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슨 웰스의 명작 ‘위대한 엠버슨가의 사람들’, AI로 되살린다
스타트업 쇼러너, 결말 바뀌고 43분 분량 잘려 분실한 촬영분 복원
[아이티데일리] 영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1940년대 영화사에서 가장 아픈 손실로 꼽히는 작품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였던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1941)을 넘어서는 걸작이라 확신했던 ‘위대한 앰버슨가의 사람들’(1942)이다. 이 영화는 웰스가 ‘시민 케인’의 대성공 직후 미국 중서부 부유층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위대한 엠버슨가의 사람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어둡다’고 판단한 제작사 RKO의 결정으로 원본에서 40분 이상이 삭제되고 결말마저 바뀌었다. 웰스의 제작 의도는 산산조각 부서졌다. 잘려나간 43분 분량의 필름은 80년간 행방이 묘연했고, 영화 팬들에게 원작의 복원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반전이 일어났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쇼러너(Showrunner)가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새로운 AI 모델 ‘필름-1(FILM-1)’을 활용해 ‘위대한 엠버슨가의 사람들’ 원작에서 사라진 43분간의 장면을 복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소식은 헐리우드리포터 등 다수의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국제영화제에서 쇼러너의 창업자 에드워드 서치는 “웰스 영화의 복원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학술·아카이브 프로젝트”라며, 완성본은 2027년 전후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쇼러너는 ‘AI판 넷플릭스’를 자처하는 영상 제작 스타트업으로 센프란시스코에서 창업했다. 페이블 스튜디오(Fable Studio)로 시동을 건 쇼러너는 애니메이션이나 프롬프트 기반 단편 동영상으로 실험을 거듭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했다. 현재는 사용자들이 AI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시청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서비스 플랫폼의 초기 데모였던 ‘사우스 파크’ 비공식 에피소드 영상은 수천만 번의 시청 수를 기록하며 AI 동영상의 파괴적인 잠재력을 입증했다. 필름-1은 그동안의 단편 에니메이션을 넘어 실사 영화에 나서려는 시도로, 그 첫 번째 도전이 ‘위대한 엠버슨가의 사람들’이다. 단순 오락을 넘어 실사 이야기 재현의 단계로 도약하려는 도전인 셈이다.
‘위대한 엠버슨가의 사람들’은 웰스 스스로 “원본대로 완성됐다면 시민 케인보다 위대했을 작품”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을 정도로 웰스가 애착을 보인 작품이다. 실제로 편집본 영화조차 높은 평가를 받아 ‘사이트 앤 사운드’가 꼽은 ‘역사상 최고의 영화’ 반열에 올랐다. 원본과는 다른 작품이 됐으니, 현재로서는 웰스의 미완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1941년에 제작된 ‘시민 케인’은 1997년 미국 영화연구소에서 선정한 100대 영화에서 1위로 선정됐다. 2007년 재선정 때에도 다시 1위를 기록했다.
복원은 어려운 작업이다. 아카이브 전문가와 저널리스트들은 잃어버린 릴을 찾아 분주히 뛰었고, 웰스가 편집의 시기에 머물고 있던 브라질까지 찾아갔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베네치아에서의 발표에 즈음해, 쇼러너는 연구자이자 영화 작가인 브라이언·로즈와 제휴했다. 그는 웰스의 메모와 세트 사진, 제작 기록을 단서로 5년 동안 영화 재구성에 매달려 3만 프레임을 복원하고 세트를 3D로 재현했다. 이제 쇼러너의 필름-1이 이 성과를 확장한다.
AI는 키프레임 생성과 카메라 궤적 재현, 세트 공간 복원까지 맡는다. 일부 장면은 실제 배우가 연기한 뒤, 얼굴·포즈 전사 기술로 1940년대 연기를 재현한다. 음성은 배우 낭독과 AI 합성을 결합한다.
VFX(Visual Effects) 전문가 톰 클라이브도 합류한다. 그는 얼굴 합성·디에이징 기술, 즉 VFX로 유명한 스타트업 메타피직(Metaphysic) 출신으로,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의 ‘시간을 넘어서’와 페데 알바레스 감독 영화 ‘에일리언: 로물루스’에도 참여한 바 있다.
VFX는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에서 실제 촬영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디지털 기술로 합성하고 가공하는 시각 효과를 말한다. 실제 촬영된 영상에 컴퓨터그래픽, 합성, 3D 모델링 등을 결합하는 것이다. 현실에 없는 배경이나 인물, 사건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잇다. 인물을 젊은 나이로 되돌리거나 노인으로 바꾸는 것도 이 기술에 의한 것이다.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 어벤저스 시리즈의 전투 장면 등이 모두 그렇다.
AI는 할리우드에서 노동 분쟁과 저작권 소송의 불씨가 되어왔다. 반면 쇼러너는 사라진 명작을 되살리며 ‘AI는 위협이 아니라 문화유산 복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웰스는 배우 조지프 코튼과 아그네스 무어헤드가 연기한 잃어버런 마지막 장면을 두고 “내가 찍은 최고의 장면,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잃어버렸다”고 회고했다. 80년간 사라졌던 그 장면이 이제 AI의 힘으로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