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txt] ‘카카오는 재난, 국자원은 사고’…공공 IT 위기 앞 정부 이중 잣대

민간 서비스 중단엔 긴급 대응, 공공 시스템 정지엔 조용한 복구

2025-10-31     박재현 기자

[아이티데일리] IT 강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유례없는 오점이 남았다. 2025년 9월 26일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 화재로 디지털 정부의 심장이 멈췄다. 행안부는 신속하게 대응하며 복구에 나섰지만 민간 기업과 정부 부처의 사고에 대한 시각차가 매우 크다는 점을 보여주며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민간 플랫폼 중단에는 ‘국가적 재난’이라며 강경 대응에 나섰던 정부가, 정작 공공 인프라의 중단 앞에서는 먼 산 불구경이라도 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정부의 대응은 카카오에 대한 질타로 시작됐다. 정부는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했고, 행안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즉시 현장에 합동대응반을 꾸렸다. 카카오에 책임을 물으며 데이터센터 이중화·분산화 의무화를 포함한 데이터센터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국회는 카카오 의장 출석 요구 등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민간 플랫폼 장애를 ‘공공 IT 위기’로 본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자원) 대전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700여 개의 공공 시스템이 멈추고, 정부24·온나라·국민신문고 등 행정 서비스가 동시에 마비됐다. 행안부는 대전센터 화재 발생 후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으로 상향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는 등 적극적인 재난 대응체계를 가동했다.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는 점은 박수를 받을 만 하지만, 카카오 사태와 비교할 때 정부 태도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카카오 장애에 국가 위기로, 공공의 장애에는 기술 사고로 대응했다. 카카오 사태 이후 정부는 민간 데이터센터의 이중화·SLA 의무를 검토했지만, 정작 국자원은 단일 지역 중심의 구조를 유지해 왔다. 대전·광주 이원화 체계가 구축돼 있었지만, 실제 행정 핵심 시스템은 대전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었다. 이중화 미비라는 같은 문제를 두고 민간에는 질타와 규제로 대응한 반면, 공공에는 수습에 치중하면서 관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는 민간의 장애에 대해 관리·감독의 실패로 지적했지만, 공공의 장애에 대해서는 담당 기관의 기술적 문제로 축소해 해석했다. 이중화 미비, 예산 부족, 인력 부족 문제는 오래된 구조적 문제였음에도,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늘상 “다음 예산에 반영하겠다”는 말로 대응했다.

‘국가적 재난’이라는 표현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행안부는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의 열폭주로 인한 기술적 사고’로 규정했고, 복구 상황만을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공공은 예외”라는 인식, “기술 문제”라는 방어적 태도, “문제보다 일정이 우선”이라는 행정 관행이 합쳐져 IT 강국 대한민국에 오점을 남긴 것이다.

많은 시스템이 복구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제 필요한 것은 복구 결과 보고서가 아니라, 정부 스스로의 성찰이다. 정부는 디지털 정부의 주관기관이 아니라, 리스크를 직접 떠안아야 하는 주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민간 기업에게 들이댔던 엄격한 잣대를 정부 스스로에게도 대봐야 한다. 그래야 이번 화재가 남긴 오점을 교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