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심화…“특정 기업의 탄소 배출 책임 크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연구진 보고서 발표 “2000~2023년 기록된 213건의 폭염 중 4분의 1 이상이 에너지 기업 배출과 연관”

2025-09-17     조민수 기자
이미지=픽사베이

[아이티데일리] 지난 20년 동안 폭풍, 가뭄, 폭염 같은 극한 기상 현상을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분석해 왔던 기후 과학자들은 이제 그 책임의 고리를 화석연료 생산 기업까지 확대해 추적하고 있다. 네이처(Nature)는 온라인판에서 2000~2023년 기록된 폭염의 약 4분의 1이 개별 에너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는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네이처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전하며, 이는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폭염의 원인은 기업에 있다’며 제기하는 소송의 새로운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Zurich)가 수행했다.

연구진의 기후 과학자 얀 퀼카이유(Yann Quilcaille)는 네이처 온라인판에서 “과학자로서 이러한 기후 이벤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탄소 메이저’ 기업들이 폭염을 더 강화하고, 더 빈번하게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기록된 213건의 폭염 중 4분의 1 이상은 인간이 유발한 지구 온난화가 없었다면 “사실상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에너지 기업과 주요 탄소 배출원의 배출량은 약 53건의 폭염 발생 확률을 1만 배 이상 높였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 영향과 화석연료 생산 기업의 연결고리를 밝힌 첫 사례는 아니지만, 퀼카이유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별 기업을 특정 폭염 사건과 직접 연결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증거가 특정 사건(예: 2021년 미 태평양 북서부를 강타한 폭염)을 대상으로 하는 기후 소송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오리건주의 한 카운티 정부는 해당 폭염을 유발한 혐의로 화석연료 기업들을 상대로 520억 달러 규모의 민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 캠퍼스의 지구시스템 과학자 크리스토퍼 캘러핸(Christopher Callahan)은 “이번 연구는 아직 많지는 않지만, 점점 늘어나는 문헌에 추가되는 것으로, 개별 배출 기업과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 간의 인과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라며,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판사, 배심원, 법원, 정치인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먼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들과 사우디 아람코, 러시아 가즈프롬 같은 국영 기업들을 포함한 180개 ‘탄소 메이저’의 과거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했다. 또 인도·중국 등에서의 시멘트 및 석탄 생산으로 인한 배출도 합산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 전체가 전 세계 과거 탄소 배출량의 약 57%를 차지한다.

연구팀은 기후 모델을 이용해 온실가스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에서의 온도 변화를 분석하고, 각 폭염이 인간이 유발한 지구 온난화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평가했다. 그리고 이를 다시 각 탄소 메이저의 배출량에 연결해 폭염 발생 확률 증가치를 계산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기후 과학자 카르스텐 하우슈타인(Karsten Haustein)은 “이것은 인과관계를 체계적으로 추적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는 그러나 개별 기업의 책임 비중에 대한 추정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극단적 폭염은 통계적으로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구팀의 중앙 추정치는 엑슨모빌의 탄소 배출이 2021년 태평양 북서부 폭염 발생 확률을 1만 배 이상 높였다고 보지만, 하한치로 계산하면 약 19%만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최소한의 영향치”라고 설명했다. 엑슨모빌은 이번 연구에 대한 네이처의 논평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컬럼비아대학교 사빈 기후변화법센터의 제시카 웬츠(Jessica Wentz)는 “이번 연구는 기후 피해 책임에 관한 공적 논의를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진행 중인 여러 화석연료 기업 대상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과학적 증거는 그중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법적 쟁점 중 하나는 에너지 기업이 기후 변화에 대해 어느 범위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의 여부다. 결국 이 기업들은 각국 및 국제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도 하며, 실제로 연료를 태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은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웬츠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20건 이상의 소송이 과거 담배 소송과 비슷한 논리를 취한다고 설명한다. 즉, 화석연료 기업들이 자사 제품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과학적 사실과 정부 규제를 무력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대중을 오도한 것이 책임의 근거”라고 강조한다.

캘러핸 역시 “주요 화석연료 기업들이 일반 대중보다 먼저 기후 변화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권력과 이익을 활용해 기후 행동을 저지하고 과학을 불신하게 만들었다는 풍부한 증거가 있다”며, “따라서 이들이 판매한 제품의 배출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당하다.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네이처는 BP, 셸, 셰브론, 이란 국영석유회사, 인도석탄공사에도 논평을 요청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