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갑산 (주)이즈파크 대표이사



일에 묻혀 살다보니,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써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열심히 기억을 되돌려 보는데도 학창시절 숙제 따위를 위해 글을 썼던 것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 시골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 권유로 글짓기를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원고를 조금 교정해 주시고는 그것을 또 도 대회에까지 보내시어 장려상으로 입상 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고마우셨던 담임 선생님으로 기억하며 지낸다. 그 때 내가 썼던 글의 제목은'우산'이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다녀가셨던 고모님이 우산을 두고 가셨는데, 나는 그 우산을 비가 올 때마다 쓰고 다녔다. 우산이 귀하던 시절, 그 작은 우산 하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나는'우산'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고모님은 크나큰 고마움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았고 지금도 가끔 그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 고모님이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고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고모님께서 살고 계셨던 예산에 다녀오다가 예전 그 시절을 떠올렸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고모님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내 어릴 적 기억의 창고에는 유난히 고마움과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많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에 남아있는 그 단어들은 내 어린 삶의 큰 부분이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작은 도움들도 나에게는 커다랗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들이 장성하여 아버지가 되었는데도,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줄어들지가 않는다. 늘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지울 수가 없다. 늦게 둔 아들이 소중해서였는지, 아니면 본래 말씀이 적으셔서 그랬는지 늘 마음으로 감싸 안아주셨다. 말씀으로 표현하진 않아도 우리를 늘 애지중지 하시는걸 느낄 수 있었다.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 일손이 필요해도 혼자 해결하셨다. 아들들에게 짐을 나누어 주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모든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 그때는 아버지의 고마움이 그렇게 큰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셨던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에 빠졌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들이 막막하여 마치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염없는 눈물로 지새웠던 오랜 날들이 기억난다. 물론 그 후에 닥친 시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가 보다.

그때의 아들인 나는 지금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서 그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역할 사이사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여전히 살아있다. 그 그리움은 내가 성장하여 사회인이 되고부터 가슴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른이 되었는데 어릴 적 받았던 아버지의 사랑을 보답할 수 없는 죄책감이랄까? 아님,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아버지가 곁에 없어서 일까? 내 마음의 외로움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술기운에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을 흘렸던 시간들이 수도 없이 많다. 옆에서 보아왔던 아내조차 그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움은 나의 몫이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좀 서운할 때도 있다. 이런 나를 나의 아들은 이해할까?

나는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의 아버지다. 아들들이 크면서는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보여줬던 것처럼 드러내지 않고 마음으로 감싸는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아내는 늘 애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아버지가 나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도 두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듯, 표현하지 않아도 아들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열심히 살아가도록 아내와 기도하며 작은 행복을 만들어 간다.

가끔씩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그리움이 너무 커서 아버지에 대해 고마움이나 다른 느낌들을 오히려 잘 모른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떤 아버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할 때도 있다.

작년 5월이었다. 아들이 군에서 제대하기 전 어버이날을 맞아 아빠와 엄마에게 각각 편지를 보내왔다. 그것도 장문의 편지를 말이다. 아들은 나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을 썼다. 군에 오기 전만해도 아버지는 돈벌어다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잘못이 크다고 썼다. 그런 표현을 편지에 거침없이 적어놓아서 나는 깜짝 놀랐다. 사회생활하면서 술좌석에서 가끔 듣던 푸념 같은 말인데 내가 직접 대하는 이 문구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군에 입대해서 고생도 해보고 사회를 보는 눈이 트이면서 아버지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었고 아빠가 힘들고 고생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시는 아빠의 뒤에서 작은 힘이나마 힘껏 밀어 드리겠다는 글도 적어 놓았다. 어느 부모나 다 똑같지만 나 보다 자식이 더 낳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저 잘 성장해 주기를 기대하는 맘으로 혼자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한 번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고맙다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기에 더욱 더 그리움이 깊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마음이 따듯해 질 수 있는 말씀을 드리고 싶건만 그러지 못하고 나는 아들에게 받고 있는 셈이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다 성장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내가 보여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성장을 해서 아버지에게 뭔가 보여 드리고 싶었을 때는 내 앞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으로 보여 드리려고 했다. 덕분에 열심히 살았고 이제는 그리움에 울지 않는다. 천상에서의 행복을 빌며 기도로서 말씀드리고
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를 그리워 할 나이는 지난 것 같기에 맘속에 묻고,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열정과 사랑을 애들한테 쏟을 것이다. 그러면 먼 훗날 내 아들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리라. 나의 아들들이 안타깝게 할아버지의 얼굴은 모르지만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내
아들들에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말들을 들어내고 싶어서. 아들아 고맙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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