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보안 투자와 보안 감독· 관리가 대형사고 또 부를 수도

현대캐피탈, 농협 등 올해들어 잇따라 발생한 보안 사고를 계기로 금융권에서는 보안강화 열기가 뜨겁다. 기존보다 한층 엄격해진 금감원의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고, 금융사들이 보안 투자를 하는데 있어 타의 눈치를 보거나 더 이상은 미룰 수만 없는 상황을 드디어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 보안 사업 현황을 살펴보다 보면, 여전히 형식적인 전시성 사업이 많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적받아온 부실했던 금감원의 보안 감독· 관리가 앞으로는 제대로 시행될지도 확실치 않다. 이에 이번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보안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금융권 보안 강화 사업은 급조된 예산으로 진행되다보니 기술경쟁 보다 최저가 입찰로 제품이 선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시중은행의 경우 더더욱 레퍼런스 확보를 목적으로 한 해당 업체들 간 제살깎아먹기 경쟁이 심각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다.

너무 서둘러 보안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금융사들 가운데는 제대로 된 기술 검증은 생략 한 채 제품 도입만 서두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또한 유독 국내 보안 업체에게 무리하게 사이트 라이선스를 요구하거나 여전히 10% 미만의 낮은 유지보수 계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어 보안업체들의 지속적인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반면, 외산 제품은 사이트라이선스도 없을뿐더러 유지보수요율도 20% 이상으로 높게 책정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사들은 국내 보안 업체들이 생존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산 제품에 형편없이 낮은 대우를 하면서도 제품 도입 시 회사의 규모나 수익의 안정성 등을 평가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정당한 대가를 해주었을 때 보안 업체가 탄탄대로 성장도 하고,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에 보답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금융사들도 초기에 아무리 제품을 싸게 도입했다고 결코 기뻐하거나 안심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보안제품은 더더욱 도입한 이후에 제공되는 서비스 지원과 기술 개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금융분야의 베테랑인 전문가는 "사업 계약을 맺은 직후 갑과 을이 뒤바뀐다. 협력업체에 이제부터 그쪽이 갑이니까 책임지고 현장에서 잘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협력업체 직원들에게도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1~2번씩은 술을 대접하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협력업체 직원들에 의한 보안 사고가 날 때마다 누군가는 "예고된 일이었다. 협력업체 직원들을 막 부리고 홀대하 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사고가 진작 안 났던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한다.

금융 보안 사고가 더 이상 예고된 일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안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직원들이 내부 규정과 감독원 규정을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지켜야 한다. 다음으로 협력(보안) 업체 직원과 제품, 서비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주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그동안 이러한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 불행이도 많은 사고를 겪게 된 것이라고 본다. 금융 보안 강화의 답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금융사들이 보안 강화 시 이 점을 부디 간과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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