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공공기관 클라우드 전환 사업은 “클라우드 후진국으로 가는 길”
행안부,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로 민간 클라우드 우선 주장

[아이티데일리] 공공기관의 클라우드 전환 사업을 두고 행정안전부와 클라우드 기업 간의 의견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행정·공공기관 대상 정보시스템 클라우드 전환 사업(이하 전환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업들은 전환 사업에 대해 공공 클라우드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이 많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행안부는 클라우드 업계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몇 차례 만들었고, 지난 3월 말 전환 사업과 관련된 고시를 마련하며 불만 줄이기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클라우드’라는 단어가 고시에서 제외되고 기준이 불분명한 ‘통합관리기관’이 등장했다는 점 때문에 클라우드 기업들의 불만은 높아만 가고 있다.

전환 사업과 관련, 클라우드 기업들의 가장 큰 불만은 통합관리기관에 있다. ‘통합관리기관’은 앞서 행안부가 주장했던 ‘공공 클라우드 센터’와 ‘민간 기업의 클라우드’ 두 가지로 분리돼 있던 공공기관의 클라우드 통합·전환 방향을 하나로 합친 것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이 ‘법 제54조 제3항’에 따라 행정기관의 정보자원을 통합적으로 구축·관리하기 위해 지정한 전담 기관을 뜻한다.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 정보자원 통합기준 전부개정안 제13조 1항과 2항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 정보자원 통합기준 전부개정안 제13조 1항과 2항

클라우드 업계는 ‘통합관리기관’이 현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관리하는 통합전산센터, 지역이나 기관에서 직접 구축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 클라우드 기업들은 ‘통합관리기관’에 대해 ‘행안부가 기존 민간 클라우드 이용 확산을 주장해 오던 국내 기업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로, 그동안 행안부가 꾸준히 주장해온 공공 클라우드 센터 쪽에 힘을 더 싣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행안부의 설명회, 업계는 ‘변명회’ 일축

지난 4월 12일 행정안전부는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클라우드 사업자를 대상으로 ‘행정·공공기관 클라우드 전환 관련 제·개정 고시 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에서 행안부는 민간 클라우드가 고시를 비롯해 모든 부분에서 우선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명회에서 행안부는 공공기관이 신규로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교체할 때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이용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통합관리기관’에 민간 클라우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며 클라우드 업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행안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업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고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클라우드 업계 관계자들은 행안부가 소극적이고 애매한 표현들로 고시를 작성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설명회에서 말로만 기업들의 목소리를 담아 고시를 개정하겠다는 주장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보통 정부 부처의 업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될 때는 관련 고시가 나오기 전 미리 설명회를 개최해 업계, 학계 등의 의견을 수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행안부는 고시를 만들어놓고 의견을 받고 있다. 개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행안부의 설명회에 대해 클라우드 업계는 ‘속 빈 강정’, ‘기업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반영하지 않았다’, ‘설명이 아닌 변명’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본지가 입수한 행안부가 제시한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 자료
본지가 입수한 행안부가 제시한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 자료

행안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업계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이유는 행안부가 제시한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 때문이다.

행안부가 제시한 12가지 활용모델은 △민간 위탁형 △다수 민간 위탁형 △혼합 민간 위탁형 △민간 주도형 △다수 민간 주도형 △혼합 민간 주도형 △민간 구축형 △다수 민간 구축형 △혼합 민간 구축형 △민관 공유형(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민간 이용형(CSAP 존) △다수 민간 이용형(멀티 클라우드) 등이다.

이에 대해 한 클라우드 기업 관계자는 “행안부에서 제시한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은 표면적으로는 센터 구축부터 멀티 클라우드 활용까지 다양하게 제시한 듯 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민간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기존 공공 클라우드 센터의 형식인 ‘자원통합형 구축사업’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정확한 정의나 각 모델의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표현들 뿐이다. 아마도 공공기관마다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을 서로 다르게 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행안부가 제시한 ‘활용모델’은 크게 위탁형, 주도형, 구축형, 공유형, 이용형 등 5가지 형태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주요 고려 요소’를 보면, 토지·건물, 설비·인프라 등 ‘구축’과 관련된 내용들이 핵심인 듯 보인다. 이를 ‘주도’, ‘공유’, ‘이용’ 등 ‘민간 클라우드’가 줄 수 있는 이미지로 덮었다. 결국은 앞서 행안부가 추진하던 공공 클라우드 센터를 애매한 표현으로 치환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업계의 이런 주장에 대해 행안부는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에는 내부 중요시스템도 민간 클라우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기존에 비중요시스템만 클라우드를 활용할 수 있었던 점을 적극 개선해 민간 클라우드를 100% 사용하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신축 조장, 통합전산센터 설립 목적 기억해야

클라우드 업계는 행안부가 제시한 ‘12가지 클라우드 활용모델’ 중 상당수의 모델이 클라우드 기업에게 개별적으로 중소 규모의 데이터센터 혹은 전산실을 각각 구축, 운영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수의 활용 모델을 풀이해보면 기관이나 기업이 개별적으로 중소 규모 데이터센터 혹은 전산실을 각각 구축한 후 운영하라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클라우드 사업자 간 ‘상호 운용성 표준’도 없는 상황에서 멀티 클라우드 모델,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모델 등을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클라우드 간 상호 운용성 표준은 KT클라우드에서 네이버클라우드로 시스템이나 데이터를 이관·백업하는 등 멀티 클라우드를 이용할 때, 클라우드 간 안정적인 이관과 동시 운용을 위해 정해야 하는 표준이다. 하지만 국내 CSP 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신축을 생각하는 행안부의 방향성에 대해 국내 클라우드 기업 한 관계자는 통합전산센터 설립 목적에도 역행하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초기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인 통합전산센터의 설립 목적은 개별부처로 흩어져 있는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 인프라 정보자원을 한군데로 통합해 운영 및 비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실제 행안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클라우드 모델은 지역별 및 거점별로 데이터센터를 다수 구축하는 방식으로, 통합전산센터 설립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한 기업의 관계자는 “클라우드가 모든 산업군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재 통합전산센터 개설 때보다도 수백 가지 서비스를 한 곳에서 통합해 제공할 수 있는 더욱 큰 하이퍼스케일의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면서, “KT클라우드나 네이버클라우드, NHN클라우드, 카카오, 가비아 등 CSP가 짓고 있는 데이터센터가 대부분 ‘하이퍼스케일’로 거대한 규모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과 에너지 효율성에 근거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단순히 중소 규모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행안부가 앞서 주장했던 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이 아닌 되려 분산하는 방향”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현재 중소 규모의 전산실 설립과 관련해 자재 수급에도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적으로 원자재를 수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데다 필요한 시기에 자재를 공급받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신축에 필요한 각종 자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CSP 기업의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가운데 급격한 비용증가와 자재 수급으로 인해 일정이 지연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은 최소 1~2년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업들의 반발에 대해 행안부는 전환사업에 대해 공공기관이 보유한 보안성이 높은 인프라와 민간 클라우드 기업들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결합해 활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보자원통합 심의위원회(심의위)’가 꾸려진 가운데, 심의위 관계자는 “민간 클라우드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며 보안이 중시되는 중요시스템의 경우 ‘민관 협력형 모델(PPP)’로 민간 기업들의 클라우드를 활용하고자 한다”며, “올해 클라우드 통합전환 사업의 핵심은 PPP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클라우드를 우선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체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尹정부 ‘디지털 플랫폼’ 구현 방식에도 역행

행안부의 클라우드 방향성은 이달 10일부터 본격 시작될 예정인 윤석열 당선인의 디지털 플랫폼 정책에도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부의 디지털 플랫폼 정책 공약을 설계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김창경 과학기술교육분과 인수위원은 보고서에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부 부처 및 산하 기관의 사이트들을 범정부 사이트로 일원화하는 것이 플랫폼 정부로 가는 첫 단계”라고 언급했다.

많은 부처 및 기관의 개별 사이트를 범정부 사이트로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플랫폼 통합의 근본인 ‘인프라 통합’이 아닌 ‘인프라 사일로화’를 추구하는 행안부의 ‘전환 사업’이 새정부의 ‘디지털 플랫폼’ 방향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광역단체, 기초단체, 공공기관별로 각각 센터나 전산실을 구축하고, 상호 운영성이 확보되지 않는 각기 다른 사업자들에게 개별적으로 구축 및 운영을 맡긴다는 방식이 플랫폼 기반 일원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디지털 선진국들은 다양한 민간 클라우드를 활용해 공공분야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다.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혁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행안부도 단순히 업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업계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듣고 반영하고, 진정한 클라우드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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