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이 경쟁사도 아닌, 자신의 협력사들이 애써 길러놓은 인력을 빼갔다. 예상치 못한 프로젝트라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일까.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을까. 백번 이해의 길을 찾으려 해도 이 부도덕한 행위는 비난의 회오리를 벗어날 길이 없다. 한편으로는 한국IBM의 기업력이 겨우 이 정도였다니, 무려 40년 넘게 한국에 뿌리를 내리며 국내 IT업계를 군림해온 그 위상을 견주어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IBM은 최근 컨소시엄을 이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몇 개의 협력사 인력들을 스카우트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또다른 협력사에는 무려 10여 명에 달하는 특정 금융기관 출신들을 대상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통해 개별적으로 접근,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IBM측의 조직적인 인력빼가기 작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협력사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결국 한국IBM측은 해당 협력사에 사과하고, 이같은 사건이 재발될 경우 관련자에게 해고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가하기로 하는 등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IBM은 서둘러 협력사들에게 사과함으로써 일단 이 사건을 무마시켰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렇게 쉽게 유야무야 될 것 같지가 않다. 겉으로는 평온해질지 모르지만 그 내상은 오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은 그 자체의 심각한 부도덕성도 문제지만, 협력사들에 대한 한국IBM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깊은 불신의 골을 파고 말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협력사들에게 '동반자'임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IBM에 대한 협력사들의 오랜 불만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한국IBM의 협력사들은 불만이 팽배해 있다. 특히 대기업을 주축으로 짜여진 5개 채널 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갈수록 박해지는 이문에 허덕이고 있는 대다수 협력사들에게 있어 5개 총판 대기업들은 그나마 몇 푼 안 되는 이문을 갉아먹는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IBM의 손발이 되어 수익을 창출해내온 전통적인 협력사들을 이처럼 홀대할 수 있느냐는 불만이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전언이다.

한국IBM의 이같은 채널정책은 수년전부터 추진해온 IBM의 전략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탈바꿈하려는 필사적인 전략이 그것이다. 이 전략에 따르자면 하드웨어 부문은 총판체제를 강화해 다소 밀어내기식 영업전략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IBM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하드웨어 유통에 매달려 온 전통적인 채널들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정책이다. 마진은 없고 IBM의 변화된 전략에 동승하기도 어려우니 생존의 끝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는 게 요즘 한국IBM 협력사들의 고언이다.

이쯤되면 한국IBM은 뭔가 협력사들을 끌고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서비스든 소프트웨어 사업이든 여기에 협력사들을 동참시켜 함께 끌고 가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40여 년을 국내 IT시장에서 최고의 점유율을 자랑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하기까지 협력사들의 공로가 지대했음을 생각한다면, 아니 미래를 기약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획기적이고 진정성이 있는 동반자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협력사들의 바람이다.

한국IBM이 협력사들을 진정한 동반자로 삼고자 한다면 크게 서비스사업과 소프트웨어 사업에 이들을 전부 동참시키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너무 추상적일 수 있으니 우선 작은 것부터 단계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가 유지보수 사업을 협력사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유지보수 사업을 맡기는 것이 불안하다면, 초기엔 공동사업으로 하고 일정기간 후 넘겨주면 된다. 또하나는 협력사들을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육성하는 정책도 적극 추진해봄직 하다. 기왕에 설립한 IBM R&D센터 및 솔루션센터를 협력사들에게 확대개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이다. 기존 소프트업체들을 인수하기 보다는 국내 협력사들을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유도하고 활용하는 것은 40년 한국IBM이 해야 될 책무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IBM도 미국 본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협력사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한국 IT역사상 40년이란 세월은 어찌했건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종사자들 또한 역사적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뜨내기 장사치가 아닌 한국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기업으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기여를 해야 한다. 그 기여의 첫걸음이 협력사들을 보다 발전된 동반자로서 이끌어가는 것이고, 그들을 통해 한국 IT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IBM과 한국의 진정한 상생구조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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