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결과는 당초 예상대로 유찰로 끝났다. 지난해 정부가 추진했던 전자정부 프로젝트들을 비롯해 각 부처가 추진하고 있는 다른 일부 프로젝트들도 유찰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유찰 사태에 뾰족한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고, SI업체들도 수주하고도 손해나는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특히 SI 업체들은 재입찰이 또 다시 발표되더라도 가격을 높이거나 프로젝트 규모를 조정하지 않는 한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 프로젝트가 또 다른 유찰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높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부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유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그 동안 곪아 왔던 상처가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정부나 기업 어느 한 쪽만이 아닌 모두에게 잘 못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SI업체들은 지난 수 년 동안 정부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쌓고자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덤핑으로 수주한 사례가 많았다. 1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60∼70억 또는 절반 이하의 가격, 심지어는 1원이나 100원에 덤핑으로 입찰하는 사례도 발생한 바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의 덤핑 입찰 제안에 정부 부처는 '예산을 삭감해도 프로젝트가 가능하다'는 잘못된 관행에 젖어 들었고, 급기야는 예산을 삭감당하기까지 했다.
또한 정부 부처의 프로젝트 추진 담당자들은 그 동안 프로젝트를 추진해 오면서 기업들의 제안 가격에 너무 거품이 많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거품을 뺀 가격을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SI 업체들은 이제 와서 더 이상 과거의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한 저가의 프로젝트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다소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손해 보는 장사는 그만'이라는 게 대기업 SI업체들의 입장인데, 그것은 그들의 자업자득이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최저가 입찰제에 있다. 객관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평가 기준을 통해 덤핑경쟁을 배제시킬 수 있는 입찰 방안을 통해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공존하는, 즉 어떻게 하면 산업이 성장 발전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입찰을 유도하는 건전한 경쟁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이 같은 결과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관계 전문가들은 따라서 어느 한 쪽이 아닌 정부와 SI업계 모두가 반성을 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어쨌든 정부는 합리적인 프로젝트 예상가격을 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산은 100억 원인데 실제 프로젝트 규모를 보면 200억 원이라고 했을 때 추가경정예산을 받기 어렵다면 프로젝트 규모 자체를 조절해야 한다.
좀 더 현실적인 프로젝트 예산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정보전략계획(ISP)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상세 설계가 나오고 개발 비용, 소프트웨어 비용, 하드웨어 비용 등을 산정해야 한다.
참고로 그 동안 유찰된 경험이 있는 프로젝트들은 다음과 같다. 전파감시고도화사업은 401억 원이 투입돼 2008년까지 진행되는 것으로 정보통신부 산하 중앙전파관리소가 발주했으나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가 없어 유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삼성SDS, LG CNS, SK C&C가 중앙전파관리소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이들 빅3 업체가 담합했냐는 의혹을 살 정도였다.
이 사업의 예산이 401억 원으로 적지 않은 규모이지만 이 가운데 5억 원의 전파감시계측장비 70대 가격이 포함돼 예산대로 한다면 350억 원을 제외한 51억 원으로 2008년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이밖에 기상청의 기상정보DB구축(130억 원), 행정장치부의 정보화마을 4차 조성(105억 원), 행정정보 공동활용 및 DB표준화(676억 원) 가운데 개별 프로젝트들 등이 최근 유찰됐다. 지난해 삼성SDS가 수주한 한미 육·해·공 3군 합동지휘통제체계(Korean Joint Command & Control System) 시범 사업(45억 원)도 한 차례 유찰된 바 있다.
<박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