왔다. 또한 리얼네트웍스는 MS를 압박하고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독점 규제 분위기가 강한 유럽 EU에 MS를 제소했고, 작년 10월에는 별 연고도 없는 국내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MS를 제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략적이고 지능적인 반(反) MS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오던 리얼네트웍스사가 태도를 180도로 전격 바꿔 절친한 협력자로 변신한 데 대해 다소 놀라움을 주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즉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게 기업들이 추구하는 비즈니스의 논리라는 것이다.
IT 관련 글로벌 기업들의 소송을 보면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로 죽일 듯이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시점에서 ‘언제 그랬느냐’라는 듯이 순간 합의를 한 후 절친한 관계로 변한다. 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온갖 전략을 구사하다가도 적당한 시점에서 타협을 하고, 시장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작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MS의 합의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MS 제품을 쓰는 것은 마약을 하는 것과 같다’라는 식의 독설을 퍼붓던 썬은 작년 4월 모든 반독점 소송을 취하하고 MS와 제휴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썬은 이 과정에서 2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챙겼다. 독점 소송이라면 지긋지긋한 MS 입장에서는 최대한 조기에 독점소송을 청산하고 이미지 개선에 나서기를 원했고, 경영 여건이 좋지 못했던 썬은 풍부한 현금을 보유하게 돼 서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됐던 것.
제휴를 발표한 당일 양사의 주가는 큰 폭으로 올라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썬은 이후 MS를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스토리지텍 인수 등으로 기업 가치를 크게 향상시키는 결실을 거뒀다.
외국 기업들은 절대 ‘이판사판’이라는 경우처럼 타협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막나가는 경우가 드물고 원리와 명분보다는 실리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풍토는 전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국내 기업들은 일단 소송에 돌입하게 되면 어떻게든 승리를 목표로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타협과 양보보다는 경쟁사의 완전 항복을 요구한다.
음반업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P2P 업체와 음반단체와의 충돌이 그렇고, 대형 SI 업체와 중소 SW 기업들과의 다툼 역시 별 반 차이가 없다.
국내 정서는 명분과 실리 중 명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짙다. 상처뿐인 승리라도 일단 이기고 보자는 막무가내 식으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린 법이고,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파악해 끝까지 치닫는 결단보다는 상호 조정을 통한 합의가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 잡을 때가 아닐까? <이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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