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통신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파감시고도화사업(약 401억 원 규모)이 세 번째 유찰됐다. 세 번씩이나 유찰 된 사례는 지극히 드문 일이어서 추진 당국은 물론 입찰에 관심을 갖고 있던 대기업 SI업체(LG CNS, 삼성SDS, 포스데이타)들 역시 입찰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당초 예상대로 유찰로 끝났다. 지난해 정부가 추진했던 전자정부 프로젝트들을 비롯해 각 부처가 추진하고 있는 다른 일부 프로젝트들도 유찰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유찰 사태에 뾰족한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고, SI업체들도 수주하고도 손해나는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특히 SI 업체들은 재입찰이 또 다시 발표되더라도 가격을 높이거나 프로젝트 규모를 조정하지 않는 한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 프로젝트가 또 다른 유찰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높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부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유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그 동안 곪아 왔던 상처가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정부나 기업 어느 한 쪽만이 아닌 모두에게 잘 못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SI업체들은 지난 수 년 동안 정부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쌓고자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덤핑으로 수주한 사례가 많았다. 1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60∼70억 또는 절반 이하의 가격, 심지어는 1원이나 100원에 덤핑으로 입찰하는 사례도 발생한 바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의 덤핑 입찰 제안에 정부 부처는 '예산을 삭감해도 프로젝트가 가능하다'는 잘못된 관행에 젖어 들었고, 급기야는 예산을 삭감당하기까지 했다.
또한 정부 부처의 프로젝트 추진 담당자들은 그 동안 프로젝트를 추진해 오면서 기업들의 제안 가격에 너무 거품이 많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거품을 뺀 가격을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SI 업체들은 이제 와서 더 이상 과거의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한 저가의 프로젝트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다소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손해 보는 장사는 그만'이라는 게 대기업 SI업체들의 입장인데, 그것은 그들의 자업자득이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최저가 입찰제에 있다. 객관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평가 기준을 통해 덤핑경쟁을 배제시킬 수 있는 입찰 방안을 통해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공존하는, 즉 어떻게 하면 산업이 성장 발전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입찰을 유도하는 건전한 경쟁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이 같은 결과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관계 전문가들은 따라서 어느 한 쪽이 아닌 정부와 SI업계 모두가 반성을 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어쨌든 정부는 합리적인 프로젝트 예상가격을 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산은 100억 원인데 실제 프로젝트 규모를 보면 200억 원이라고 했을 때 추가경정예산을 받기 어렵다면 프로젝트 규모 자체를 조절해야 한다.
좀 더 현실적인 프로젝트 예산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정보전략계획(ISP)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상세 설계가 나오고 개발 비용, 소프트웨어 비용, 하드웨어 비용 등을 산정해야 한다.
참고로 그 동안 유찰된 경험이 있는 프로젝트들은 다음과 같다. 전파감시고도화사업은 401억 원이 투입돼 2008년까지 진행되는 것으로 정보통신부 산하 중앙전파관리소가 발주했으나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가 없어 유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삼성SDS, LG CNS, SK C&C가 중앙전파관리소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이들 빅3 업체가 담합했냐는 의혹을 살 정도였다.
이 사업의 예산이 401억 원으로 적지 않은 규모이지만 이 가운데 5억 원의 전파감시계측장비 70대 가격이 포함돼 예산대로 한다면 350억 원을 제외한 51억 원으로 2008년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이밖에 기상청의 기상정보DB구축(130억 원), 행정장치부의 정보화마을 4차 조성(105억 원), 행정정보 공동활용 및 DB표준화(676억 원) 가운데 개별 프로젝트들 등이 최근 유찰됐다. 지난해 삼성SDS가 수주한 한미 육·해·공 3군 합동지휘통제체계(Korean Joint Command & Control System) 시범 사업(45억 원)도 한 차례 유찰된 바 있다.
<박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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