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불분명해 규제 방안 없어, 해외는 가이드라인 마련 중

[아이티데일리] 지난해부터 국내외 유명 가수의 목소리를 복제해 인공지능(AI)으로 다른 노래에 씌워 만드는 ‘AI 커버곡’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튜브 등지에서 쏟아지며 인터넷 문화로 자리 잡고 있지만, 기존 곡을 원작자 허락 없이 변형·복제하는 만큼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 하지만 음성에 대한 저작권 규정이 불분명해 이를 처벌하거나 규제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웹사이트로 손쉽게 제작 가능한 AI 커버곡

AI 커버곡에서 ‘커버(Cover)’란 기존에 발표된 곡을 원곡자 또는 다른 가수가 다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영미권 표현이다. 국내에서는 커버 대신에 ‘리메이크(Remake)’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AI 커버곡에 사용되는 음성은 AI가 순수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기존 대중음악 음원에서 보컬을 추출해 생성하는 방식이다. 여러 과정을 통해 음원에서 보컬을 분리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먼저, 음원에서 배경음악이 없는 순수한 보컬 파트를 추출해야 한다. 보컬 없이 배경음악만 담긴 ‘인스트루멘털(Instrumental)’ 음원이 있는 경우라면 과정이 조금 더 수월하지만 인스트루멘털 음원이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튜브 영상 링크만으로도 배경음악과 보컬을 분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몇몇 웹사이트를 통해 제공되고 있어 전문적 기술 없이도 누구나 음원에서 보컬을 추출할 수 있게 됐다.

음원 파트 추출 예시 (출처: 가우디오 스튜디오 홈페이지)
음원 파트 추출 예시 (출처: 가우디오 스튜디오 홈페이지)

다음으로는 보컬에서 다시 코러스, 화음 등의 백업 보컬을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화음과 코러스가 많이 섞인 음원은 AI 커버곡의 음정이 부정확하거나 기계음이 들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설명된 보컬 파트 분리보다 더욱 복잡한 작업이지만 이 역시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

화음, 코러스를 제거한 온전한 보컬의 목소리를 분리한 후 본격적인 AI 커버곡 제작이 가능하다. 음성 모델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직접 원하는 모델을 제작하거나 다른 사람이 공개한 모델을 다운로드한다. 그다음 해당 음성 모델을 업로드해 변환하고 보컬이 분리된 음원에 씌우면 AI 커버곡을 완성할 수 있다. 


음성은 저작물로 볼 수 없어 문제

AI 커버곡에 바탕이 되는 음원을 저작권자에 허락 없이 사용했다면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있다. 구체적으로 저작재산권 중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는 ‘복제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허가 없이 만든 AI 커버곡을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에 업로드한다면, 저작물을 대중이 수신하거나 접근하게 할 목적으로 송신하거나 이용에 제공하는 ‘공중송신권’을 침해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AI 커버곡 제작 과정에서 원곡자의 허락을 얻지 않았다면 이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음성(목소리)이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현재 저작권법에서는 음성을 저작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저작권법 제4조로 규정된 저작물의 예시에는 △소설·시·논문·강연·연설·각본 그 밖의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회화·서예·조각·판화·공예·응용미술저작물 그 밖의 미술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등 총 9가지가 규정돼 있으나, 음성은 이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목소리 자체만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또한 AI 커버곡도 아직 법적으로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다. 저작권법 제2조제1호에 따르면,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된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것인지 그리고 ‘창작물’인지 여부가 저작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볼 수 있다.

AI 커버곡 제작은 사람이 직접 ‘창작’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프로그램이 음원에서 보컬과 이외의 배경음을 알아서 분리하며, 음성 모델도 그저 분리된 음원 위에 올리는 형태이기에 AI 커버곡 자체를 하나의 저작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음성을 무단으로 활용한 것을 음성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피고가 원고의 음성을 비밀리에 녹음해 음성권을 침해했다는 손해배상 재판에서 서울지방법원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해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법제연구원 정원준 부연구위원은 논문 ‘AI 커버곡 사례를 통해 본 생성형 AI의 법률 문제’를 통해 “음성권은 인격권적 성질의 권리로서 취급돼 왔으며, 공적 인물이라 할지라도 사생활의 내밀한 영역은 비밀성이 보장돼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권리자의 음성을 추출·변형해 만든 AI 커버곡을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하는 이용 행태만으로 인격적 이익이 침해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차단 요청…법적 기준 마련 필요

해외에서는 음반사가 AI 커버 곡에 대한 차단을 요청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지난해 4월에는 해외 유명 아티스트 드레이크(Drake)와 더 위켄드(The Weeknd)의 가짜 컬래버레이션 음원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자, 유니버셜뮤직그룹(UMG)은 자사가 저작권을 보유한 곡에 대해 AI 커버곡 게재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AI 커버곡 열풍에 유튜브도 본격적으로 AI 커버곡 영상에 대한 단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NBC를 비롯한 외신들은 유튜브가 AI 생성 음원을 규제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도입한다고 보도했다. 유튜브는 향후 AI 생성 콘텐츠에 대해 별도의 표시를 의무화하고, 저작권 소유 기업에 AI 커버곡을 삭제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한음저협)가 지난 1월 생성형 AI 콘텐츠 표기 의무화법 도입을 위한 국회 공청회를 개최했다. 한음저협 측은 “저작자들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콘텐츠가 정당한 대가 없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선제적·예방적인 입법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AI 커버곡은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저작권 침해 등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직 불분명하다. 저작권법에서 음성은 창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만큼 이에 대한 권리가 법으로 규정되지 않아 AI 커버곡을 저작권 침해로 처벌할 만한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정원준 부연구위원은 “음성에 대한 권리는 인격권과 재산권의 성질을 동시에 보유해 구체적 사안에 대한 명확한 법이론적 원칙이 확립되지 않았다”며 “향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생성형 AI 기술을 토대로 하는 다양한 신규 서비스 제공에 있어 침해적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해석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