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과 IT. 어디가 더 첨단 분야일까?라고 묻는다면 거의 대다수는 IT를 지목할 것이다.
흔히 건설은 속칭 '노가다'로 지칭되며, 세련된 경영이나 관리와는 거리가 먼 우격다짐이 통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일부 혹자들은 '부실'이라는 단어까지 떠올리며 굉장히 전근대적이거나 낙후된 업종이라는 이미지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IT는 굉장히 세련되고 샤프하며, 최첨단만을 추구하고, 국민과 국가를 먹여 살릴 미래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때문인지 IBM이나 HP, 삼성전자 등은 취업대상자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IT는 이제 국가경쟁력까지 좌우할 만큼 중요한 영역으로 인정받아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까지도 한다.
건설과 IT는 묘하게도 구축(Implementation)이라는 공통된 공정을 갖고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됐느냐, 각종 칩과 프로그램으로 됐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구축에 있어서 일정 준수 및 각종 관리 능력은 어디가 더 나을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IT가 당연히 더 나을 것으로 판단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최근 ITIL 이슈와 함께 부각되고 있는 프로젝트 & 포트폴리오 관리(PPM, Project & Portfolio Management)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건설 부문이 10년 이상 IT를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PPM의 국내 도입 사례를 살펴봐도 건설 부분이 IT를 거의 일방적으로(9배 가량) 앞서고 있다. 이는 PPM 전문업체로 20여년 이상 명성을 쌓아온 프리마베라의 그간 프로젝트 분석결과다.
노동 집약적(?)인 성격의 건설업과 지식산업의 결정체인 IT의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IT가 최소한 일정을 준수하고 향후 프로젝트에 대해 적절한 위기를 분산하는 능력은 다른 어느 업종보다 턱없이 부족하고 낙후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내 IT 시장은 프로젝트 관리와 관련해서는 기초적인 스프레드시트나 각종 프로젝트 관리(PM) 툴이 범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위기다.
관련 업계는 IT 포트폴리오 관리를 통해 위험을 예측하고 분산시켜 궁극적으로는 이윤의 극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확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국내 시장이 이를 수용할만한 인식의 확산과 문화 조성이 덜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우리나라의 PPM 도입이 부족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빨리빨리'라는 한국병이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될 수 있다. IT 업계에서는 빅뱅 방식의 시스템 구축으로 나타난다. 빅뱅 방식은 일명 믿을만한 업체(주로 1~2위 업체)에 통째로 맡겨 한꺼번에 교체하자는 것이다. 획기적인 변화 수용 및 일정준수에서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프로세스 변경이 불가피한 ERP 등은 빅뱅 방식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명 '차세대'로 지칭되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한방에 통째로 바꾸는' 빅뱅 방식을 띠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부실시공이 완공일자를 억지로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기간을 단축할 때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위험이 잘 이해된다. 국내 건설에서 일어났던 많은 사고가 IT라고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은행 차세대 프로젝트 등을 비롯해 각종 프로젝트를 조금씩 나눠서 접근하는 시도들이 출현하고 있다. 시스템 구축 완료를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천천히 고려하면서 차근차근 진행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매우 바람직한 변화라 생각된다.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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