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넷플릭스 등 OTT, 콘텐츠 제작 중단, 글로벌 TV 축제 에미상 일정도 연기

생성 AI가 문화예술 및 엔터계의 극한 분열을 불러오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생성 AI가 문화예술 및 엔터계의 극한 분열을 불러오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아이티데일리] AI 도입을 둘러싸고 엔터 제작업체와 각본가‧배우 등 종사자 사이의 분쟁이 그칠줄 모른다. 100일 이상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전미 각본가조합(WGA)은 전미 영화TV제작자협회(AMPTP)와의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파업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LA타임즈, 포브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WGA와 미국 배우노조(SAG-AFTRA: 영화배우조합과 TV라디오연기자연맹 통합 노조)가 동시에 벌이고 있는 파업은 63년 만에 벌어진 대규모다. 이로 인한 문화예술계 영향도 크며 시위는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적인 충격 또한 막대하다.

세계 영상 콘텐츠 시장을 이끄는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와 TV 케이블 네트워크,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등 스트리밍 서비스는 파업으로 인해 신작 제작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또 9월 18일로 예정됐던 미국 TV업계 최고 영예인 에미상 개최도 내년 1월 15일로 연기될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 영화는 연말부터, TV와 스트리밍은 9월 이후 조합원이 관계된 신작 출시가 불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유행이 종식되고 부흥을 기대했던 영상 제작·배급 산업에 역풍이 불고 있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회복세에 접어든 엔터 업계 상황에서 무모한 파업을 벌이는 노조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반면 브레이킹 배드 주연인 조합 측의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배우의 생존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고 응전했다.

넷플릭스는 최고 연봉 90만 달러로 AI 전문가를 모집하고 있다. AI를 이용해 알고리즘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역할로 알려졌다. 조합 측은 90만 달러면 배우노조 인력 35명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비판하면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디즈니도 이미 'AI 검토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현재 11건의 구인을 냈다고 로이터가 보도한 바 있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미국 영화·TV 산업에서는 신기술 도입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혁신될 때마다 이익 분배를 놓고 파업이 벌어지는 일이 고착화됐다. 1960년에는 WGA와 SAG가 각각 42일과 148일간 파업을 강행, 영화 방영권이 방송사에 판매될 때 계약료의 일부를 작가와 출연자가 분배받기로 합의했다. 1980~81년에는 SAG 90일 파업, WGA 92일 파업으로 페이TV와 홈비디오에 영화가 배급될 때 총 매출의 4.5%를 배분받기로 했다.

이번 파업의 요구사항은 두 가지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로부터의 분배금 비율을 늘리는 것과 AI의 도입으로 각본가나 배우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을 것 등이다.

과거 스트리밍 사업 비중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나 TV 프로그램이 노출되었을 경우 부과되는 사용료는 미미했고, 조합으로의 분배금도 적었다. 그러나 현재 스트리밍은 페이TV나 지상파 방송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고, 반대로 TV 시청률은 떨어졌다. 때문에 WGA와 배우노조는 AMPTP가 스트리밍으로부터의 분배금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기술이 진일보한 생성 AI는 각본 제작에 개입하거나 녹화해 놓은 배우의 표정, 동작, 음성 데이터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조합은 일자리를 AI에 빼앗기고 있다는 판단이다. AI 도입에 따라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배우의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는 인식이다.

미국 배우노조는 16만 명(WGA는 1만 1000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중 배우 전업으로 생활할 수 있는 인원은 극히 적다. 유명 스타가 벌어들이는 고액 출연료에서 갹출되는 조합연금이나 복리후생제도의 대상이 되는 멤버도 제한적이다. 이렇다 보니, 하층 생활을 경험한 배우들은 조합원으로서의 동료 의식이 강하다. 이번 파업을 지지하는 스타들이 줄을 잇는 이유다.

고령의 노장 제인 폰다는 로스앤젤레스 넷플릭스 본사 앞 시위에서 "사전 승낙이나 보상 없이 배우의 권리를 AI에게 빼앗기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개봉 중인 '미션 임파서블' 최신작에 톰 크루즈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헤일리 앳웰도 "AI를 도입하기 전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지의 제왕 골룸 역의 앤디 서키스는 ”영화배우로서 합성 영상을 위해 가장 많은 바디스캔을 받아왔다. 규칙 없는 AI 도입은 반대하며 SAG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주장했다.

파업 여파는 할리우드 작품이 많이 촬영되는 영국에도 파급됐다. 휴 잭맨의 복귀가 화제인 마블 작품 데드풀3,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에리보 주연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화판 위키드 등의 촬영이 중단됐다.

조합원 4만 7000명인 영국 배우조합(Equity)은 2년마다 제작배급사 측과 재계약 협상을 하고 있는데, 올해 시작되는 차기 교섭에서는 AI 도입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중 등록 회원도 많은 미국 배우노조와의 제휴도 검토 중이다. 63년 만의 대규모 파업은 적어도 앞으로 20~30년 동안 영상산업 구조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AI 기술이 예술의 영역에 얼마나 깊이 들어갈 지를 가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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